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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감독 "'독전', 배우들만 남았으면 좋겠다"(인터뷰)


"故김주혁이 연기한 하림, '목도'했다"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화려한 볼거리에 공을 들였어요. 미술, 촬영 등 모두에 총력을 기울였고 비주얼과 스타일에 감당할 만한 음악을 만들려 노력했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들만 남았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그 배우가 어떤 순간 빛이 났었지' '그 배우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라고 기억되는 영화요."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 제작 용필름)은 먼저 화려한 영상미와 스타일리시한 음악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지만 가장 강렬한 것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배우 김성령부터 故김주혁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극의 빠른 템포와 함께 러닝타임 내내 그야말로 휘몰아친다. '독전'은 배우들의 독한 연기 열전이 빛나는 작품이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해영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 감독은 그조차 놀랐던 배우들의 연기, 캐릭터 간의 설계 등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이다. 이 감독은 '독전'으로 장르물에 본격 도전했다. 그는 "어떤 배우에게는 편안한 감독, 또 다른 배우에게는 잔소리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웃음) 나는 배우들과 영화적 그림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재밌었다. 장르 영화에서 캐릭터를 그리는 배우들의 연기에서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앞서 배우 조진웅과 류준열은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로 故김주혁을 꼽았다. 故김주혁은 끊는 점을 짐작할 수 없는 광기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진하림 역을 맡아 극 초반부터 강렬하게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감독 또한 그의 연기에 매료됐다고.

"하림은 가장 영화적, 장르적 인물이죠. 하림의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 김주혁 선배님에게 캐릭터 설명을 드렸지만 막상 첫 촬영을 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배우가 장르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느낌을 넘어 장르 위에서 군림하는 위압감이 느껴졌죠. 저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놀랐어요."

故김주혁은 영화 '공조'에서도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독전'의 시나리오를 故김주혁에게 건넸을 당시에는 '공조'가 개봉 전이었다고. 이 감독은 그를 캐스팅한 이유와 비하인드를 전했다. 거듭 그의 연기력을 극찬하기도 했다.

"주혁 선배님은 워낙 폭넓은 연기를 해오셨기에 기대감이 컸어요. 특히 전면적인 악당의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어서 선배님이 하림을 연기하면 새롭겠다 생각했죠. 시나리오를 드린 후에 '공조'가 개봉했는데 너무 잘하셨더라고요. 또 하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노림수가 '공조'에 그려져서 당황했죠. 선배님에게 '그렇게 잘하시면 전 어떡하냐'라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지금 되짚어보면 김주혁 선배님은 '왜 그게 비슷한 느낌이지'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실제 캐릭터를 설명드리니 특별한 리액션 없이 '촬영을 해봐야 알 것 같다'라고만 답하셨는데 선배님의 연기를 보는 순간 엄청난 걸 봐버린 경험이었어요. '공조' 속 캐릭터도 생각나지 않았고 어디에서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거대한 무엇이었어요. '김주혁 선배가 연기한 하림을 목도했다'라는 느낌이요."

'독전'은 故김주혁의 유작이고 그의 연기력이 인상 깊은 영화다. 그만큼 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은 이 감독은 "주혁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를 통해 하면 할수록 내 표현력이 얼마나 짧은지, 단어가 얼마나 한정적인지 실감한다"라고 말하며 고인에 존경심을 표했다.

조진웅과 류준열은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캐릭터다. 기존에 형사 역할을 많이 해온 조진웅이 또 한번 형사를 연기하는 것에 '새롭지 않은' 우려는 없었을까. 이 감독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단호히 답했다. "조진웅이 그려내는 원호는 전작들의 형사 연기와 꽤 다를 거라 생각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배우 조진웅의 기존 연기도 너무 좋아하지만 그가 가진 느낌에 주목하고 관찰했어요. 조진웅이라는 배우는 땡볕 아래에서 끝없이 전력질주할 때, 어딘가를 향해 달려갈 때 뭔가를 의심하거나 자문하지 않고 달리는 느낌이에요. 굉장히 인간적인 느낌이 있죠. 특히 얼굴, 눈빛에 그게 잘 표현돼요. 그런 느낌이 원호의 곳곳에 표현되고 심어지면 원호가 맹목적으로 끝까지 달려가는 게 독해보이지만, 이를 보는 관객이 조진웅이라는 인간에 집중해 캐릭터를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락은 러닝타임 내내 극적인 표현 없이 무감한 표정을 대부분 드러낸다. 이 감독은 락이라는 캐릭터를 설계할 때 자신만의 원칙을 담았다.

"모든 인물도 그랬지만 특히 락이라는 캐릭터를 설계할 때 제게 중요했던 건 '단 한순간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쓰지 말자'였어요. '믿고 있는 것들을 충실하게 표현하자'였죠. 락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조직에서 버림 받은 똘마니, 좀 더 찌질한 캐릭터로 만들었겠죠. 영화 '유주얼 서스펙스'에서 절뚝거리던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멀쩡한 다리로 걷는 것처럼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관객을 속이는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원호가 사건을 돌파해가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락이 지켜보는 것이었죠."

류준열을 캐스팅한 이유를 묻자 이 감독은 "연기 잘하고 잘생겨서"라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한번에 모두 읽히는 이미지가 아니라서 류준열이 좋다. 준열이는 한번 더 읽어야 알 것 같은 이미지를 지닌 배우다. 그게 준열이를 선택한 이유였고 이걸 통해서 관객들에게 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독전'은 지난 2013년 개봉한 홍콩영화 '마약전쟁'을 리메이크한 작품. '독전'과 비교해 원작은 캐릭터들 간의 전쟁이 더 독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독전'을 이끄는 원호와 락의 관계가 '브로맨스'의 일종으로 보인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들 관계에 "브로맨스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라고 선을 그었다.

"브로맨스를 해야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가졌다거나 배우들에게 그런 디렉션을 단 한번도 준 적 없어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적인 연민 등 무엇이 생길 수는 있을 수는 있어요. 배우들이 충실히 연기하면서 발생한 뉘앙스였고 어떤 때는 제 예상보다 감정이 더 풍부하게 표현될 때가 있긴 했죠. 하지만 의도한 건 절대 아니에요. 브로맨스 코드를 의도했다면 시나리오에 이런 분위기를 더 만들었겠죠."

독전의 포스터에서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로 김성령이 등장한다. 기대보다 짧은 그의 분량에 실망감을 표한 관객들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독전'은 남성 영화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한 것이기에 성비에 있어서는 한정적이었다"고 답했다.

"'독전'은 원작부터 남성영화죠. 이 영화를 만들 때 '장르의 컨벤션을 비틀지 않는 것', 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게 첫번째 목표였어요. 성령 선배님의 분량은 편집되긴 했지만 아주 조금이에요. 하지만 극중 성령 선배님의 느낌은 비중과 비례하지 않아요. 선배님이 연기하는 연옥은 영화의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역할이고 성령 선배님은 좋은 연기로 극의 큰 줄기를 잡아주셨어요."

한편 '독전'은 지난 22일 개봉,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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