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풍성한 화제 뒤로 아쉽게 가려진 故 정용훈

[K리그]전 수원 삼성 미드필더...8월 31일 사망 5주기


오는 31일 저녁 수원 빅버드(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삼성-부산 아이파크의 경기는 화젯거리로 풍성하다.

재간둥이 이천수와 반지의 제왕 안정환의 킬러 겨루기가 첫 번째고, 선수 시절 최고로 불린 차범근-황선홍 두 감독의 지략 대결이 두 번째다. 월드컵 최종예선 남-북전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의 기량 확인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어머니께 윙크를 날려 단숨에 국민 남동생에 등극한 배드민턴의 이용대를 비롯해 이효정, 이경원 등이 사인회 및 시축을 할 예정이라 경기장의 열기는 더욱 달아오를 예정이다.

화젯거리 뒤에 숨어버린 추모경기

그러나 수원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남다른 날이다. 바로 5년 전 촉망받던 미드필더로 수원의 중심으로 성장하던 고(故) 정용훈 선수의 기일이다.

정용훈은 2003년 8월 31일 오전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서울시 은평구 홍제3동 한 아파트 앞을 지나다 방호벽을 들이받았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정용훈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1998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던 정용훈은 같은 해 수원에 입단, 26경기 3골 3도움으로 팀 우승에 공헌했다. 김호 당시 수원 감독은 "재능이 있는 선수였고 대성할 수 있었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이날 이후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를 중심으로 정용훈의 기일 전후에 치러지는 홈 경기마다 국화꽃을 경기장 난간에 달아 추모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국화는 그라운드에 던져진다. 응원도 '랄라랄라라 랄라랄라라 랄라랄라랄라 정! 용! 훈!'이라는 생전에 그에 대한 응원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되고 팀 내 주요 선수의 응원 걸개는 '절대로' 달지 않는다.

정용훈은 여전히 수원 팬들에게는 잊히지 않는 존재다. 정용훈의 팬클럽 '마이스터(MEISTER-독일어로 '정복자'라는 뜻)'의 회원이었던 이상열(32) 씨는 아직도 정용훈의 사고 당일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광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던 도중 휴게소에서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

이 씨는 티셔츠를 꽉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티셔츠 뒷면에 정용훈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 광주에 도착한 이 씨는 티셔츠를 벗어 난간에 걸어놓고 그를 먼 곳으로 떠나 보냈다고 한다. 나머지 원정 팬들도 목놓아 울었다.

추모 이상의 감동을 남긴 뮌헨 참사 50주기 행사, 우리는…

구단에서는 정용훈의 2주기까지 추모 행사에 동참했지만 이후 서서히 객관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정용훈과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이운재, 신영록, 남궁웅 등 몇몇을 빼면 거의 없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추모의 몫을 팬들에게 돌린 것. 이 때문에 추모행사도 그랑블루를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러지고 있다.

올해는 우연하게도 사고 당일에 경기가 잡혔다. 그러나 올림픽 후폭풍이라는 변수에 정용훈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역시 그랑블루에서 조촐하게 추모를 할 예정이다.

정용훈의 추모행사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스토리가 있는 K리그를 만들겠다고 나선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들이 얼마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놓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지난 2월 10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트레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시티와의 '더비' 경기를 상기해 보자. 이날은 1958년 2월 6일 맨유 선수들이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마치고 항공편을 이용해 잉글랜드로 돌아가던 중간 기착지인 독일 뮌헨에서 비행기가 추락, 8명의 선수와 함께 취재진, 구단 직원이 사망한 일명 '뮌헨 참사' 50주년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백파이프 연주에 맞춰 검은 띠를 두른 선수들이 7만 5천여 관중과 묵념 시간을 가졌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과 맨씨티 스벤 고란 에릭손 전 감독의 헌화가 이어졌다. 맨유 선수들은 당시 유니폼 입었다. 맨시티 전수들은 스폰서가 새겨지지 않은 유니폼으로 추모경기를 함께 했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도 주요 방송 및 신문사와 연계, 과거의 자료를 찾아 나섰다. 이런 노력은 경기일 전·후로 추모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을 하나로 묶는데 일조했다. 추모경기가 주는 감동과 경기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슬픈 일에 상업성을 결부시키는 것은 사회적 통념상 분명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리며 아직 잊지 않았다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고(故) 정용훈 선수를 추모한다.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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