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美 독립리그 진출 정재훈-남궁훈, 야구에 미친 두 남자 이야기


[정명의기자]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야구 선수는 누가 있을까. 대부분 클리블랜드의 추신수(29)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당당한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로 맹활약하는 추신수야말로 한국인의 자랑거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나 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미국 야구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들도 있다.

두산 베어스 출신의 정재훈(30)과 남궁훈(28). 이 둘은 미국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좇아 태평양을 건너 미국 독립리그 팀에 입단했다. 정재훈은 올해로 벌써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고 남궁훈은 첫 시즌을 앞두고 있다.

◆실력 외적으로 더 큰 주목을 받았던 두 선수

정재훈은 '작은 정재훈'으로 불리며 2007년 두산 불펜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투수다. 그 해 정재훈은 1군 32경기에 등판해 34이닝을 던지며 1승 1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5.03의 성적을 남겼다.

실력보다는 현재 두산의 '철벽 불펜'으로 활약하고 있는 '큰 정재훈(31)'과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부각됐다. 구단은 큰 정재훈과 한자 이름까지 똑같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등번호도 큰 정재훈(41번)과 이어지는 40번을 배정했을 정도. 2007년 8월 4일에는 큰 정재훈이 승리투수가, 작은 정재훈이 세이브투수가 됐던 진기록을 남기기도했다.

남궁훈은 두산팬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그도 그럴 것이 1군 등판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신고선수로 입단해 2군에서만 뛰다가 지난해 9월 방출을 당하고 말았다.

남궁훈도 정재훈과 마찬가지로 야구 실력보다는 '3대째 야구집안'이라는 집안 이력으로 더욱 유명했던 선수다. 남궁훈의 작은 할아버지 남궁택경(1975년 작고)은 해병대 의장대를 거쳐 철도청 야구부에서 활약했고, 아버지 남궁성우(51) 역시 1978년 홍익회 야구단에 입단한 투수 출신이다.

크게 주목을 받을 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두 선수였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1군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던 정재훈. 2군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남궁훈. 둘에게는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무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유니폼을 입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두 사람은 소리 소문 없이 태평양을 건너갔다.

◆두산 2군에서 맺어진 인연, 서로의 멘토가 되다

두 선수가 인연을 맺은 것은 정재훈이 1,2군을 들락거리던 2008년 무렵이었다. 당시 정재훈은 "더 이상 두산에는 내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 때 눈앞에 보인 선수가 바로 남궁훈이었다. 그 해 신고선수로 입단해 신인이었던 남궁훈 역시 오래 전부터 미국행을 꿈꾸며 영어공부를 따로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점이 "영어 좀 하는 선수"라는 다소 과장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정재훈은 그런 그에게 미국행과 영어 공부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남궁훈은 선배를 모시고(?) 자신이 다니던 종로의 영어학원을 찾아가 등록을 도왔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나서서 하기에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정재훈은 영어학원을 다니며 미국행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남궁훈이 정재훈에게 영어공부의 멘토였다면 정재훈은 남궁훈에게 피칭의 멘토였다. 직구가 빠르지 않은 두 선수는 제구력 위주의 피칭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남궁훈의 피칭을 옆에서 지켜보던 정재훈은 변화구를 하나 가르쳐줘야겠다 생각을 갖게 됐다. 당시를 떠올리며 정재훈은 이렇게 말했다.

"옆에서 보니 안타깝더라고요. 딱 보니까 저랑 같은 '과'인데 구종이 단순했어요. (남궁)훈이가 변화구 하나만 더 갖추면 경쟁력이 생길 것 같았죠."

당시 남궁훈이 던질 수 있는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커브 정도였다. 모두 한쪽 방향으로만 변화는 구종이다. 정재훈은 자신이 오랜 시간 연마해 자기 것으로 만든 싱커를 남궁훈에게 가르쳤다. 싱커는 슬라이더, 커브와는 달리 역회전이 걸리는 구종이다. 남궁훈은 정재훈과 함께 캐치볼을 하며 싱커를 집중 연마했고 금새 자기 공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재훈에게 배운 싱커는 이제 남궁훈의 주무기가 됐다. 던지는 공의 거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이 얘기를 듣고 정재훈은 "넌 내 덕에 먹고사는 거야"라고 농담을 던지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아끼는 후배가 자신이 전수한 무기를 잘 써먹고 있는데 흐뭇하지 않을 선배는 없을 것이다.

◆미국 독립리그 진출, '메이저리거'를 꿈꾸다

독립리그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리그다. 젊은 선수들 또는 재기를 노리는 노장들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뛰는 경우가 많다. 독립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마이너리그 더블 A 또는 트리플 A 팀에 입단할 수도 있고 빅리그에 진출하는 경우도 더러 나온다.

미국 독립리그에는 '형'인 정재훈이 먼저 발을 들였다. 정재훈은 2009년 애리조나 윈터리그를 거쳐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www.americanassociationbaseball.com)'이라는 상위권 리그의 포트워스 캐츠에 입단했다. 그 해 정재훈은 선발투수로 뛰며 리그 2위에 해당하는 2.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빼어난 성적을 올린 정재훈에게 몇몇 마이너리그 팀들의 오퍼가 당도했다. 그러나 계약이 체결되지는 않았다. 나이가 많고 구속이 빠르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이너리그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만 확인한 셈이었다.

남궁훈 역시 올해 애리조나 윈터리그를 거쳐 '노스 아메리칸 리그(North American League's)' 소속의 화이트윙스라는 구단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남궁훈은 5월 15일부터 열리는 팀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뒤 본격적인 첫 시즌을 맞게 된다. 남궁훈이 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재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미국 독립리그에 진출한 두 선수의 공통 목표는 하고 싶은 야구를 계속하는 것. 나아가 기회가 된다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는 것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되겠지만 미국에 야구를 하러 온 이상 메이저리그를 경험해 보겠다는 것이 두 선수의 하나같은 의지다.

안타깝지만 정재훈은 올 시즌까지만 도전을 계속할 생각이다. 결혼식과 함께 미국으로 함께 건너간 아내 때문이다. 자신의 꿈 때문에 선택한 미국행이지만 독립리그 선수 생활로는 경제적인 곤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생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정재훈은 올 시즌에도 마이너리그팀과의 계약에 실패한다면 한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로 마음을 정했고, 지난 4월 29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재훈과 남궁훈은 여러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교 시절 내야수로 뛰다가 투수로 전향한 점, 고등학교 시절 받았던 프로팀의 지명이 풀려버렸다는 점, 상무를 거친 프로 입단, 제구력 위주의 피칭 스타일 등. 이런 공통점 때문에 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야구를 하기 위해 미국 독립리그에 진출했다는 점이다. 야구에 미친 두 사람. 아직은 이들의 행보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미국에서 쌓은 정재훈과 남궁훈의 경험은 한국 야구에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 확실하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2024 트레킹






alert

댓글 쓰기 제목 美 독립리그 진출 정재훈-남궁훈, 야구에 미친 두 남자 이야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