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예술 영화를 대표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로 칭송 받아온 알렉산더 소쿨로프의 최신작,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출품작, 반전 영화. 이런 홍보 문구를 접하고 <알렉산드라>를 보면 많이 실망할지 모르겠다. <알렉산드라>는 체첸에 주둔한 러시아군에 복무하는 손자를 찾아온 할머니의 여정을 그린 담백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사실은 어쩌다 눈에 띄는 헬리콥터, 고철에 다름 아닌 탱크와 덜커덩거리는 트럭, 초라한 막사에서나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위엄이 느껴지는 단아한 얼굴의 할머니 알렉산드라(갈리나 비슈네브스카야)가 군인들 도움을 받으며 불편한 거구를 이끌고 기차에 오른다. 무장한 군인들은 할머니를 훔쳐보고, 심지어 할머니 어깨에 기대려고 한다. 한 밤중에 전선에 도착한 할머니는 탱크를 갈아타고 부대에 도착한다. 부대원은 할머니를 천막 막사로 안내하며 호텔이니 편히 쉬시라고 한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뜬 할머니는 맞은편 침대에 누운 손자 데니스(바실리 셰프소브)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유능한 정찰 장교인 데니스는 7년 만에 만난 할머니를 모시고 탱크, 식당, 소총 손질하는 곳 등을 안내한다. 데니스가 정찰 나간 동안 할머니는 부대 밖으로 나가 체첸인의 시장을 둘러본다. 그 곳에서 또래의 친절한 체첸 할머니 말리카(라이사 지차예바)를 만나 그녀의 집에 놀러가고, 담배를 거저 얻어와 군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메시지를 전하려는 직설적 의도도 보이지 않기에 관객은 할머니와 손자, 말리카, 체첸 청년, 군인들과의 대화,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는 시선에 관심을 기울이며 어떻게든 교훈을 얻고 싶어 한다. 알렉산드라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쟁과 개인 삶을 이야기 하는데, 무심코 던지는 듯한 넋두리가 철학자의 잠언처럼 마음에 와 닿기도 한다. 물론 체첸 청년과 데니스는 물론, 막사 내 군인들까지 틈틈이 할머니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과묵한 영화는 손자와 군인들에게 다정하게 굴다가도 냉정하게 손을 뿌리치며 모진 말을 하기도 하는 변덕스런 할머니 알렉산드라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흘린다. "군인들은 파괴만 하니 언제 재건을 배워? 젊은이들을 실컷 써먹고 안 죽으면 제대를 시키는데, 총 쏘는 법 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제대해선 뭘 먹고 살아? 힘은 무기나 사람 손에 있는 게 아니야. 인생도 전쟁도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니 인내가 필요하지."
비디오 시절 <어머니와 아들>(1997)로 국내에 소개되었으며, 영화제를 통해서나 작품을 볼 수 있었던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 죽음과 삶의 테마, 명화를 인용한 아름다운 화면, 롱테이크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소쿠로프의 영화답게 <알렉산드라>는 갈색 톤의 느리고 조용한 전개로 전쟁의 보급로조차 사색의 장으로 만든다. 2008년 전주영화제 상영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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