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08]조직력, 역습, 정신력...스페인 우승이 한국대표팀에 준 교훈들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만 추가하면 또 다른 월드컵으로 손색없다는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8)'가 지난달 30일(한국시간) '무적함대' 스페인의 우승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64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 우승 이후 44년의 기다림 끝에 유럽 정상에 오른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세밀한 패스를 통해 상대의 공간을 점령하며 공격에 나서는 것은 기본, 전방의 공격수들은 깔끔한 결정력을 과시하며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스페인은 각 포지션에서 균형을 이루며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플랫4 수비라인은 협력 수비로 상대 공격수의 예봉을 꺾었다. 이들 앞에서 중앙 미드필더들은 수비와 간격을 유지하며 상대의 패스를 일선에서 차단하기도 했다.

양 측면의 미드필더들은 활발한 공격 참여는 물론 전방에서의 압박과 후방 수비에도 적극 가담해 상대의 역습을 사전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이 내준 3실점 중 두 번이 세트피스, 한 번이 상대의 가로지르기(크로스)를 수비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결과였다. 역습에 의한 실점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에서 수비진-미드필더진의 유기적 협력 수비가 얼마나 빛을 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4-4-2, 4-3-3 등 전형 변화에 따른 선수 운영도 효과적이었다. 유로 2008 득점왕 다비드 비야(4골)가 페르난도 토레스(2골)과 함께 투톱을 이뤘을 때는 사비 에르난데스가 공수의 연결고리를, 브라질 출신의 마르코스 세나가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등 두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다.

러시아와의 4강에서 비야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토레스 원톱으로 경기를 운영할 때는 공격 능력이 좋은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사비와 최대한 동선이 겹치지 않게 영리한 경기 운영을 했다.

공격수들도 결정적인 순간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비야가 해트트릭으로 스페인의 순항을 이끌더니 2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토레스-비야 콤비가 1골씩을 기록하며 바이킹 군단을 무너트렸다.

3차전에서는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다니엘 구이자가 골을 넣어 조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구이자는 4강에서도 러시아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추가골을 터트리며 스페인의 결승행에 큰 공헌을 했다.

안정과 화려함을 과시하며 메이저 대회 징크스를 깬 스페인의 저력은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시아지역 3차 예선을 나름 쉽게 통과하고도 찝찝함을 느끼는 한국 대표팀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은 3차 예선에서 상대의 역습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며 실점을 허락했다. 3차전 요르단과의 경기가 대표적이다. 2-0으로 앞서가면서 상대에 대한 압박이 풀렸고 연이은 실점으로 3차 예선의 고비를 맞이했다.

동시에 허정무 감독의 전략을 '실용주의 노선'으로 급격히 수정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곧 내용이 있는 축구가 아닌 이기기 위한 축구로 전락, 대표팀을 일회용 팀으로 만들어버렸다.

각 포지션에서의 역할도 명확하지 못했다. 그나마 김남일-조원희로 이뤄지는 두 수비형 미드필더가 조화를 이뤘지만 뒤에 위치한 중앙 수비수가 계속 교체되면서 호흡은 불일치에 가까웠다.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계속 함께 하며 흔들림이 없었던 스페인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상대의 밀집 수비를 효과적으로 깨는 전략도 부재했다. 스페인의 경우 러시아전에서 단 한 번의 역습이 '히딩크 매직'을 깨는 등 수비에서 빠른 공격 전환으로 상대를 무너트렸다. 한국은 선수들이 멍하니 공격 전개를 보고 있거나 오로지 측면에서 중앙의 장신 공격수 머리에 맞추는 것을 고집했다.

공격에서도 일명 '박지성 시프트'에 의해 박주영이 제 위치를 못 잡는 등 명암이 뚜렷했다. 과거 조직력으로 승부해 좋은 결과를 봤던 한국 특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회 직전의 스페인도 명확히 따지면 다른 우승 후보국에 비해 특정 스타 선수의 팀은 아니었다.

정신력도 무뎌졌다.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수차례 득점기회를 놓치고도 집중하며 정신력을 가다듬은 뒤 기어이 골을 터트린 토레스의 집념이 한국팀에는 부재했다. 오죽하면 정몽준 회장이 요르단과 2-2로 비긴 뒤 "정신력을 본받아야 한다"며 과거 한국의 상대국들이 했던 말들을 끄집어냈을까.

오는 9월부터 한국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UAE와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죽음의 조'에 편성, 월드컵 본선으로 가기 위한 장정을 벌여야 한다. 스페인이 유로 2008을 통해 보여준 여러 장면은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에게 '산 교과서'처럼 많은 교훈을 던져줬다. 3차 예선의 부진을 씻을 수 있는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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