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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한번볼래?]'이번 생은 처음이라'★★★★


30세 여성들 중심으로 청춘의 고민 다룬 드라마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30세 여성 지호(정소민 분)와 대기업 대리 수지(이솜 분), 레스토랑 매니저로 성실히 일해 온 호랑(김가은 분)은 남해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우정을 맺어 온 친구 사이다.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극본 윤난중, 연출 박준화)는 1988년생인 세 여성이 겪는 사랑과 일, 우정을 그리는 드라마다.

방영 첫 주만 해도, 그저 서른이라는 삶의 기점을 맞이한 세 명의 친구가 각각의 파트너와 겪는 연애사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물인 줄로만 알았다. 세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서사의 트렌디물은 이미 익숙한 장르였다. 지방에서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뒤 상경해 다시 뭉친 친구들의 모습 역시 그간 무수한 TV 드라마에서 취한 이야기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 속 인물들이 걷는 노선이 예상 밖이다. 긍정적인 의미다. 보조 작가로 생활하며 주거난에 시달리던 지호가 IT 개발자 세희(이민기 분)의 집에 세를 들고, 결국 '윈윈'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로 계약 결혼을 할 때까지만 해도 '하우스푸어'라는 기형적 현상을 로맨스에 흥미롭게 녹였다고만 생각했다.

자유로운 연애사를 자랑하는 커리어우먼 수지가 세희의 선배이자 직장 상사인 상구(박병은 분)와 알콩달콩 엮일 때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의 권력 관계를 전복하는 척 하며 결국 사랑에 눈뜨는 수지의 변화가 이들 관계의 전부일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총 16부 중 10화를 방영한 드라마가 반환점을 돌면서부터,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비추는 고민들이 생명력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물들이 처한 개인적 갈등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고민들로 풀어나갔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속 시시콜콜한 개인사에 무리해 메시지를 집어넣지 않아도,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설정 중 일부는 너무나 현실 그 자체다.

'며느라기'를 맞이한 지호의 고민

당장 살 곳이 없어 세희의 타운하우스에 입주한 지호는 집안의 결혼 성화를 잠재우고 싶었던 세희와 계약 결혼을 감행한다. 지호는 월세집을 얻게 됐고, 세희는 노년이 될 때까지 갚아야 하는 대출금 일부를 지호의 월세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경제적 목적이 결혼의 일순위 이유였던 두 사람이지만, 양가와 친구들에게는 계약 결혼 사실을 비밀로 했다.

그러던 중 지호는 감정이라곤 없어 보였던 세희로부터 뜻밖의 도움을 얻고, 점차 그에게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완벽한 세입자' 지호의 섬세함에 사무적인 호감을 느꼈던 세희도 알듯 모를듯 지호에게 마음을 열었다. 고민을 낳은 건 지호의 마음이었다. 계약서에 기반한 결혼이지만 이 결혼을 통해 지호에게도 시부모가 생겼고, 때마침 세희를 좋아하게 된 지호는 시부모에게 예쁨을 받고 싶어 무리해 노력하게 된다는 '초보 며느리'의 시기, '며느라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드라마 속 이 시기는 대사를 통해서도 '착한 며느리병'이라 언급된다.

인기 웹툰 '며느라기'가 다뤄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 며느리들의 고민들을 '이번 생은 처음이라' 역시 지호의 상황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던 아들이 결혼을 하자 며느리와 함께 굳이 불러들이고, 며느리를 '딸 같다'고 말하며 그 친근감을 노동력 사용의 용이성으로 치환하는 시모의 모습이 그 예다.

지호와 시가의 관계를 그리는 드라마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지호와 세희가 각각 가부장적 아버지를 둔 설정에 더해, 제사와 관련한 모든 일을 여성들이 도맡는 세희의 집 풍경은 또 한 번 생각할거리를 남긴다. 극 중에서 묘사되듯 세희 가(家) 제사의 주요 노동 인력은 가장인 세희의 아버지도, 세희도 아니다. 이 노동의 책임은 세희의 어머니에서 세희의 누나에게, 이제 세희의 아내 지호에게 전가됐다. 애정어린 표정으로 새 며느리와의 인연을 환영하는 시모의 기쁨은 가사노동의 대물림을 완성할 새 일꾼에 대한 반가움이다.

극 중 지호의 시모가 결코 악인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라는 것도 주지할 대목이다. 그저 평범하고 정도 있는 이 여성은 다만 그 구조 안에서 반평생을 살아 온, 해묵은 가부장제의 문화 아래 여성의 위치를 답습해온 인물일 뿐이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중장년 여성들이 해방되지 못한 그 굴레 안에서 말이다.

수지의 현실이 마음을 찌르는 이유

지호의 상황이 가정에서의 남성중심적 성역할을 꼬집는다면, 대기업 대리 수지의 고민은 직장 내 성별 위계의 문제를 처절하게 고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장'이 되겠다고 꿈꿨던 수지는 일류대를 졸업한 지성에 더해 모델처럼 큰 키, 세련된 외모, 쾌활한 성격까지 갖춘 인물이다. '연애는 하지 않고 추억만 쌓는다'는 철학 아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디서나 당당한 표정을 지킬 것 같은 수지에게 당혹감을 안기는 이들은 다름 아닌 직장 동료들이다. 신체에 손을 대고, 연애사를 집요하게 캐묻고, 빠져나갈 구멍을 교묘하게 파 놓은 채 성(性)적 농담을 내뱉는 남성 동료들의 모습이 현실과 기시감을 일으킨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날에는 남성 뿐 아니라 남성의 시선을 학습해 온 여성 동료들의 뒷담화까지 어김없이 감당해야 하는 수지에게, 직장은 경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버텨내야 할 장애물 자체다.

그런 수지의 앞에 나타난 스타트업 기업 대표 상구 캐릭터는 위에서 전술한 폭력적 문화 바깥의 인물이다. 미팅 자리에서 추행을 당하던 수지가 수세적 태도를 취하는 것에 분노하고는, 이내 수지를 향해 답답함을 드러낸 것 자체가 자신의 '꼰대 기질'임을 인정하기까지 하는 캐릭터다.

이쯤 되면 판타지적 캐릭터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인물이지만, 상구는 나이차가 나는 연인 사이의 호칭을 고작 '오빠'와 '애기'로 희망하고야 마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의 남성이기도 하다. 수지와의 만남을 통해 상구가 어떤 한계, 혹은 성찰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드라마의 남은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한편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매주 월·화요일 밤 9시30분 방송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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