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안겨주었다. ‘태권 지존’ 김제경 선배의 공백을 메울 유일한 대안이라는 여론이 크게 조성되며 나는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시안게임 전까지 실의와 좌절에 빠졌던 나는 이것에 솔직히 도취됐다. 스포츠에서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자만감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가야할 길은 너무 멀었다.
2002년의 영광을 조용히 뒤로 한 채 2003년을 맞이했다. 그해 9월에 있는 독일세계선수권이 나의 목표였다. 2월 석사학위 논문을 통과한 나는 3월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을 준비했다.
컨디션이 상승세에 올라와 있어 자신감이 팽배했다. 결승에서 김진영(당시 경희대)에게 감점패(경고누적으로 감점 3점이면 자동패배)를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99년 캐나나 세계태권도선수권 우승의 영광을 4년만에 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됐다. 4년전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태릉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었기에 6개월간의 합숙기간동안 몸가짐을 바르게 했다. 주말 외출도 자제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9월 격전지인 독일 가미쉬로 향했다. 나는 헤비급이라 대회 최종일에 경기를 벌인다. 해외 경기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바로 음식이다.
경기가 하루종일 진행 되다보니 점심은 보통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보통 한인식당이나 한국인 가정집에서 도시락을 주문해 경기장에서 먹고 동료들의 경기를 응원한다.
문제는 도시락 숫자다. 비교적 넉넉히 준비한다고 하지만 외국 음식에 질린 한국 사범님들이나 관계자들에게 호의를 베풀다 보면 부족할 때가 종종 있다.
사건은 헤비급 경기 하루 전날에 터졌다. 그날 동료선수들을 응원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도시락이 동이 났다. 할 수 없이 후배와 함께 경기장 밖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어디서 고기굽는 냄새가 나의 후각을 자극시켰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구워진 고기를 넣어 만든 독일식 햄버거였다. 시장기를 느낀 나는 후배와 함께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었다.
1개도 양이 많았지만 워낙 맛이 좋아 나는 두개를 먹었다. 가득한 포만감에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디어 경기 당일 나는 3게임을 가볍게 이기며 준준결승에 안착했다. 8강전 상대는 약체 덴마크 선수라 빨리 끝내고 4강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데 8강전 경기 시작 10분을 앞두고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문을 나서는 순간 배 속에서 한바탕 전쟁이 일어난 느낌이었다.
급히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위기 상황을 해결했다. 심한 설사였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장내 아나운서가 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불안감이 나의 머리를 덮쳤다.<18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정리=김현승 기자 skyhs@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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