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08] 결산- 유로, 전술의 '4대 키워드'


'꿈의 축구제전' 유로 2008은 '무적함대' 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유로 대회는 월드컵의 중간 연도에 열리기 때문에 2년 후 월드컵에서 어떤 축구 전술이 유행할 지 미리 알아보는 창이 된다. 유로 2008 전술의 4대 키워드를 짚어본다.

★탈압박의 해법은 스위치와 커팅

유로 2008 공격 전술에서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바로 '스위치(switch)'와 '커팅(cutting)'이다. '스위치'는 '위치 바꾸기', '커팅'은 '날카롭게 자르고 들어가기'로 번역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이 이번 유로 2008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절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수들이 꼭 해내야 할 필수 움직임이었다. 단지 이번 유로 2008에서 그런 움직임들이 훨씬 빠르고 다양하게 나타났다는 게 특징적인 점이다.

스위치와 커팅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이유는 ▲더욱 강력해진 상대 수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상대 수비진의 밸런스를 무너트리기 위함이다. 이번 유로 2008에서 스위치와 커팅은 최전방 스트라이커와 그 뒤에 포진하는 2선 공격수들(섀도 스트라이커와 좌우 윙어)을 중심으로 아주 활발하게 이뤄졌다.

출전 16개국 중 스위치와 커팅이 가장 좋았던 팀을 꼽으라면 역시 공격 축구를 극대화시킨 스페인, 네덜란드, 러시아를 들 수 있다.

스페인은 유로 2008에서 단연 최강의 화력을 뽐냈다. 최전방의 토레스, 비야는 물론이고 공격형 미드필더 이니에스타와 실바, 플레이메이커 샤비 등이 수시로 위치를 바꿨고 환상적인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 수비진을 철저히 무너트렸다. 실제 스페인의 포메이션을 보면 센터포워드, 윙어, 미드필더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였다. 여기에 2선에서 빠져들어갈 때 타이밍에 맞춰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볼을 찔러주는 능력도 단연 유럽 최고였다.

네덜란드는 '죽음의 조'인 C조를 조 1위로 통과했다. 웨슬리 슈나이더, 라파엘 반데바르트, 디르크 카윗, 아르옌 로벤, 로빈 반 페르시 등은 수시로 포지션 체인지를 하면서 상대 수비를 혼란에 빠트렸고, 조그만 빈틈만 생기면 번개처럼 자르고 들어가 패스를 받은 후 놀라운 결정력으로 마무리를 했다. 비록 러시아 돌풍에 휘말려 8강에서 탈락했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이 보여준 스위치와 커팅은 단연 최고였고, 향후 전 세계 팀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공격 전술로 평가받았다.

러시아 선수들의 스위치와 커팅 역시 발군이었다. 이들은 시종일관 자리를 바꾸며 패스를 주고받았고, 경기를 지배해 나갔다. 그 중에서도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활동 폭이 가장 넓었다. 그리고, 이고르 셈쇼프, 디니야르 빌랴레티노프, 콘스탄틴 지리아노프의 포지션 체인지도 활발했다. 여기에 센터포워드 로만 파블류첸코가 가운데에서 좌우로 빠져나갈 때 2선 공격수들의 침투 플레이도 돋보였다. 세계적인 '축구 석학'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역시 "유로 2008에서 러시아 선수들의 움직임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이들 세 팀 외에도 결승전에 진출한 독일과 연속적인 역전승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터키,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한 크로아티아의 스위치와 커팅 플레이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원톱과 섀도 스트라이커 유행

유로 2008에서는 최전방에 1명의 '타깃맨'을 두고 그 뒤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섀도 스트라이커를 기용하는 공격 포진이 유행했다. 이 포진은 타깃맨의 폭발력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2선 공격수의 개인기와 움직임을 극대화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축구에서 어떤 형태의 포진이 좋다는 정답은 없다. 단지 각 팀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고, 경기 결과에 따라 그 평가를 받는다.

유로 결승전에서 맞붙은 스페인과 독일을 비롯해 4강에 오른 터키와 러시아, 8강까지 진출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체코, 스위스, 폴란드, 루마니아 등 많은 국가들이 '원톱+섀도 스트라이커'로 경기를 운영했다.

스페인과 독일은 대회 기간 도중 공격 형태를 바꾼 케이스다. 스페인은 8강전까지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비야 투톱으로 나섰다가 러시아와의 준결승 도중 비야가 부상으로 나가는 바람에 토레스-파브레가스 체제로 바꿨다. 또 독일은 조별리그 1,2차전까지만 해도 클로제-고메스 투톱 형태였지만 고메스가 여러차례의 결정적인 골 찬스를 놓친 이후 클로제를 원톱으로 놓고 그의 뒤에 섀도 스트라이커를 받쳐주는 형태로 전환됐다. 독일은 섀도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왼쪽 윙어 포돌스키가 중앙으로 빠져 뒷받침하거나 공격형 미드필더 발락이 침투하는 등 변형된 형태로 운영됐다.

유로 2008 대부분의 국가들이 '원톱+섀도 스트라이커'로 나선 데 비해 대회 기간 내내 투톱 시스템을 고집한 팀들도 있다. 이 국가들은 크로아티아,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이다.

올리치-페트리치 투톱을 기용한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 B조에서 독일을 꺾는 등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8강전에서도 터키와 명승부를 펼쳤지만 승부차기로 아깝게 졌다. 하닉-린츠를 최전방에 내세운 오스트리아도 비록 조별리그 B조에서 탈락했지만 나름대로 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라르손-이브라히모비치(또는 로젠베리)를 앞세운 스웨덴은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해 팬들을 실망시켰다.

★수비형 MF의 성공은 팀의 성공

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포백 라인 앞에서 상대의 공격을 1차로 스크린하는 것은 물론이고 패스 차단, 마킹, 커버 플레이 등을 하면서 팀의 밸런스를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적인 수비 라인이 앞쪽으로 옮겨가는 현대 축구의 특성 상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얼마나 중심을 잘 잡아주느냐에 따라 팀이 공격 및 수비 전술을 전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번 유로 2008에서도 안정된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유한 팀의 성적이 모두 좋았다. 결승에 진출한 스페인과 독일을 비롯해 4강에 오른 터키와 러시아, 8강에 진출한 네덜란드,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등도 2선 공격수(공격형 미드필더)와 포백 사이에 든든한 수비형 미드필더들을 포진시켰다.

국가별로는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고정시킨 팀과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놓고 다른 선수들이 번갈아 포지션 이동을 하면서 역할 분담을 한 팀으로 구분됐다.

8강 이상 오른 팀 중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고정시킨 나라는 독일(히츨스페르거-프링스), 네덜란드(엥헬라르-데용), 포르투갈(프티-메이렐레스)이고, 1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내세운 국가는 스페인(세나), 러시아(세마크), 터키(아우렐리우), 크로아티아(코바치)였다.

네덜란드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우아한 플레이를 전개한 엥헬라르와 중원의 파이터를 맡은 데용으로 역할 분담이 확실히 이뤄졌다. 스페인의 세나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귀화 선수로 이번 대회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세마크는 히딩크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자신 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팀 플레이를 뒷받침했다.

★더욱 강력해진 수비수의 오버래핑

유로 2008에서는 수비수들의 오버래핑이 역대 그 어느 대회보다도 강력했다.

스포츠 일간지 해설위원으로 유로 2008을 계속 관전한 전 축구 스타 서정원 씨는 "토털 사커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축구에서 수비수들의 공격 참가는 팀 승리를 위한 필수 코스"라며 "수비수들의 오버래핑은 동료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의 집중 마크로부터 벗어나도록 했고, 효율적인 팀 오펜스를 전개하도록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위력적인 공격을 선보인 수비수는 독일의 왼쪽 풀백 필립 람이다. 그는 놀라운 지구력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수시로 상대의 왼쪽 측면을 파고들어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람의 플레이를 보면 풀백이 아니라 전문 윙어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람은 터키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기도 했다.

람과 함께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인 측면 수비수들은 스페인의 세르히오 라모스, 러시아의 유리 지르코프, 터키의 사브리 사리오글루, 네덜란드의 지오반니 반브롱크호르스트, 포르투갈의 보싱와 등을 꼽을 수 있다.

풀백의 오버래핑이 주로 측면 돌파 및 크로스로 이뤄진다면 센터백(중앙 수비수)들의 오버래핑은 세트 피스 때의 헤딩이 대부분이다. 독일의 페어 메르테사커(198cm), 러시아의 데니스 콜로딘(187cm), 터키의 괴칸 잔(192cm), 이탈리아의 조르조 키엘리니(186cm), 크로아티아의 요십 시무니치(192cm) 등은 팀의 세트 피스 때는 지체 없이 상대 팀 진영으로 건너가 위력적인 공중전을 벌였다.

포르투갈의 페페는 187cm의 중앙 수비수지만 터키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때 컴비네이션 플레이를 시도하며 중앙을 파고든 뒤 득점포를 터뜨렸다. 센터백들에게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조이뉴스24 빈(오스트리아)=장원구 전문기자 playmaker@joynews24.com

관련기사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