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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안성기 "젊음 좋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인터뷰)


임권택 감독 102번째 영화, 오는 4월9일 개봉

[권혜림기자] 배우 안성기가 한국 영화계에서 갖는 존재감은 묵직하다. 아역 배우로 충무로에 입성해 어느덧 데뷔 60년을 바라보는 이 중년의 배우는 보존되지 않은 작품들을 합산하면 128편의 필모그라피로 인생을 꿰어왔다. 필름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작품들을 포함하면 무려 160여 편에 이르는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오는 4월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감독 임권택/제작 명필름)은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가 영화 '취화선' 후 10여 년만에 재회한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김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화장'은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 놓인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안성기는 영화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오상무 역을 맡았다. 언뜻 배우 안성기의 나이와 외양에 꼭 어울리는 배역이다. 온화하고도 불안한, 충만해 보이는듯하나 텅 비어 있는 오상무의 눈빛은 안성기를 통해 온전히 그려졌다.

오상무는 화장품 회사의 임원이자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이다. 아내(김호정 분)는 반복되는 투병에, 오상무는 오랜 간호에 각자 지친 가슴을 안고 산다. 아내가 처절하게 죽음과 사투를 벌일수록 오상무는 회사의 젊은 직원 추은주(김규리 분)의 싱그러운 매력에 빠져든다.

"약 10년 전 김훈 작가의 원작 단편을 읽은 기억이 있다"는 안성기는 "굉장히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풍부한 느낌을 받았다"며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깔끔하고 멋진 작품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사실 어려운 소재이기도 했다"며 "김훈 작가의 수려한 문체와 내용을 영화하는 것이 도저히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상무에게 여러 감정이 함축돼 있으니 이를 늘 담고 있는 것이 힘들었죠. 감정이 깨질까봐서요. 그간 심각한 인물들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인물의 심리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는 적었어요. 보통은 촬영 하고 털어내고 농담도 하며 들어가면 됐는데, 이번엔 그게 안 되는거지. 부인은 죽어가고, 자신은 심한 전립선비대증으로 고통을 받고, 회사에선 일에 대한 결정도 내려야 하죠.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우울하게 있을 수밖에 없어요. 참 힘들었죠. 오죽하면 '코미디 영화나 찍고 싶다'고 생각했을까.(웃음)"

'화장'은 화려한 포장에 싸인 오락 영화나 훈훈한 감동을 안기는 가족 영화, 발랄한 로맨스를 그린 데이트 무비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이 도심의 빌딩숲 어딘가에 있을 '진짜 오상무'의 존재를 상상하게 만드는 애달픈 감상과 통찰을 남긴다. 서사의 흐름과 함께 관객은 삶과 죽음, 늙음과 젊음, 의무와 일탈의 사이에서 길을 잃은 오상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궤도의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얼마나 와서 영화를 보느냐, 얼마나 즐기며 생각하느냐는 미지수인 것 같아요.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준다면 영화 선택의 폭이 보다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겠죠. ''화장'이 과거에 나왔다면 평범한 영화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나왔기 때문에 굉장히 독특하고 좋은 느낌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감했죠. '우리가 이제껏 너무 이런 이야기를 안 해왔구나' 싶기도 했고요."

이제 대부분의 동료 배우들에게 안성기는 '대선배'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후배 배우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진 않을까 실 없는 농담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 현장에서 열성을 다하는 후배 배우들을 보며 안성기는 그 싱그러운 젊음을 향해 흐뭇한 웃음을 짓곤 한다.

"젊음 자체가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젊다는 것은 실패도 용납되고 실수도 많이 용납된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나이 들어선 실패는 물론이고 실수도 힘들어요. 굉장히 타격이 크죠. 여태껏 쌓아온 것이 한 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고, 그것을 복구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너무 적어요. 젊을 때는 다시 쌓아갈 시간이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젊다는 것은 부럽고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고등학생들을 보면 '어떻게 저 공부를 다시 하나' 싶고, 20대를 보면 '아, 이제 결혼하고 애를 낳겠구나' 싶어요. 행복하지만 굉장히 힘든 일들이잖아요.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라도 행복하게 잘 살면 돼'라고 생각하죠."

한편 올해 안성기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제작하는 영화 '사냥'(연출 각본 천진우)을 통해 액션 연기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할리우드 중년의 액션 스타 리암 니슨과 동갑내기인 그는 새 영화를 가리켜 "올해 출연 예정인 영화에서는 리암 니슨 못지 않은 액션을 펼치게 될 것"이라고 알렸다.

이하 안성기와 일문일답

-임권택 감독과 재회한 소감은?

"임권택 감독의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아날로그 때나 디지털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지금은 워낙 장면마다 많이 찍어놓지만 감독님은 꼭 필요한 것만 찍으니 너무 좋더라. 요즘 너무 많이 찍어서 힘들다.(웃음) '화장'의 촬영 회차는 43회차로, 적었던 편이다. 예전에도 임 감독님은 콘티를 미리 짜지 않고 혼자 생각을 했다가 아침에 커트와 장면을 나누곤 했다. 요즘은 독립영화에선 그런 작업이 있을지 몰라도 일반 영화들에선 없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이제 익숙해졌다. 이 영화는 그렇게 해서 지켜지는 것이 좋았던 것 아닌가 싶다. 미리 짜여진 콘티로 찍는 것이라면 덜 재밌지 않았을까."

-아내 역 김호정과 함께 연기한 베드신과 욕실 장면이 큰 울림을 줬다.

"베드신의 경우 침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일반적인 장면이 아니었다. 처절했다. 흥분되는 감정이 전혀 안 생기는, 그런 장면이다. 이야기를 운반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과 장치로서의 신이었다. 마지막으로 죽어가기 전에 서로의 몸을 합친다는 의식 같은 장면이었다. 서로를 탐하기 위한 장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차별성이 있다. 영화의 주제에 더 접근하게 되는 장면이 되지 않았나 싶다.

화장실 장면은 감독님이 두고 두고 김호정에게 고마워했다. 과감하게 모든 것을 편안하게 보여줬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하체를 찍지 않고 얼굴만 도는 장면을 보고 '이것은 아닌 것 같다'고 몇 시간 고민하다 김호정에게 이야기하고 그 장면을 다시 찍었다. 그 장면 자체가 주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그 고통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이 됐다고 본다. 그 시점에 그 장면이 들어가면서 영화에 굉장히 힘이 생겼다. 어마어마한 믿음과 힘이 가게 한 장면이라고 봤다."

-할리우드 영화 '라스트 나이츠'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했다.

"찍은지 햇수로 만 2년이 지났다. 분량이 크지는 않았지만 임팩트가 있었다. 모건 프리먼과 클라이브 오웬 등 굵직한 배우들이 나온다. '한 번 경험 삼아 해 보자' 했는데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영어 대사로 고생을 했다고 털어놨는데, 할리우드 작품에서 다시 섭외가 온다면 출연할 생각이 있나?

"안 한다. 한국어 대사라면 할 수도 있겠다.(웃음) 최민식이 나오는 영화 '루시'를 보니까 부럽더라. 한국어 대사만 하지 않나.(웃음) 한국말로 대사를 하면 감정이 잘 나오는데, 얼굴 표정이 잘 나오지 않더라. 사실 내가 (한국식 영어와 다르게) 현지인과 굉장히 비슷하게 발음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감독의 입장에선 내 모습을 보고 더 잘 하길 바랐던 것 같다. 연출을 맡은 키리야 카즈아키 감독은 다른 배우들에겐 '하이' 하며 인사를 했는데 내겐 딱 허리를 굽힌 뒤 '안 상 오셨냐'고 인사하곤 했다. 일본 사람들이 날 크게 배려해주는 면이 있다. 그렇게 잘 해주니 엉터리 연기를 하지 않으려 더 노력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는데, 최근 영화제를 향한 부산시의 압력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배우 안성기의 입장도 궁금하다.

"(영화제와 영화계 측 입장이) 기본적인, 상식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제에 들어오는 영화에 대해 어떻게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평가는 관객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영화제가 그렇다. 우리가 사전에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우습고 심지어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부산시에서는 조금 더 아량을 갖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준다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빛내는 영화제를 부산이 주최하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 힘도 들겠지만 우리 나라 전체를 위해서 조금 더 마음을 열어 줬으면 좋겠다. 늘 고마운 것은 부산이 아니면 사실 이런 영화제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산시의 협조는 물론, 영화를 사랑해주고 적극 참여해주는 부산 시민이 있어 영화제가 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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