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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친환경 명분에 상식마저 잊은 환경부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지난 2주간 유통업계의 '뜨거운 감자'는 환경부였다. 환경부가 친환경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유통업계 현장에서 '상식'으로 통하던 묶음할인 등 일반적 영업 활동에 규제의 칼을 들이대서다.

환경부는 지난 18일 유통 과정에서 제품을 재포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품의 포장 재질·포장 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대한 규칙'을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환경부는 규칙 입법예고 후 20여 차례에 걸친 업계 간담회를 가졌으며 지난 1월 제도 개정까지 마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중 '묶음 할인 판매시 재포장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마치 할인판매를 하지 말라는 것처럼 해석됐다.

실제 환경부가 내놓은 재포장 금지 사례에 라면·참치·요구르트 등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들이 대거 포함되기도 했다.

정부가 '묶음할인'을 규제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일었던 규제 시행을 유예했다. [사진=이마트]
정부가 '묶음할인'을 규제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일었던 규제 시행을 유예했다. [사진=이마트]

이에 유통업계와 소비자는 일제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할인판매라는 정상적 영업·마케팅 활동까지 규제하는 사상 유례없는 발상이라는 강한 반발이 일었고 시민들으로부터도 '정도껏 하라'는 비판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환경부는 가격할인 행위 자체가 아닌 제품을 비닐 등으로 재포장하는 등 불필요한 포장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한 발을 뺐다. 또 별도의 포장 박스가 아닌 테이프로 말아 판매하는 등의 행위는 가능하며 낱개 상품을 싸게 파는 등의 조치도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달아오른 여론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결국 환경부는 지난 22일 고시안과 가이드라인 관련 내용을 이해관계자들과 다시 논의하고 계도기간의 성격으로 법 집행을 내년 1월까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환경부의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대해 일각으로부터는 여론의 '간 보기'를 한 후 정책적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무턱대고 정책을 만들고 나서 타당성을 검증할 것이 아니라, 정책을 만들기 이전부터 타당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야 했다는 평이다.

또 정책 기획 과정에서부터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외부 충격에 민감한 제품들은 테이프 등으로 간단히 포장했을 때 파손 및 오염의 위험이 있으며 일부 제품은 구조상 박스 재포장이 아닌 다른 형태의 묶음 포장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비판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는 규제 대상 상품군 선정 등 가장 기본적인 결정에서부터 일관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이 같이 오락가락 하는 모습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소비자와 기업"이라고 말했다.

결국 환경부가 '백기'를 들면서 이번 규제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 과정 논란에 이어 또 다시 정부가 마련한 정책이 여론 등에 떠밀려 한 순간에 뒤집어졌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다시 한 번 남기게 됐다. 이는 결국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마련된 정책이 불러온 한 편의 '코미디'나 다름없는 일이다.

개인이 그렇듯 정부에게도 실수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정부 기관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산업의 전문가가 포함될 수 없는 만큼 이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 기관에게는 업계의 전문가들에게 정책에 대한 조언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또 이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한 번의 실수는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수는 실력에 대한 의문이 되고 곧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가 앞으로 최근 반복되고 있는 논란을 참고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친환경' 이라는 대의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보다 면밀히 검토된 완벽한 정책이 시행되길 바란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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