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 투병·베토벤과의 만남…31년 9개월 20일 살다간 ‘인간 슈베르트’의 모습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 ‘슈베르트 평전’ 출간…우리가 몰랐던 '가곡의 왕' 담아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가 쓴 '슈베르트 평전'이 출간됐다.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1. 31년 9개월 20일. 슈베르트는 겨우 이만큼 살았다. 무엇인가를 해내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놀라운 음악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의 머리 속엔 마르지 않는 멜로디 주머니가 있는 듯하다. 주옥같은 선율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다. 이런 이유로 죽음의 원인과 관련해 여러 소문이 뒤따랐다. 진실에 접근하는데 많은 난관이 있었다.

공식문서에 기재된 그의 사인은 ‘신경열(Nervenfieber)’, 오늘날 용어로 장티푸스다. 하지만 여러 기록과 증언, 정황 등을 참고했을 때 목숨을 잃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매독이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그를 사창가로 안내한 사람은 친구였던 시인 쇼버다. 쇼버를 중심으로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슈베르트의 밤’이라는 뜻의 이 살롱모임을 통해 슈베르트는 밤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숨지기 직전 매독 3기였다. 균이 온몸에 퍼져 삭발을 했고, 현기증과 두통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죽음을 예감했다.

매독은 그 당시에도 부끄러운 병이었다. 고치기 어려웠고 더는 증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가족들은 사망 서류에 이를 명시할 수 없었다. 슈베르트의 아버지, 형, 누이 등 가족 모두는 저마다 사인을 숨겨야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 물론 사망 직전 슈베르트에게 장티푸스와 비슷한 증세가 있었다. 결국 매독 말기 증상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잘못된 치료 요법으로 인한 수은 중독과 자기 관리 소홀로 증상이 심화됐고 거기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사망했다.

#2. 슈베르트에게 베토벤은 BTS 뺨치는 아이돌이다. 자신보다 스물일곱 살 더 많은 베토벤을 늘 선망했다. ‘가곡의 왕’이 18세에 작곡한 ‘달에게(An den Mond)’라는 노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반주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어린 슈베르트가 존경과 흠모의 마음으로 ‘악성’의 음표들을 자신의 작품에 끌어온 것이다.

슈베르트는 빈에서 태어나고, 빈에서 자라고 활동하고, 빈에서 죽은 100% 빈 토박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빈 소년 합창단’ 출신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태어났고, 20세 때 빈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같은 도시 빈에서 서로 2km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빵집에서, 카페에서, 악보가게 등에서 가끔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을까.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만남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1827년, 베토벤이 죽기 1주일 전이다. 거장의 임종을 앞두고 빈에서 음악 좀 한다는 셀럽들이 잇따라 문병을 왔다. 슈베르트도 친구들과 함께 병상에 누워 있는 베토벤을 찾아 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악보를 건넸다. ‘선생님, 떠나시기 전에 제 작품 칭찬 한번 해주세요’라는 마음이 담겼으리라. 악보를 본 베토벤은 “정녕 네 안에는 신성(神性)이 반짝이는구나. 너는 위대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될거야. 자네를 더 일찍 알지 못한 아쉽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는 신빙성이 낮다. 기록의 작성자가 ‘일화에 살을 붙이고 각색을 가미하는 고질적인 버릇이’ 발동해 그럴듯하게 꾸몄을 가능성이 높다. 작곡가로 활동한 시기가 15년도 채 안되기 때문에, 슈베르트를 둘러싼 야사는 그의 죽음만큼이나 신비하게 포장되기 쉽다.

음악학자 엘리자베스 노먼 맥케이가 쓴 ‘슈베르트 평전’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의 음악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와 음악에 정통하고 전문적 식견을 갖춘 독자를 모두 만족시킬 만한 책이다.

베일에 싸인 슈베르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상세한 자료 조사와 취재, 섬세한 필치를 바탕으로 슈베르트의 생애를 면밀히 재해석했다.

특히 슈베르트가 직접 써서 남긴 기록 자료(일기와 메모, 시, 산문, 서간문 등)와 다른 책에서 흔히 보지 못했던 삽화가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은 슈베르트의 팬과 음악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죽음의 원인, 베토벤과의 만남여부 등 풍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에 근거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다.

저자는 작곡가의 작품에 관한 세부 정보를 최소한으로 하고 되도록 ‘인간 슈베르트’에 집중하고자 했다. 우리가 몰랐던 '가곡의 왕' 이야기가 술술술 읽힌다. 슈베르트가 받았던 학교 교육, 문학·예술·미학·도덕을 주제로 친구들과 나누곤 했던 이야기들, 출판업자들과의 협상 과정과 대체적인 관계, 빈 외곽 지역으로의 여행 등 어쩌면 사소하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을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에 성큼 다가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풍월당·이석호 옮김. 712쪽·4만8000원.

민병무기자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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