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 변신 김수경 "00현대, 완벽했던 최강의 팀" ②

2001년 투구폼 변경 지금도 후회…현대 선수로 뛰어서 행복했다


[조이뉴스24 김지수기자] 김수경 NC 다이노스 스카우트는 현역 시절 KBO리그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현대 유니콘스(지난 2007년 해체)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1998년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듬해 탈삼진왕에 이어 2000년 다승왕 타이틀을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김 스카우트는 '유니콘스의 황태자'로 불렸다. 현대가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98년 LG 트윈스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등판해 승리투수가 됐다. 2007년 현대의 마지막 경기 승리투수 역시 김 스카우트였다. 찬란했던 현대왕조는 그의 어깨에서 시작돼 끝났다.

김 스카우트는 "현대에 입단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특히 2000년 현대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최강의 팀이었다"며 "현대 같은 강팀은 앞으로도 쉽게 못 만날 것 같다. 그래도 NC에는 현대의 느낌이 있다. NC가 빨리 우승을 차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①편에 이어 김 스카우트와 일문일답.

-데뷔 첫해 신인왕과 우승을 차지했다.

"여러 가지로 운이 많이 따랐다. 당시 현대는 정말 투수왕국이었다. 나는 1998년 1월 미국 전지훈련까지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부상으로 캠프 중간에 귀국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잘하면 내게도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훈련했다. 덕분에 2월에 미국에서 일본으로 훈련지를 옮길 때 따라갈 수 있었다. 부상자가 많지 않았다면 일본으로 가지 못하고 한국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게 넘어간 일본에서 연습경기 성적이 좋았다. 이때 상승세가 시범경기부터 정규시즌까지 이어졌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야구를 할 수 있던 매일 매일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시즌 12승을 따냈고 한국시리즈까지 나갔다. 신인이었지만 부담감은 없었다. 정규시즌에서 이미 내 몫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편하게 던지자고 마음먹었고 한국시리즈에서 뛰어난 성적(1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1.59)으로 팀 우승에 기여했다. 신인왕까지 거침 없이 내달렸던 것 같다."

-현대에는 정민태를 비롯해 정명원 등 대투수들이 많았다.

"맞다. 괜히 현대가 투수왕국이라고 불렸던 게 아니었다. 정민태(현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정명원(현 kt 위즈 투수코치) 조웅천(현 두산 투수코치) 선배까지 최고의 투수들만 모여있었다. 나로서는 이런 대선배들 곁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선배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후배들에게 보여줬다. 운동을 할 때 항상 절실함이 묻어있었고 모든 생활 패턴이 야구에만 맞춰져 있었다. 먹는 것부터 자고 쉬는 것까지 정해진 루틴이 완벽했다. 야구에만 몰두하고 어떻게 하면 야구를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는 분들이었다. 후배 입장에서는 자연스레 선배들의 자세와 생각을 닮아갔다."

"또 현대에는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는 문화가 있었다. 실수를 하면 질책하기보다는 차근차근 하나씩 되짚어줬다. 하지만 야구 외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특히 팀워크에 해가 되는 행동은 정말 엄격하게 관리했다. 현대에서 좋은 신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이런 부분이 컸다."

-2000년까지는 탄탄대로였다.

"그때는 배터리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박경완(현 SK 와이번스 배터리 코치) 선배만 믿고 던졌다. 조금씩 마운드 위에서 타자와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배워갔다. 그렇게 1999년 탈삼진왕을 따냈고 2000년 시즌 18승과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2000년 현대는 지금 봐도 정말 최강의 팀이다. 공·수·주가 완벽했다. 그때 현대 같은 팀은 앞으로도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당시 현대의 일원이었던 것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워낙 타선이 강하니까 투수 입장에서는 점수를 주더라도 불안감이 없었다. 팀 타선이 약하면 투수는 위기에서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준호(현 NC 주루코치) 박종호(현 LG 수비코치) 박재홍(현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 퀸란(은퇴) 이숭용(현 kt 타격코치) 심재학(현 넥센 수석코치) 박진만(현 삼성 수비코치) 그리고 박경완 선배까지 타선이 정말 막강했다. 내가 5점을 줘도 타자들이 10점을 내줄 것 같은 생각이 매 경기 들었다. 내·외야 수비는 물샐틈이 없었고 여기에 대타와 대주자 요원까지 즐비했다. 완벽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팀이 짜임새가 있었다."

-2001년부터 성적이 하향세가 왔다.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투구폼을 바꿨다. 지금도 그때 결정을 후회한다. 나이도 어렸고 욕심이 너무 컸다. 내 투구폼이 독특하다 보니 주위에서 말들이 많았다. 롱런하기 힘들 거라는 얘기도 있었고 18승을 만들어낸 폼을 왜 굳이 바꾸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나를 잘 몰랐다. 주변에서 하는 말에 쉽게 휘둘렸다. 2001년 성적(6승 6패 평균자책점 5.20)이 좋지 않다보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구속도 떨어졌고 한창 좋았을 때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무리하게 훈련량을 늘렸다.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좀 더 차분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봤어야 했다."

-그래도 꾸준히 10승을 달성했고 통산 100승을 넘겼다.

"2001년 이후 어떨 때는 야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열심히 하는데도 구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그래도 2003년과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100승을 넘길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12승 7패 퍙균자책점 3.88)에는 내가 가진 마지막 힘을 짜냈다. 현대는 이미 해체가 확정된 상태였다. 나도 모르는 어떤 에너지가 내 몸에서 나왔다."

"현대의 마지막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영광이었다. 한화를 상대로 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손가락 피부가 크게 벗겨지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래도 5회까지 손이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승리투수가 됐는데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1승이었다."

-현대가 없어진지 10년이 지났다.

"요즘 입단하는 신인들은 현대를 잘 모른다. 컴퓨터 게임으로만 현대를 알더라. 지금도 현대가 없어지게 된 것은 아쉽다. 현대는 야구단 운영 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져 있었다. 과감하게 결정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였다. 매년 우승을 목표로 팀이 하나로 뭉쳤고 선수들도 희로애락을 함께했다.나는 현대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우승을 한 번도 못해보고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도 많다. 나는 4차례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봤고 모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앞으로도 현대 같은 팀은 쉽게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현대에서 오랜 기간 뛸 수 있었기에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조이뉴스24 김지수기자 gso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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