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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독립리그 팀 계약, 무명 선수 남궁훈의 'ML 도전'


[정명의기자] 두산 2군에서 방출당한 뒤 지난 1월 글러브와 스파이크, 유니폼만 달랑 챙겨 태평양을 건넌 사나이가 있다. 그의 목표는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메이저리그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남궁훈(27)이라는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야구를 하고 있는 '야구집안'으로 잠시 유명세를 탄 적이 있지만 1군 경험이 전무한 탓에 거의 무명에 가까운 선수다. 1군 경험도 없는데다 지난해 9월에는 2군에서도 방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 남궁훈이 미국 독립리그 팀과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애리조나에서 열린 윈터리그에 참가해 기량을 인정받은 것. 메이저리그를 경험해 보겠다던 남궁훈은 이제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게 됐다.

◆美 도전 무산될 위기, 니코스키 조언과 절박함으로 극복

남궁훈의 첫 도전 무대는 애리조나에서 열린 윈터리그였다. 윈터리그에는 독립리그 팀의 감독이나 코치가 참가해 임의로 선수를 지명, 팀을 꾸린 뒤 2월 한 달 동안 리그를 치른다.

남궁훈은 처음에는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 윈터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독립리그 팀의 지명을 받을 수 있다. 남궁훈에게는 "이대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면 그대로 짐을 싸서 한국에 돌아갈 수밖에 없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남궁훈은 감독에게 선발로 뛰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감독은 "너는 불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뽑은 선수"라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답답함에 남궁훈은 자신의 에이전트를 자처한 크리스 니코스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의 두산과 넥센에서 뛰었던 니코스키는 남궁훈에게 윈터리그 참가를 권유했던 인물. 남궁훈은 니코스키로부터 감독에게 해야 할 말을 그대로 전달받았다. 니코스키는 영어의 사소한 억양까지 신경쓰며 감독에게 전할 말을 남궁훈에게 가르쳤다.

다음날 남궁훈은 니코스키에게 배운 그대로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선발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다시 한 번 나타낸 것이다. 그러자 감독은 남궁훈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뒤 선발로 예정돼 있던 투수를 불러 정중하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리고 남궁훈은 다음날 선발 등판을 지시 받았다.

이전까지 불펜 투수로 1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였던 남궁훈은 놓칠 수 없는 찬스라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 투구를 선보였다. 선발 등판한 그 경기 성적은 7이닝 5피안타 7탈삼진 1실점. 감독에게 단박에 눈도장을 받은 남궁훈은 결국 리그를 마치고 그 감독이 이끄는 노스 아메리칸 리그(North American League's) 소속의 화이트윙스라는 구단과 계약을 할 수 있게 됐다.

감독의 등판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거나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면 남궁훈의 도전도 그대로 끝났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남궁훈은 절박함을 바탕으로 니코스키의 조언을 구했고, 자신이 가진 최고의 구위를 펼쳐보임으로써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머나먼 길의 첫 관문을 멋지게 통과했다.

◆'꿈의 140km', 잘해야 한다는 생각 내려놓으니 구속도 UP!

스리쿼터형 투수인 남궁훈은 변화구 위주의 맞혀잡는 피칭 스타일을 갖고 있다. 변화구는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직구 최고구속이 135km에 불과해 국내 프로에서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즐비한 요즘, 남궁훈에게는 140km가 '꿈의 구속'이었다.

한국에서 아무리 팔이 빠져라 던져도 넘기지 못했던 140km. 거짓말처럼 미국에서는 종종 140km를 스피드건에 찍었다. 남궁훈은 "신기하게 미국에 가니까 구속이 나오더라"며 "한국에서 무언가 억눌려 있던 마음을 내려놓으니 구속도 나오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궁훈은 한국에서 야구를 할 때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늘 억눌려왔다고 말했다. 그랬던 것이 두산 2군에서 방출당하면서 "야구만 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남궁훈이지만 힘든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저 하고 싶은 야구를 하다 보면 한 단계씩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남궁훈이 입단한 독립리그 팀은 세 단계로 나뉘는 독립리그의 레벨 중 가장 하위 레벨이다. 최상위 리그라고 해봐야 메이저리그의 가장 낮은 단계인 싱글A보다 낮은 수준이다.

두산 2군 당시 방출 사실을 미리 알게 됐다는 남궁훈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유니폼을 입고 있는 순간의 행복을 절실히 느꼈다. 훈련이 끝나고 그 날 방출 통보가 없으면 "이 유니폼을 하루 더 입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행복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어디서든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남궁훈은 "공부도 어느 곳에서나 해도 같은 공부이듯이 야구도 마찬가지"라며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할 수 있었지만 잠시 한국에서 할 수 없게 됐고, 이 기회에 미국에서 해보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2군에만 있으면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면 이제는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할 수 있는 곳에서 야구를 하다보면 분명히 기회가 온다는 믿음이 남궁훈이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마흔까지 야구 할 것", 밑바닥에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양준혁(42)과 송진우(45)는 마흔을 넘어서까지 철저한 자기 관리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레전드'의 칭호를 얻었다. 이종범(41, KIA)과 이숭용(40, 넥센), 최향남(40, 롯데) 역시 올 시즌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고, 국내 은퇴 후 멀리 호주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구대성(42, 시드니)도 있다.

남궁훈의 목표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마흔살까지 현역 선수로 뛰는 것이다. 양준혁, 송진우 등은 이미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위치를 경험한 선수들이다. 그러나 남궁훈은 국내 프로 2군에서 3년간 신고선수 경력이 전부다. 무모한(?) 목표의 연속이다.

남궁훈은 "나는 바닥에서 올라갈 일만 남은 선수"라며 "그런 사실에 더 자부심을 느끼고 책임감도 강해진다"고 했다.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현실적인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남궁훈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남궁훈은 "안되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왔던 몽골이나 파키스탄에서 야구 할 생각도 해봤다"며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는 확고한 뜻을 드러냈다.

남궁훈이 뛰게 될 독립리그는 5월 25일 개막한다. 남궁훈은 그 열흘 전인 15일부터 시작되는 스프링캠프 일정에 맞춰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이제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남궁훈의 도전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궁금해진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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