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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드컵 도전사]③ 1990 이탈리아, 황보관의 '캐넌슛' 한 골만 남긴채...


지역예선은 무패, 1실점...본선은 전패 1득점...세계 무대의 한계 절감

1989년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차 리그가 열렸다. 네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은 3연승으로 좋은 출발을 한 뒤 2차 리그에서도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총 6승 무패로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당시 한국은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간의 갈등으로 어지러운 상태였지만 대표팀은 달랐다. 최종예선은 10월 12일~28일 싱가포르에서 열렸고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중국, 북한이 한국과 함께 올라왔다. 이회택 포철(현 포항)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대표팀은 1986년에 이어 2연속 월드컵 본선에 도전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나섰던 선수 중 8명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한국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카타르와의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며 크게 당황했다. 그래도 냉정함을 되찾았고 2차전 북한과의 일전에서 황선홍의 헤딩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상승세를 탔다.

이후 중국, 사우디를 연파하며 3승1무로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통틀어 2회 연속 본선에 오르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는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와 E조에 속한 한국은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대회에 나섰다. 지역예선을 단 1실점에 무패의 기록으로 통과한데다 스페인을 제외한 두 국가와는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6월 12일 베로나 벤테고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첫 경기에서 한국은 너무나 경직됐다. 전반전을 그럭저럭 버텼지만 후반 데 그리세와 데 울프에 연속골을 내주며 0-2로 패했다. 최인영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골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17일 우디네세 델 프리울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2차전에서 한국은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회택 감독은 스페인의 수아레스 감독이 "한국과의 경기에서 작전이 필요하겠느냐"고 한 발언에 자극받은 듯 김주성과 최순호에게 집중적으로 볼을 투입케 해 골문을 두드렸다.

전반 23분 한국은 미첼에게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헌납했다. 그래도 힘을 낸 한국은 43분 최순호가 미드필드 정면에서 상대 수비수의 파울로 얻어낸 프리킥을 황보관이 대포알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캐넌슛'으로 명명된 황보관의 이 슈팅은 대회 종료 후 국제축구연맹(FIFA)이 '가장 멋진 슛 베스트5'에 선정하는 등 환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볼 스피드가 시속 114km나 됐다.

동점으로 기세가 오른 한국은 스페인을 공략했지만 역시 적수가 되지 못했다. 후반 미첼에게 두 골을 더 내주며 1-3으로 패했다. 16강 진출 실패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예선탈락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마지막 우루과이와의 일전은 1승과 명예회복이라는 과제로 뜨거웠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한국은 후반 툴리오 라네세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25분 윤덕여가 퇴장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상대 선수가 머리로 돌진해 턱을 찍혔지만 주심은 반대의 판정을 한 것이다.

10명이 된 한국은 그래도 전열의 흐트러짐 없이 경기를 치렀고 무승부로 종료되려던 후반 추가시간, 폰세카에게 허무하게 머리로 결승골을 내주며 패했다. 폰세카가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지만 주심은 골을 선언했고 부심도 몰랐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1골만 넣고 3전 전패를 기록한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귀국했다. 이회택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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