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은막 위 배우 박지수의 얼굴에선 상처가, 그늘이 떠나지 않았다. 기댈 곳 없이 한국에 홀로 남겨진 태국 여성을 연기했던 '마이 라띠마'(2013, 감독 유지태)에서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인물 그 자체가 된 연기를 보여주더니, 새 영화 '사월의 끝'에선 낯설고 음산한 동네에 홀로 살게 된 여성 현진으로 분했다.
영화 밖 박지수의 모습은 영락없이 밝고 사랑스럽다. 그 묘한 격차가 흔치 않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박지수를 '마이 라띠마' 이후 4년 만에 다시 마주했다. 두 번째 만남인데도, 이 배우가 전보다 더 궁금해졌다.
영화 '사월의 끝'(감독 김광복, 제작 코라필름)은 오래된 아파트에 공무원 시험 준비생 현진(박지수 분)이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이 동네의 주민들은 어딘지 수상하다. 현진은 옆집 여고생 주희(이빛나 분)의 과외를 맡게 되고, 주희 가족의 은밀한 사연을 듣게 되며 연민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주희는 같은 동네에 사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며칠 후 실제로 그들이 살해 당하자 현진은 주희를 의심한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센터 사회복지담당 박 주무관(장소연 분)은 오랫동안 잊고 지낸 한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낡은 아파트로 향한다.

영화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은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온 여성 현진이다. 그리고 이 배역을 연기한 배우는 지난 2013년 연기 데뷔작 '마이 라띠마'로 제34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충무로 괴물 신예로 평가받은 박지수다.
전작에 이어 그는 또 한 번 마음 깊숙이 상처를 안은 인물을 그려냈다. 다양한 표정이나 액션이 아닌, 오로지 깊은 눈빛과 적은 대사들로만 그려내야 하는 감정이었다. 18일이라는, 놀랄만치 짧은 기간 내에 완성된 '사월의 끝'은 그럼에도 주인공 현진의 감정선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작품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의 중심에도 배우 박지수가 있었다.
"18일 만에 찍었으니, 굉장히 빨리 촬영한 셈이죠. 그래서 쉴 틈이 없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는 '진짜 대박인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급히 출연을 결정했거든요. 캐릭터에 대해 대화할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아서 아쉬운 면도 있었죠. 하지만 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면서 인물을 만들어나갔어요."
큰 표정의 변화 없이도, 박지수의 눈은 한 장면의 분위기를 천천히 바꿔나가는 힘을 지녔다. 나른한듯 또렷하고, 선한듯 미묘한 느낌이 들어찬 눈빛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물에 가까운 장르지만, '사월의 끝' 속 박지수의 연기엔 흔한 과장이 없다.

"굳이 과장된 연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감독이 이야기해주셨어요. 호러라 해서 소리를 지른다거나 크게 두려움을 표한다거나 하는 연기가 아니라, 제시해주신 레퍼런스 안에서 덤덤하게 끌고가는 연기를 이야기하셨죠. 연기할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언어 습관을 모두 배제하고, 그 인물처럼 말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내면에 많은 문제가 있는 인물이고, 보통 사람들보다는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인물이잖아요. '참고 가는 캐릭터'라고 할까요? 그런 인물의 내적인 모습에 신경을 더 많이 썼어요."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기 위해, 박지수와 나눈 '사월의 끝'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 적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는 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 중 현진의 생애를 퍼즐처럼 맞추고 또 되새기며 극장을 나올 것이란 사실이다. 인물이 가진 감정들만큼이나 묵직하고 아픈 감흥이 객석을 찌를 법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작업 후에도 몇 개월 간 이 작품이 계속 생각났어요. '언제쯤 나올까' 생각하며 기다렸죠. 다른 작업을 하던 시기에도 '사월의 끝'을 자주 생각했어요. '현진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연기 생활을 하며 잊지 못할 인물이구나' 느꼈죠. 꽤 오래 생각날 것 같아요."

2년 전 작업한 영화 '사월의 끝'이 지난 7월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박지수는 오랜만에 장편 영화로 관객을 만났다. 박지수는 이 영화를 통해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이 라띠마'가 청룡 신인상을 안겨준 것에 이어, '사월의 끝'도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선사한 셈이다. 주연을 맡은 두 편의 장편 영화로 모두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니 우쭐할 법도 한데, 박지수는 손사래를 치며 "신인인데 너무 큰 상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저는 아직 연기 5년 차밖에 되지 않은 배우잖아요. 너무 큰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이 라띠마' 때는 제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처음 연기한 저에게 그런 상이 주어졌으니, 제가 얼마나 좋은 위치에서 시작하고 있는지 아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거죠.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순수하게 연기에 뛰어들었는데 상을 받았다는 것, 그 때 얼마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지 이제 더 잘 알겠더라고요."
부천에서의 수상, '사월의 끝' 개봉을 시작으로 박지수의 활약은 조금 더 촘촘해질 전망이다. 박지수는 오는 10월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에도 출연했다. 특별 출연한 작품 '히치하이크'(감독 정희재)까지 두 편의 작품으로 부산을 누빈다. 영화 뿐 아니라 드라마 활약에도 시동을 걸 예정이다.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축하를 많이 받고 있어요. 부천에서 상을 받았고, '사월의 끝'이 개봉하게 돼 축하 메시지들을 받았는데, '유리정원'이 부산 개막작이 되면서 주변에서 다시 기뻐해 주셨어요. 가족들, 친구들, 소속사 식구들까지요. 응원을 많이 해 주시니 주변을 돌아보며 얼마나 감사한 분들이 많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사월의 끝'은 지난 14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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