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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23> 효도각서


최근, 주위에서 '효도각서'를 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부동산의 공시지가가 껑충 뛴다고 하니 그 전에 자녀들에게 증여를 해야겠다,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지 모르는 상황이라, 효도 각서는 받아두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재산을 자녀 명의로 돌려놓으면 자신들은 기초노령연금을 30만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 나라가 주는 복지혜택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한 몫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 자식간의 증여, 상속은 냉정하게 보자면 ‘노부모 부양’을 전제로 한 거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식의 권리와 함께 책임도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재산을 미리 증여했다가 찬밥 신세가 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부동산 반환신청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효도각서는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하게 적어야 할 듯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재산을 물려받게 돼 다들 좋아할 줄 알았더니, 웬걸 분쟁도 많습니다. 사연도 집집 마다 각양각색입니다.

"2남2녀 형제가운데, 엄마 눈에는 장남 밖에 없어요. 어릴 때에도 어린 동생들은 김치반찬 밖에 못 먹을 때 오빠만 계란 후라이 먹었지요. 우리는 자취방에서 밥 해 먹으면서 학교 다닐 때 오빠만 독방 하숙을 시켰어요. 있는 집안도 아니면서 시골 땅 팔아서 오빠 자동차 사주고 결혼할 때에는 아파트 사주고. 동생들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오빠가 잘 되기만 기도했는데 오빠는 하는 일 마다 실패했어요. 사업 몇 번 말아 먹었는데 그 때 마다 다시 재기하라고, 심지어 우리에게 돈을 빌려서 사업자금을 대 주었지요. 이제 엄마에게 남은 땅 손바닥 만 한 것을 또 오빠 준다고 하네요. 너희는 다들 먹고 살 만 하니 오빠에게 주자고 하시는데, 우리가 단체로 들고 일어났어요. 그 땅 얼마 하겠어요? 그래도 우리도 자식인데 조금은 받아야지요."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아버지를 누가 모실지를 두고 형제가 옥신각신했습니다. 예전에는 장남이 당연히 모셔야 했는데 이제 상속도 똑같이 받으니 장남이 혼자서 수발책임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시집간 딸은 난색을 표합니다. 그래서 결국 착한 막내가 아버지를 수발했는데, 정작 돌아가실 때 보니 장남이 아버지 재산을 미리 증여받았던 모양입니다. 막내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모두 멘붕이 됐답니다."

"부모님은 '열손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며 형제들을 안심시켰지만 정작 재산은 몰빵하고 있더라고요. 재산은 나누면 안 된다는 봉건시대 정신이 남았는지, 아니면 장남이라서, 제일 형편이 어려워서, 왠지 모르게 쏠리는 자식이 있는 것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막 섭섭하고 화가 나요..."

이런 사연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계부 밑에서 컸어요. 계부와 계부 자식들 눈치 때문인지, 엄마는 나만 혼내고 야속하게 대했지요. 전 이유도 모르고 맞아야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계부보다 엄마가 더 미웠습니다. 늘 가슴에 응어리가 있었지요. 그런데 계부가 먼저 돌아가시고 재산을 물려받은 엄마는 여생이 편안해야 하는데 계부 자식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늘 고독하게 지냈습니다. 나도 엄마를 멀리 했습니다. 남들은 '부자 엄마에게 잘하라'고 하지만, 저를 미워하고 구박했던 엄마에게 한 푼도 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올해 들어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저를 불렀습니다. 통장을 하나 주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재혼자리가 편안하지 않아, 저에게 잘 해 줄 수가 없었다면서요. 저는 그 통장보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평생 엄마를 미워하고 살았는데, 그 말 한마디에 나의 미움과 억울함이 다 풀렸습니다. 그 말을 못 들었더라면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큰 사람'답게 계속 세상과 부딪히고 시비거는 삐딱이로 살았을 겁니다."

"우리는 정말 가난하게 컸어요. 비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전쟁이 납니다. 우산이 하나 밖에 없어 그 우산을 쓰고 가려고 4형제가 서로 싸웁니다. 늘 배고팠고,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문방구를 제대로 챙겨갈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부모님 고생은 말로 할 수가 없었지요. 늘 낡은 옷에 버스비 아낀다고 걸어 다녔는데 그런 모습이 부끄러워 학교 행사는 일체 알리지 않았습니다. 친척 경조사를 안 챙겨서 '노랭이'로 소문났고 이웃들은 우리 엄마가 앉았다 일어난 자리에서는 풀도 안 난다고들 욕했습니다. 그렇게 평생 살아서인지 몸에 골병이 들었나 봅니다. 맨날 아프다, 힘들다 하며 누워있는데 솔직히 우리도 해 줄 것이 없네요. 이번 명절에는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네요. 4형제가 모이니, 엄마가 아픈 손을 벌벌 떨면서 토지필증을 내 놓았습니다. 오래 전에 사놓은 땅이 가격이 꽤 올랐다며, 이번에 증여를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우리 자식들에게 뭐라도 물려줄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가난하다고 평생 원망했던 부모님, 이렇게 불효를 나무라네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부모님의 재산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을 매개로 전해지는 부모님의 인정, 사랑이 아닐까요?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 사랑을 독점하고 싶습니다. '니가 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게지요. 하긴, 이제 자녀들이 하나, 아니면 아예 없으니, 이런 싸움 나는 것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겠군요.

그런데 증여세, 상속세 왜 이리 높습니까? 우리나라 상속세는 최고세율구간 기준으로 50%로 일본의 55% 다음으로 높더군요. 우리 부모님이 일구어놓은 재산, 정부에서 기초노령연금으로 효도하려나 봅니다. 아무튼 그 세금 잘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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