실시간 뉴스


[2017 BIFF]'유리정원', 순수한 건 오염되지 않는다(리뷰)


잔상과 감정의 조각을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작품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다'는 카피를 배경으로 배우 문근영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묵직하고 깊이 있는 눈빛.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의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영화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관심을 모았다. 지난 12일 영화제의 시작과 함께 첫 선을 보인 '유리정원'은 개막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유리정원'(감독 신수원, 제작 준필름)은 홀로 숲속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 재연(문근영 분)과 그녀를 훔쳐보며 초록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해 소설을 쓰는 무명 작가 지훈(김태훈 분)의 이야기다. 지훈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밝혀지게 되는, 비밀을 그린다.

'유리정원'은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다'는 카피 그대로를 재연을 통해 보여준다. 어릴 적 숲에서 태어난 재연은 12살 때부터 발이 자라지 않는다. 절뚝거리며 남들보다 느리게 걸어다니는 재연은 속세의 때를 입는 것조차 더디다. 그만큼 순수하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하기 마련이다.

순수한 재연의 모습은 쉽게 오염된다. 자신의 연구를 강탈당하고, 개발한 녹혈구는 당장 현실성이 없다며 핀잔을 듣는다. 심지어 마음을 다주며 사랑한 연인에게 버림받는다. 영화는 재연의 순수한 모습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숲에 고립시키고, 자신만의 상상 속에 갇힌다. 이런 재연의 모습은 차가운 광기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카피와 달리 '재연의 순수함은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묘하게 역설적이다. 자신이 믿는 것을 행하는 재연의 모습은 광기이지만 동시에 그 행동의 의도는 순수함에 가깝다. 재연이 집착하는 녹혈구 연구는 '순수하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죽었던 새가 다시 생명을 되찾고 생명을 잃은 어떤 이는 다른 형태로 새로운 생명을 이어간다. 물론, 재연의 상상에만 그칠 수 있지만.

순수하고 오염된 상태를 넘나드는 재연. 문근영은 '유리정원'에서 정의 내리기 힘든 재연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사내 아이처럼 짧은 검은색 머리와 화장기 없는 외모만이 아니다. 문근영은 눈빛 하나로 순수함을 표현하고, 그 눈빛으로 다시 광기와 슬픔을 표현한다. 문근영만이 재연을 연기할 수 있을 정도다. '유리정원'은 문근영을 위한 영화다.

신수원 감독은 영화에서 순수함과 오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과감하게 무너뜨린다. 시나리오와 연출력으로 실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현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또 인물의 감정 변화를 새롭고 깊게 표현한다. 과거 연인이 다른 이와 성관계할 때 내는 신음 소리를 배경으로, 재연이 하이힐을 신고 마당을 빙빙 도는 장면은 백미다.

영상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초반부터 스크린에 가득 펼쳐지는 숲의 모습은 실제 눈으로도 느낄 수 없는 신비로움을 전한다. 매순간 숲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숲이 혈류로 변하는 이미지는 '생명'을 표현하는 은유가 되기도 한다. 뛰어난 영상미를 바탕으로 인물에 따라 변하는 숲의 이중적인 모습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유리정원'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쾌하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작품 속 이미지들의 잔상만 가득히 남는다. '유리정원'은 이성보다 직관적인 감성을 먼저, 진하게 전하는 영화다. 그리고 그 잔상과 감정의 조각들을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작품이다.

러닝타임 116분, 12세 관람등급, 오는 25일 개봉.

조이뉴스24 부산=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2024 트레킹






alert

댓글 쓰기 제목 [2017 BIFF]'유리정원', 순수한 건 오염되지 않는다(리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