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人] '당신이 죽였다' 이호정 "원했던 악역 재미有, 처참하게 망가져"

[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굿보이'와 '당신이 죽였다'에서 눈에 콕 박힐 정도로 매력적인 마스크와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이호정은 거듭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며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원했던 악역을 했으니 이제는 '평범'한 로맨스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열일' 의지를 표현했다. 긴 말 필요없이 한 마디 한 마디에 강단과 묵직함이 느껴지는 배우 이호정이 앞으로 그려나갈 배우 '열일'에 기대가 커진다.

최근 전 세계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감독 이정림)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가 원작이다.

드라마 '악귀', 'VIP'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았던 이정림 감독이 연출을 맡아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대하는 두 여자의 우정을 담아냈다. 여기에 전소니와 이유미, 장승조, 이무생, 이호정 등이 열연했다.

이호정은 두 얼굴의 노진표(장승조 분)의 동생이자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진영 역을 맡아 상상을 초월하는 악역의 새 얼굴을 그려냈다. 최초 여성 경찰청장을 꿈꾸는 야망녀 노진영은 작은 흠집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올케 조희수(이유미 분)가 가정폭력 피해를 신고하려 하자 자신의 앞길에 커다란 방해물이 될 거라는 계산 하에 그를 압박한다.

후반부엔 더욱 악랄하게 행동한다. 장강의 정체를 알아채고 뒤에서 수를 쓰는 동시에 커리어를 위해 협박과 납치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 이호정은 이런 노진영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소화해내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공적이 무너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심리적 불안감과 야망을 눈빛과 표정 속에 세밀하게 담아내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다음은 이호정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작품 공개 후 체감한 반응이 있었나?

"직접적으로는 체감되는 것이 없었고, 주변에서 연락 오는 건 "형사 같았다", "못된 애 같았다"였다."

- 악역인데,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땠나?

"너무 재미있었다. "네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읽어보라고 하셔서 봤는데 4부까지 볼 때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역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뒤부터 너무 재미있더라. 저는 역할로서 작품을 보니까 저로서는 악인이지만 흥미로웠다. 야망에 미쳐있는 여자다. 나의 커리어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보이는 캐릭터가 그게 재미있다고 느꼈다."

- 형사 역할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스타일리시한 이미지가 있었다. 모델 출신이기도 해서 핏이 좋아서이기도 할 텐데, 그런 스타일은 어떻게 잡으려고 했나?

"일부러 멋있으려고 한 건 아니다. 형사라 활동하기 편하게 입고 싶었다. 현장을 가야 하는 순간엔 발로 뛰어야 하니 상의를 짧게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사무직을 보거나 사람을 만날 때는 긴 코트를 입는다고 설정했다.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 지하 주차장에서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노진영 캐릭터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이런 설정은 원래부터 있었나?

"감독님의 의도였던 것 같은데, 진영이의 상황 자체가 급박하다 보니 옆이나 주변 상황은 안 보이는 거다. 그런 것이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 언급한대로 출세욕이 강한 인물인데, 형사지만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감추려고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성향이 강해지는데 어떻게 인물을 바라보고 연기하려 했나?

"진영이는 오빠를 걸림돌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캐릭터 설정했다. 집안 자체가 기괴하다. 그런 집안에서 오래 자랐고, 노진표와 노진영은 보통 남매 같지 않다. 서로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빠가 때리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그런 마인드로 자기 것만 보고 질주한다고 생각했다. 형사지만, 가족 내 폭력은 본인 입장에서 걸림돌이 될 테니 어느 정도는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 배우들은 악역을 연기하면서 재미를 많이 느낀다고 하는데, 연기가 끝난 후 작품으로 마주할 때는 또 다른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시청자로 봤을 때는 어땠나?

"저는 상대 배우와 붙는 신이 거의 없었다. 휴대폰과 핸들과 연기한 것이 절반 이상이다. 일련의 과정들을 글로만 보다가 화면으로 마주하니 너무 못 된 거다. 그래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주하는 순간이 없어서 무시하고 더 못되게 나오게 된 것 같다."

- 상대 배우와 붙는 장면 없이 혼자 연기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었나?

"좀 더 붙는 신이 있었다면 큰 장면에서 특별한 케미가 더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한다. 하지만 어려움보다는 재미있게 촬영했다."

- 감독님과는 어떤 대화를 많이 나눴나?

"제가 급하게 촬영에 들어갔다. 찍고 있던 작품이 있어서 같이 촬영해서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기억에 남는 건 "진영이는 모든 것이 깔끔했으면 좋겠다. 머리도, 옷도 결벽증 수준으로 깔끔하다가 갈수록 점점 망가졌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걸 잘 살려주셨다. 감독님이 촬영 중간 많은 디렉션을 주시지는 않으셨다. 저를 많이 믿어주셨다."

- 후반 진영의 악행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는다. 발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연기했나?

"보기 싫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졌으면 했다. 진영이 입장에서는 화가 너무 많이 난 상태다. 평생 꿈꿔왔던 것이 내일이면 이뤄지는데 다 무너진 거다. 그러니 제정신이 아니다. 처절하게 소리 질렀으면 했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악 같은 것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와 창피함이 크다. 죽고 싶고 짜증 나고, 억울하다. 복합적인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명예를 중시하던 사람이 인간쓰레기라고 밝혀졌으니 창피함이 컸다고 본다."

- 장승조 배우는 1인 2역이긴 했지만, 두 인물 모두 악인이었다. 촬영할 때 서로 에너지를 뿜어내야 하는 것이 있었을 텐데 어땠나?

"노진표와 만나는 건 초반 식사 장면 딱 하나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장강으로 마주했는데 재미있었다. 서로 세야 하다 보니 맞붙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잘 나오지 않았나 싶었다. 갈대밭을 뛰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뜨기 직전이라 급하게 찍어야 했다. 때리고 제압해야 해서 서로 격해져 있던 상태였다. 하나라도 잘못되면 안 되니까 빨리 찍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제 촬영이 후반부 12월, 1월에 다 몰려있어서 엄청 추웠다. 뭔가 어긋나면 안 되니 긴장한 상태로 촬영했다."

- '당신이 죽였다' 전에는 JTBC 드라마 '굿보이'로 시청자를 만났다. '굿보이' 역시 강렬한 캐릭터였는데 연달아 센 역할을 연기한 소감도 특별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연기하면서 재미있었다. 흔치 않은 악역이라고 느꼈다. 저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하게 촬영한 것이지만, 저를 세게 보시는지 그런 역할이 좀 많이 들어온다. 저도 그런 역할에 끌리나 보다. 눈에 확 보이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 앞으로 또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이제는 평범한 것을 해보고 싶다. 제가 '도적' 인터뷰에서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말하는 대로 되더라.(이호정은 '도적' 관련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찐악역을 해보고 싶다. 앞도 뒤도 없고 동정할 수도 없고 연민조차 없는 악역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로맨스,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별하는 과정이나 이별 후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다. 또 우리네 이야기나 직장인 연기를 해보고 싶다. 액션도 다시 하고 싶다."

- 이제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해를 돌아보면 어떤가?

"벌써 11월 중순이다. 시간이 참 빨리 간 것 같다. 그래도 올해 두 작품이 나왔다. 작품이 나오기 전에는 기다리느라 긴장되고 설레고, 공개된 후에는 어떤지 궁금해서 반응도 보고 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 간다. 금방 가버린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