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드컵 도전사]⑤ 1998 프랑스, '도쿄 대첩'에서 '0-5 대패'까지

예선과 본선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던 월드컵...무수한 이야깃거리 양산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들기 전까지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은 월드컵을 꼽으라면 단연 1998 프랑스월드컵이다.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의 기세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차범근 감독이 1997년 1월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것부터가 화제였다. 차 감독은 조병득 코치, 김평석 트레이너와 한 배를 타고 1차 예선을 시작해 3승1무로 가볍게 최종예선에 직행했다.

시드 배정을 받은 한국은 B조에 속해 숙적 일본 및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상대했다. 카자흐스탄과의 첫 경기에서는 '아시아의 독수리' 최용수가 스타로 탄생했다. 최용수의 해트트릭을 앞세운 한국은 3-0으로 첫 경기 승리를 거두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2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도 2-1로 이기며 순항했다.

이어진 9월 28일 3차전, 승리 없이는 넘길 수 없었던 일본과의 도쿄 원정 경기였다. 1994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에는 '도하의 기적', 일본에는 '도하의 비극'으로 희비가 엇갈리며 본선 티켓의 향방이 갈렸던 기억이 선명해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이었다.

팽팽하던 경기는 후반 20분 일본의 야마구치 모토히로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일본 국가대표 서포터 울트라 닛폰의 응원 함성은 더욱 커졌고 한국은 공격 루트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순간 동점골이 터졌다. 38분 최용수가 두 명의 수비를 따돌리고 헤딩으로 연결한 볼을 서정원이 머리로 골망을 흔들며 1-1을 만들었다. 다급해진 일본은 패스미스를 범했고 3분 뒤 '도쿄 대첩'을 완성하는 골이 터졌다. 이민성이 미드필드 왼쪽에서 시도한 회심의 슈팅이 역전 결승골로 이어졌다.

2-1 승리를 거두며 화려하게 개선한 한국은 서포터 붉은 악마의 힘을 받으며 이후 6차전까지 5승1무를 기록, 조1위로 가볍게 본선행을 확정했다. 그러나 홈에서 열린 7차전에서 2002 월드컵 공동 개최국 일본에 0-2로 패하며 '져주기 의혹'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탄탄대로를 밟아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한국은 슬로바키아, 마케도니아, 유고 등과 평가전을 치르며 조직력을 다져나갔다. 프랑스로 출발하기 전인 6월 4일엔 중국과 정기전으로 최종 점검에 나섰다. 그러나 전반 14분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공격수 황선홍이 중국 골키퍼와 충돌하며 왼쪽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공격의 중심을 잃은 채 한국은 장도에 올랐다. 본선에서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 E조에 묶인 한국은 13일 리옹 스타드 제를랑에서 멕시코와 1차전을 치렀다.

출발은 환상적이었다. 전반 28분 아크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을 하석주가 왼발 프리킥으로 감아찬 볼이 수비수의 머리에 맞고 꺾이며 골문 오른쪽 모서리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월드컵 사상 첫 선제골이자 통산 10호 골이었다.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30분 하석주가 왼쪽 터치라인에서 상대 선수에 백태클을 시도했고 주심은 선수보호차원에서 지체없이 퇴장을 명령했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퇴장당한 선수들을 일컫는 '가린샤 클럽'에 하석주가 가입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국은 수적 열세에 몰리며 3골을 내줬고 1-3으로 패했다.

2차전 상대는 우승부호 네덜란드, 감독은 거스 히딩크였다. 20일 마르세유 벨로드롬에서 겨룬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 필립 코퀴와 마르크 오베르마스에게 골을 내주며 0-2로 끌려갔다. 후반 초반 잘 버티던 한국은 26분 데니스 베르캄프를 시작으로 반 후이동크, 로날드 데 보어에게 연속골을 허용, 0-5로 대패했다.

충격적인 결과에 대한축구협회 조중연 기술위원장은 기술위원회를 열고 차범근 감독을 대회 도중 전격 해임했다. 월드컵 기간 중 처음으로 감독을 경질한 것이다. 후일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을 맡게 되는 히딩크가 차범근 감독의 해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16강 진출 희망이 사라진 가운데 벨기에와 파리 파르크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는 '투혼'이 한국을 지배했다. 수비수 이임생이 머리 부상으로 출혈이 있는 가운데서도 붕대를 감고 나섰고, 유상철은 넘어지면서 악착같이 동점골을 넣어 1-1로 마무리했다. 1무2패, 승점 1점 한국이 얻은 성적표다.

그러나 이 프랑스 월드컵을 통해 성장한 고종수, 이동국 등은 K리그에서 인기몰이를 했고 사상 첫 200만 관중을 돌파하는 촉매제가 됐다. 대표팀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뿌리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했고, 프로축구의 흥행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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