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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 장재현 감독이 그린 신과 인간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인터뷰)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본문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이 자신의 지평을 넓혀 돌아왔다.

장재현 감독은 지난 2015년 장편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의 흥행을 성공시킨 동시에 영화계를 넘어 방송계에 오컬트 장르의 장을 열었다. 첫 영화의 성공은 감독에게 양날의 검처럼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전작의 흥행이 단지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이를 뛰어넘는 창작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내몰린다. 장재현 감독에게 지난 4년은 그렇게 사투를 벌인 지난한 시간이었다.

종교 소재와 스산한 분위기는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의 공통 분모이지만, 이 두 작품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캐릭터가 극을 리드하는 '검은 사제들'과 달리, '사바하'는 휘몰아치는 서사에 캐릭터들이 휘청거리고 끌려간다. '검은 사제들'에서 옅게 전해진 신과 인간에 대한 고민은 '사바하'의 주된 화두로 더 깊고 진하게 내재돼 있다. 장재현 감독의 발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바하'는 종교 스릴러물이라는 장르, 선과 악이 전복되는 전개로만 매듭지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신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박 목사의 원망, 그래서 역설적인 절절한 간청이 뒤섞인 물음은 매 장면, 장면들 사이를 부유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 뒤에도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상처, 무력감과 허망함에 좌절하는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은 잔상으로 되새김질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장재현 감독을 만나 '사바하'(감독 장재현, 제작 외유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바하'는 신흥 종교 집단을 좇던 박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영화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하 장재현 감독과의 일문일답

-'검은 사제들' 이후 햇수로 4년 만에 '사바하'로 돌아왔다.

"'검은 사제들'이 내 경쟁작이다. 나름 형제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관객이 기대하는 지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거다."

-다시 종교, 더구나 모태신앙인 기독교가 아닌 불교 소재의 오컬트다.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게 재밌다. 이게 영화를 만드는 나의 일종의 구도 방법인 것 같다. 또 작가로서 종교의 그로테스크함을 찾는 걸 좋아한다. 실제로 내 성격이 밝다.(웃음) 그래서 더 어두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진중한 감독님들이 코믹물을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죄송하다, 프로답지 못했다.(웃음) 후반 작업도 길어졌는데 배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고 기다려줬다.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겠나. 그런데 영화를 그날 처음 보고 배우들이 너무 좋아해줬다. 꽁꽁 얼어있었던 노고가 녹아내린 채 간담회 현장으로 갔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시험 잘 봤다고 평가 받는 것처럼 녹아내렸다. 감격스러웠고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나왔다."

-'사바하' 작업이 힘들었나.

"시나리오를 쓰는 게 어려웠지만 촬영하고 후반 작업을 하는 건 재밌었다. 영화 자체가 어려워 고민이 많았다. 육체적인 피곤은 괜찮았다."

-어떤 점이 재밌었나.

"시나리오 자체가 문학적인데 이게 시네마틱한 장면들로 만들어졌을 때 배우들이 좋아해줬다. 파이팅 넘치는 스태프들과 함께 해 재밌는 작업이기도 했다."

-불교의 '악'을 주요 테마를 다뤘다.

"책임감이 있었다. 소재로만 차용하는 게 아니라 '적대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테마를 잘 녹이고 싶었다. 불교는 '악'을 표현할 때 '포식자'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포식자'는 내게 '사바하'를 만드는 데 중요한 키워드였다. 모든 것이 상생인데 그 밸런스를 깨뜨리는 순간 '악'이 생긴다.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욕망, 신이 되고자 하는 생에 대한 집착을 '악'으로 상정하고 이를 불교 사상에 맞추려 했다. 그리고 뱀에 대한 선입견, 색의 대비 등 영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오컬트인 '검은 사제들'과 다소 비슷한 장르를 내놓았다.

"어떤 감독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하면 원하는 걸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나는 무조건 '내가 보고 싶은 걸 만들자'는 주의다. 극장에 가서 '나 이거 볼 것 같아'라는 감정이 들어야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물어보면서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그래야 내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오컬트 분위기가 나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불교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하지만 '사바하'를 오컬트라고 명명하기보다는 '오컬트 성향을 띤 미스테리', '다크월드'라고 표현하고 싶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의 화두는 비슷해 보인다.

"맞다.'신과 인간'이다. 현대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신에 대한 고민들이 역설적으로 짙어진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이런 지점이 내가 던지는 화두다. 우리 주변에서도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일들이 자주, 많이 벌어지지 않나. 그런 것들이 더 인간적이고 드라마틱하고 재밌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검은 사제들'은 캐릭터가 극을 끌고 가는 반면, '사바하'는 그 반대다.

"'사바하'를 시작하기 전에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감명 깊게 봤다. 필사했을 정도다. '스포트라이트'는 이야기의 묵직함이 크더라. '사바하'의 캐릭터를 잡고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이 영화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과 형제영화라면 형제영화이지만 정반대의 작품이다. 장르적으로도 꽤 다르다. '검은 사제들'은 엑소시즘이 큰 한 축이지만 '사바하'는 미스터리, 범죄 요소가 크다. '검은사제들'은 한여름인 7월 방에서 땀 흘리는 뜨거운 작품이이라면 '사바하'는 서늘한 평양 물냉면 같은 느낌이다.(웃음)"

-그래서 '서사에 캐릭터가 묻힌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는데.

"불교와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깊숙하게 있기 때문에 캐릭터 플롯을 명확하게 컨벤션(장르적인 문법)에 맞췄다. 박 목사는 총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은 채 사건에 말려들어가고 관망하고 뭔가를 깨닫는 전통적인 탐정 플롯이다. 나한(박정민 분)은 누군가의 지령을 받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빠지는, 전형적인 킬러 포지션이다."

"편집으로 많이 다듬었는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밸런스가 깨진다. 각자의 이야기와 장르적인 쾌감을 모두 가져가는 건 욕심인 것 같다.혹시 두 번 관람할 기회가 있다면 다른 지점이 보일 거라 생각한다. 두번째에서는 마음으로 봐지고 캐릭터의 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N차 관람을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다.(웃음)."

-캐릭터들의 감정 변화가 다소 거칠게 느껴진다. 특히 박 목사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박 목사는 내가 가장 많이 투영된 인물인데 사건을 목도하고 이후 느끼는 감정을 관객에게 가장 많이 전달하기 때문에 그 전부터 감정이 소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 목사를 연기한 이정재 선배가 중후한 분위기로 배우들이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줬다."

-익숙한 서사가 아니라서 설명을 어느 정도까지 할지 고민했겠다.

"친절함과 속도감 사이에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수많은 모니터링을 걸쳤다. 지금 완성본이 어느 정도 그 중간 지점이라 생각한다. 시나리오는 '설명충'인 느낌도 있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장치들이 '사바하'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관객을 끌어당기는 방법 중 하나였다. 또 그런 점들이 이야기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지 않나 싶다. 덕후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네마틱해 보여 그런 걸 좋아한다."

-극 중 금화(이재인 분)의 생리혈이 서사를 뒤집는 중요 장치다. 극 중 금화, 또는 '그것'(이재인 분)을 여성으로 굳이 표현한 이유는 무엇이고 생리혈로 어떤 걸 표현하고 싶었나.

"각기 표현과 상징만 다를 뿐 기독교와 불교에서는 인간의 신적인 감정이 '모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조건 없는 유일한 감정이 모성밖에 없다. '사바하'에서도 모성이 중요한 키다. 나한을 움직이는 엔진 같은 감정도 모성이지 않나. 금화 또는 '그것'에게 최대한 모성이 그려졌으면 했고 생리혈도 모성의 강함을 표현하는 장치다. 극 중 남성성이 모성의 안타고니스트로 작동해 이 둘의 느낌이 강인하게 대비되도록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극 초반 배우 이재인의 클로즈업샷이 가장 인상적이더라.

"맞다. 금화의 초반 클로즈업샷은 강력한 맥거핀이다. 또 금화를 강렬하게 전달해 관객이 '얘,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겨야 나한이라는 캐릭터에 원동력이 생긴다. 금화의 클로즈업샷은 이후 서사를 끌고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기독교 모태신앙인데 이 지점이 '사바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검은 사제들'을 끝내고 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많았다. 신이 선하고 우리를 다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 씁쓸했다. 그래서 '사바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내 슬픈 감정이 많이 묻어있다. 다만 이런 고민을 작가로서 서브 텍스트로만 사용하고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게 첫번째 목표였다. 관객이 호기심을 갖고 몰입감 있게 영화를 보길 바랐다."

-그래도 비극성이 짙은데.

"물론 '사바하'도 기본적으로 권선징악 구조가 내재돼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후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음 했다. '검은 사제들'은 일부러 해피엔딩으로 맺으려는 게 있었다. 하지만 '사바하'는 너무 큰 테마와 사건을 다루는 데 책임감이 컸고 그런 맥락에서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사바하'를 만들고 난 후 신에 대한 고민과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됐나.

"사실 달라진 점은 없다. 박 목사는 나의 그런 모습이 투영됐고 극 마지막 부분에서 기도를 하는 대사와 감정이 내가 여전히 서있는 지점이다. 짠하고 슬프지 않나."

-'검은 사제들' '사하바', 그리고 다음 영화는 무엇이 될까.

"모르겠다. 다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창동 감독님이 '좋은 이야기는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우연히 만나는 거다'라는 말을 하셨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를 만날 때까지 열심히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웃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사진=CJ엔터테인먼트]

한편 '사바하'는 지난 20일 개봉해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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