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 "Me, We"


2004년 7월 휴스턴의 미니트메이드 파크에서 벌어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무하마드 알리는 시구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장을 가득 메운 미국 야구팬들은 알리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로 알리를 환영했다.

96년 올림픽 최종 성화자로 대중 앞에 다시 선 알리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성인 대접을 받았다. 젊은 시절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 증오받던 알리는 사라졌고 이제 알리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그런 인물이 돼 있던 것이다.

2002년에는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와 함께 당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지지하는 광고를 촬영했고 2004년 2월에는 슈퍼보울 광고에 출연해 금발의 백인 어린이에게 “미래는 너희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알리를 누구나가 좋아한 건 아니었다.

2004년 알리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시구를 했을 때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투수 밥 펠러는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펠러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소식을 듣고는 자원입대해 2차 대전에 참전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다. 그런 그에게 이유야 어떻든 알리의 병역기피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수십년이 흐른 상황에서도 알리에 대한 그의 감정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펠러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알리가 이 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반대한다. 그는 자기 이름을 바꾸고 종교를 바꾸고 결국 나라에 대한 의무를 회피한 사람이다. 나는 그게 아주 역겹다”고 노골적인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60년대 미국최고의 흑인 풋볼 스타이자 흑인 인권 운동가로 활약한 짐 브라운은 알리가 복권되고 평화와 저항의 상징에서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맨으로 거듭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랑한 알리는 모두가 증오한 알리였다.”

그렇게 본다면 알리는 분명 저항운동가 보다는 역시 복서였다. 흑인 인권 운동과 반전에 앞장서며 미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주도했지만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위해 독재자가 자신의 개인 홍보를 위해 유치한 경기를 벌였고 아내가 버젓이 살아 있는 가운데 외도를 하다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다.

그는 성인이라기엔 너무도 허점이 많은 인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순히 뛰어난 복서라기엔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력이 너무도 컸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평범한 흑인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운율에 맞춰 시 쓰기를 좋아했던 알리는 결국 “나비 같이 날아 벌같이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는 멋진 시를 읊으며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영광의 순간도 잠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고 의도했든 안 했든 60년대 미국의 인권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됐다.

병역을 기피하며 생계 수단인 복싱 선수 자격증까지 빼앗긴 그는 유명 대학에 강연을 다녔고 그에 강연료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시련을 겪어야 했다.

74년 알리의 기념비적인 명승부 ‘럼블 인 더 정글’은 한 영세 영화제작자에 의해 다큐멘트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영화를 배급하겠다는 회사가 나오지 않아창고 속에 쳐박혀 있다가 한 독립영화제를 통해 알려졌고 22년이 지난 96년에야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그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 기록 영화상을 받았다.

그 영화가 바로 ‘우리가 왕이었을 때(When we were kings)’다. 이 영화는 알리와 조 포먼의 경기와 함께 알리 인물 평전을 함께 담고 있다.

흑인 영화 감독 스파이크 리 등 몇몇 사람들이 인터뷰가 담겨져 있는 가운데 이 경기가 이뤄지는 과정부터 끝날 때까지를 취재한 작가 조지 플림턴의 마지막 인터뷰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인터뷰는 알리가 미국의 명문 대학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강연을 했을 때 자신이 지켜본 내용을 담고 있다.

알리는 긴 문장이나 단어를 읽지 못하는 난독증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알리는 그의 빠른 발과 운동 신경 덕분에 풋볼팀코치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풋볼팀에 들어가면 대학을 가야 했지만 알리는 난독증 때문에 자신이 대학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풋볼을 하지 않고 복싱에 전념한 것도 난독증 덕분이기도 했다.

그런 알리가 미국 최고의 수재들 앞에서 강연을 한 것이다. 알리가 준비한 것이라고는 간단한 메모장 하나. 특유의 말솜씨로 때론 재미있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윽고 강연이 끝나고 알리가 강단을 내려올 때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소리쳤다.

“우리에게도 시를 하나 읊어 주시오”

2천명이 가득 차 있던 식장은 알리의 시를 듣기 뒤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제 플림턴의 당시 회상으로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한 학생의 요청을 받은 알리의 입에서는 ‘Me, We(나, 우리)’라는 짧은 시가 나왔다. 지금까지 영어로 된 가장 짧은 시는 ‘Adam, Had’em’이었다. 하지만 알리의 시는 단 두 마디로 그보다 짧았다. 그리고 그 시에는 단순히 짧은 시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정말 대단한 복서였다. 그리고 정말 대단한 인간이었다.” (끝)

/김홍식 기자 diong@joynews24.com

*지금까지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은 알리 자서전인 ‘King of the world’와 알리를 상대한 복서들을 인터뷰해 책으로 엮은 Facing Ali’, 알리의 사진과 함께 그의 일대기를 다룬 ‘Muhammad Ali’ 외에 ‘What’s my name, Fool?’, ‘When We were Kings’, ‘Champions of the Ring’, ‘I had a Hammer’, ‘Unforgivable Blackness’ 등의 관련서적과 기록 필름, 각종 언론 보도 내용 등을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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