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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드컵 도전사]① 1954 스위스, '식민지-전쟁'의 상흔을 딛고


아무 정보 없이 나서 헝가리, 터키에 0-9, 0-7 대패...'큰 경험'이 소득

한국 축구는 지금까지 총 7번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세계와 맞닥뜨렸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한국은 세계축구의 높은 문에 도전했다. 깨지고 부서져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 4강, 7회 연속 본선 진출 등 화려한 역사를 만들어왔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본선에서도 한국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조이뉴스24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전망하자는 뜻에서 한국의 월드컵 본선 도전사를 총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태극기가 일장기와 같은 높이에서 펄럭인다는 사실 만으로도 당시 국민에게는 대단한 것이었어요."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주전 골키퍼로 나섰던 故 홍덕영 옹의 회고처럼 당시 한국인들에게 축구는 희망과도 같았다.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36년을 보낸 뒤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다 한국전쟁으로 더 큰 고난에 빠졌던 한국인들에게 축구는 대리만족의 대상이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54년 3월, 스위스월드컵 아시아 동부지역 예선(극동 지역 예선)이 벌어졌다. 첫 경기는 숙명의 라이벌이자 분단의 아픔의 근원이었던 일본.

한국대표팀은 3월 1일 도쿄에 도착했다. 당초 홈&어웨이로 열릴 경기는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강경한 자세로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열리게 됐다. 출발 전 이유형 감독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출국 허가를 받는 자리에서 "지면 모두 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라며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7일 메이지 진구 경기장에서 1차전이 열렸다. 눈비가 쏟아져 최악의 그라운드 상태에서 한국은 차고 달리기 작전으로 나서 5-1로 대승을 거뒀다. 14일 열린 2차전에서 2-2로 비기며 1승1무로 일본을 꺾고 감격의 스위스행을 이뤄냈다. 일본을 적지에서 꺾고 한국에 도착한 선수들은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기쁨도 잠시, 한국은 세계와의 도전에 직면했다. 6월 16일 월드컵 본선이 개막한 것이다. 김윤기 단장을 필두로 김용식 감독은 20명의 선수단을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가 비행기로 도쿄를 거쳐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그러나 비행기표를 모두 확보하지 못한 한국 선수단은 1, 2진으로 나눠 차례로 취리히로 날아가야 했다. 2진은 헝가리와의 1차전 전날인 16일 밤에야 도착해 여독도 채 풀리지 않은 상태로 17일 그라스호퍼 경기장에서 첫 상대 헝가리와 대면하게 됐다.

푸스카스, 콕시스 등 세계 최강의 헝가리 공격진은 한국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당시 헝가리는 '매직 마자르(마법사)'라는 별명처럼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제패 후 3년 동안 유럽에서 32전 무패를 자랑하는 최강팀이었다.

한국대표팀 1세대로 1만일 개인훈련을 해내는 등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된 김용식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오로지 수비에만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국은 전반 10분까지는 그럭저럭 버티며 선전을 했지만 12분 푸스카스에 선제골을 내주면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큰 몸싸움도 없었지만 한국 선수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전후의 가난한 사정으로 시차를 극복할 여유도 가지지 못한 채 경기를 뛴 결과였다. 전반에만 5골을 허용한 한국은 후반에도 네 골을 내주며 0-9도 대패했다. 콕시스가 해트트릭, 푸스카스, 치보르, 팔로타스가 각각 2골을 넣으며 한국의 골문을 유린했다. 골키퍼 홍덕영은 "슈팅이 얼마나 강한지 가슴과 배가 얼얼했다"라고 회상했다.

20일 열린 터키와의 2차전 때는 2진급 선수들이 나섰다. 성적보다는 선수들이 고루 좋은 경험을 쌓자는 취지로 달려들었고, 결과는 0-7 패배였다. 한민족의 의지로 무장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강조된 것이었지, 신체적인 면에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고 세계 정상급 축구와 기량 차는 엄청났다.

그래도 스위스 월드컵의 첫 경험은 한국 축구 내부 경쟁력을 단단히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후 홍덕영은 선수에서 심판으로 변신해 한국 축구의 국제화에 한 몫 했고, 김용식은 할렐루야 감독으로 K리그 창설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에 씨를 뿌린 대회로 기억되는 스위스 월드컵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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