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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무대 장인' 나훈아의 공연이 기념비적이었던 이유


[나훈아 테스형 열풍의 앞과 뒤]③'돈'보다 치열한 예술정신…가요계 넘어 세상의 귀감 됐다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지난 추석 연휴 '가황' 나훈아가 15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9월30일 방송된 KBS 2TV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나훈아는 150분간 29곡을 소화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중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젊은 세대를 홀리고 정치권을 들썩이게 했다. 소위 '나훈아 신드롬'을 일으킨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전후를 차분하게 돌아본다. 또 기존 언택트 공연과의 차별화되는 지점을 들여다본다.[편집자주]

나훈아는 1966년 '천리길' 데뷔해 올해로 54년째 노래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녹음해서 발표한 곡 수가 2,600여 곡에 달하고, 그 중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만 800곡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나 알만한 히트곡도 150곡에 이른다. 반세기 넘게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해온 '레전드 가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열풍 속 비대면 콘서트가 대세가 된 가운데 나훈아의 온택트는 달랐다. 최첨단 기술을 구현했고, 화면 너머 팬들과 소통했다. 반세기 동안 축적해온 히트곡들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직설적 화법으로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팬덤 위주로 열리던 비대면콘서트에서 한 획을 그었다. '역대급 콘서트' '나훈아는 죽지 않았다'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나훈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KBS]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나훈아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KBS]

◆ "레전드 가황의 54년 내공…기념비적인 공연"

방송에서 보기 힘든 인물인 나훈아가 KBS 비대면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무려 15년 만에 TV에 출연해 무대에 섰다. 나훈아는 "코로나 19 때문에 내가 꼭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고 공연을 열게 된 이유를 전했다. 할말을 하는 직설적인 발언들이 정치권까지 번지며 주목 받았지만, 사실 나훈아의 공연 그 자체도 기념비적이다.

나훈아에게 '비대면 콘서트'는 도전이었다. 기존 공연들이 방탄소년단, 슈퍼엠 등 아이돌 그룹, 댄스와 힙합 장르 위주로 온라인에서 이뤄졌다면 나훈아의 공연은 올드미디어인 TV, 그리고 트로트 가수라는 점에서 궤를 달리 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이돌 공연 못지 않은 볼거리를 선사했으며, 54년의 내공은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가수 나훈아가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인생 명곡들을 들려줬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
가수 나훈아가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인생 명곡들을 들려줬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

평소 공연에 있어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기로 유명한 그는 시작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바다 스크린 속 웅장한 배를 타고 등장해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불렀고, '고향역' 무대에서는 거대한 기차가 등장했다. 날아다니는 용, 코스모스 가득한 들판을 CG로 구현하며 꽉찬 볼거리를 선사했다.

다양한 그래픽 효과에 증강현실 등 최첨단 기술까지 접목했다. 오케스트라와 대학생 합창단, 어린이 합창단, KBS 합창단 등 수많은 인원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가수 하림의 하모니카 연주, 피아니스트 진보라와의 협연, 래퍼 군조의 피처링 등 후배 뮤지션과도 다채롭게 어우러졌다. 가수가 노래하는 무대를 일차원적으로 중계했던 TV 매체에서 보기 힘든, 한단계 진화한 공연이었다.

화려한 무대 연출과 스케일보다 더 대단했던 건 나훈아의 목소리였다. 빛바래지 않은 가창력에 더해 굴곡의 세월을 지나온 목소리는 더 구수해지고 진해졌다. 민소매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채 무대를 누비는 쇼맨십 역시 기존 트로트 가수들의 무대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히트곡 위주로 공연을 이어가는 트로트 가수들과 달리 구성적인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 했다. '홍시', '무시로', '울긴 왜 울어', '18세 순이', '갈무리', '영영' 등 히트곡은 물론 얼마 전 발표한 신곡 '테스형!', '명자!',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를 들려줬다. 구색 맞추기가 아닌, 신곡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과 교감하려 했다. 과거의 히트곡 나열에 연연했다면 '테스형' 열풍은 없었을 것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선임기자는 "노장들이 나오면 예전 히트한 곡들로 무대를 꾸미는데 나훈아는 신곡을 보여줬다"라며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해서 노래를 만들고, 의미있는 가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대단한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나훈아는 또한 3시간에 이르는 공연을 진두지휘 했다. 세트리스트는 물론 무대 연출, 효과까지 모든 그림을 그리며 '무대 장인'의 면모를 발휘했다.

서 기자는 "나훈아는 세트나 CG에 공을 들이고, 무대 스케일을 키웠으며, 사전 리허설을 철저하게 하는 등 공연 기획을 직접 다한다"라며 "자신의 주관하에 무대를 끌고 가는 연출, 기획의 힘이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 제작진이나 연출자들의 기획에 따라 맞춰서 공연을 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면 실연자가 공동기획하고 참여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랐다"라며 "팬덤을 깊이있게 만드는 문화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노개런티·NO 중간광고…상업성 비켜갔다"

나훈아 공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또 있다. 다시보기도 없는 단 한 번의 공연과 노개런티, NO 중간광고가 그것. TV 불황의 시대, 부가수익 창출을 우선시 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나훈아가 내건 조건들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공연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관객들을 먼저 챙겼다.

나훈아는 공연 중 중간 광고를 삽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그 어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PPL도 없었다. 출연료를 받지 않은 나훈아는 제작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구현해주기 위한 돈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나훈아가 김동건 아나운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
나훈아가 김동건 아나운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

공연의 목적이 '돈'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코로나 시대 대중들에게 위로와 희망이라는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었고, 나훈아의 공연은 그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았다.

서 기자는 "나훈아의 노개런티는 이미지 관리가 아닌, 콘서트의 분명한 의도나 의미를 부각한 것"이라며 "코로나 시대 국민들을 위해 뭔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큰 공연이었다"라고 의미를 짚었다.

나훈아는 가요계 '어른'으로서의 품격도 보여줬다.

김헌식 평론가는 삼성에서 거액을 주고 공연을 제의했는데 자신은 '대중가수'이므로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에 와서 표를 끊고 보라고 했다는 일화를 이야기 했다. 권력층의 대중문화 사유화를 질타했던 나훈아가, 이번에도 문화예술인들의 '자리'가 어디인지 강조했다는 것.

김 평론가는 "나훈아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공연을 열었고, 문화예술을 공유했다"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문화예술인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공공적인 측면에 대해 강조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나훈아의 예술정신, 가요계에 귀감 됐다"

'현역' 나훈아는 틀에 갇히지 않았고, 자유로웠다. 나훈아의 예술정신은 가요계를 넘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

먼저 나훈아의 공연은 트로트 가수들에 시사한 바가 크다. '미스터트롯' 등의 인기에 힘입어 트로트가 대세 장르로 자리잡았고,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훈아의 '희소성'과 '아우라'는 압도적이었다. 상업성에 휘둘려 이미지가 과하게 '소비'되고 있는 트로트 가수, 그리고 가수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 평론가는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미스터트롯'의 경우 프로그램, 방송사에 종속됐으며, 부당한 계약서로 혹사 당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활동에 있어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나훈아는 그것을 보여줬고, 예술정신에 맞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훈아의 공연은 추석 연휴 기간 방영된 TV조선 '2020 트롯 어워즈'와 많은 비교가 되기도 했다. 트로트 원로 가수인 이미자, 남진을 비롯해 장윤정, 임영웅 등 내로라 하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화제성과 시청률이 이보다 떨어진 건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새로울 것 없는 무대들이 펼쳐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축제의 주인이 가수들이 아닌 방송사라는 느낌이 더욱 강했다. 방송사의 필요와 권력에 휘둘리고 순응하는 이들의 모습은 나훈아의 예술정신을 더욱 부각시켰다.

'나훈아 스페셜' [사진=KBS]
'나훈아 스페셜' [사진=KBS]

공연에서 보여준 나훈아의 '철학' 역시 여타 가수들의 공연에서 쉬이 보기 힘들었다. 신곡 홍보, 팬서비스용 발언으로 채워졌던 공연들과 달리,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힘이 있었다. 공연의 유희를 넘어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세상에 던졌고, '눈치 보지 않고' 메시지를 던졌다.

서 기자는 "테스형을 끌어들인다든지, 세월의 모가지를 끌고 가서 안해본 것들을 해야 한다든지, 역대 왕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라고 말했다. 자칫 파장이 일어날 수 있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국민들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나훈아의 의도는 그대로 통했다.

그는 "나훈아는 공연에서 제일 중요한 음악과 구성적인 것은 물론 공연의 멘트도 나이에 걸맞게 성숙됐다"고 말했다.

나훈아의 공연은 가요계에,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단 3시간의 공연, 그 여운이 참 길다.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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