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이 만난 예술가]김경란 서울교방 대표


서울대 미대 자퇴 후 전통춤 전승…"생명 자체가 위대, 삶에 몸을 던져라"

조이뉴스24는 조기숙이 만난 예술가 코너를 신설합니다. 춤꾼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가 예술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삶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조 교수는 30편이상의 발레작품을 창작해 K발레의 미학적 토대를 구축한 안무자로 유명합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조 교수가 만난 예술가들은 누구일까요? 그 예술 안에 녹아든 삶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조기숙이 만난 예술가 코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지난달 26일 서울 사당동 한 카페에서 서울교방 김경란 대표를 만났다. 김경란 대표는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한 수재. 하지만 사랑을 위해, 그리고 학생운동을 위해 학교를 스스로 뛰쳐나온 용감한 인물이다.

이후 김 대표는 만신 김금화에게 내림굿을 받고 김수악 선생에게 춤을 사사받으며 전통춤에 뿌리를 내렸다. 현재는 전통춤을 전승하고 공연하는 서울교방을 이끌고 있다. 미술을 떠나 춤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는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교방 김경란 대표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조기숙 교수]

◆ "서울미대 자퇴…탈출의 세계 접했다"

-바쁘신 중에 시간 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선 왜 그 대단한 서울미대를 자퇴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자퇴의 첫 번째 이유는 현장으로 삶의 기반을 옮겨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을 하겠다는 결의였고요, 두 번째 이유는 남자친구 옥바라지를 위해서였어요.

대학 4학년 때 남자 친구가 감옥에 가게 됐어요. 그의 옥바라지를 위해 옥중 결혼을 했죠. 당시 시국범의 면회는 가족만이 할 수 있었는데 그의 부모님은 시골에 계셔서 면회가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먼저 혼인신고를 했죠. 또 대학 다닐 때 탈춤과 마당극을 접하면서 현실에 기반을 둔 민중문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활동 주무대는 어디였나요?

"당시 연우무대와 한두레에서 활동했어요. 연우무대에서 했던 장산곶매는 황석영 원작 장산곶매에서 이야기를 가져왔죠. 매가 독수리(외세)와 싸우러 나갈 때 집을 부수고 나간다(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이 있어요. 투쟁을 할 때는 돌아갈 곳이 없어야 된다는 뜻일 거에요.

그렇게 문화운동을 하다 현장에서 문화를 매개로 한 홍보, 쟁이 지원 활동을 하고 연대의 기반을 제공했어요. 그때 쟁이와 문화 활동의 모범적 관계를 구축하는 좋은 사례를 보였어요. 그때 민중지향 문화운동의 두 축이 탈춤과 마당극이 있었는데 이런 것의 근원을 추적하며 굿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 즈음에 김금화 선생을 만났고 내림굿까지 받게 됐어요."

-문화운동을 하시면서 김금화 만신과 연결이 되셨군요.

"서해안배연신굿, 대동굿 기능보유자이신 김금화 선생이 이수도 시켜주시고 지도해 주셨어요. 전 한국문화의 뿌리가 샤먼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에서 배우러 들어간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을 오랫동안 따라 다니며 한국문화의 원형적 상징성을 배우고 알게 됐어요.

승무, 살풀이, 입춤은 상징구조에서 독자적으로 떨어져 나온 것이에요. 굿을 배우며 춤의 근본적인 원리를 유추하게 된 것이죠. 제가 내림굿을 받은 이유는 한국문화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 거쳤던 과정이었죠. 춤은 굿에서 분화돼 나온 것이라 굿을 알지 못하면 춤의 상징성을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때부터 무용과 나오지 않는 제가 무용과 출신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미대에 들어가신 분이 언제 어떤 계기로 춤을 추시게 되었나요?

"학창시절부터 난 춤을 좋아했고 중학교 시절엔 무용특성화 학교라서 현대무용을 배웠어요. 어렸을 때 발레와 현대무용이라는 외국무용의 세례를 받았던 제가 운동을 하면서 탈춤 판에 들어서게 됐죠. 제가 춤의 근원을 알고 싶어서 굿을 배우기는 했지만 제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춤이었어요. 게다가 삶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김수악 선생님을 찾았고 그의 춤을 오랜 기간 배웠어요."

◆ 서울교방과 '김경란 춤'…"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름에 맡겨"

-서울교방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서울교방은 전통 중에서도 권번에서 행했던 춤을 계승, 현대화, 해체해서 공연하는 단체입니다. 권번은 일제 강점기에 예술교육기관을 하는 기생조합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말하자면 예술가의 예술교육기관인 교방청이 일제강점기에는 권번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진거예요.

권번은 조합형식으로 활동을 했는데 진주, 남원, 노화(군산)에 권번이 있었어요. 진주에는 김수악, 남원에는 조갑녀, 노화에는 장금도가 기적에 올라서 활동을 하시다가 해방 후에는 신분을 속이고 약 50년간 경력단절을 겪게 되죠.

서울교방은 단순한 무용단이 아니라 무용인들이 서로 컨설팅도 해주고 플랫폼 역할을 하는 등 함께 하는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춤꾼으로서 김경란 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내 춤은 힘을 빼는 것, 틀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름에 맡기는 것(교방 굿거리), 지난한 고난의 세월동안 잠재되어 있는 슬픔과 고통이 승화되어 무심하게 비워지는 것, 지난 세월의 흔적을 소리 내지 않고 기화시키면서 비워 버리는 것(민살풀이), 유한한 세월 속에 빛났다 한들 머무르지 않고 지나간 것들은 되돌아오지 않기에 그늘이 있는 것, 그 모든 것을 조용히 바라보며 기화되는 것이죠. 그래서 텅 비워지는, 흐름에 맞는 자유자제함을 구가하는 풍유의 멋이 춤추는 사람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기쁨이죠. 춤이 저에게는 신바람이이에요. 이는 사실 내 춤뿐만이 아니라 서울교방 춤의 특징이기도 해요."

-완전 득도의 경지네요. 무용과 출신들도 살아남기 힘든데 이렇게 존경받고 성공(?)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요?

"몸을 던진 삶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즉 생각이 아닌 몸을 던져서 시간을 지내왔고 여러 가지를 견디고 내면화하면서 감수성이 형성된 것이죠. 연습에 의한 것만이 아닌 삶의 감수성을 느끼고 이에 대한 존중이 있기도 하죠. 이것이 어떻게 춤에 녹아들고 드러나는 가에 대한 고민 속에 선도 단전호흡 수련도 했어요"

김경란 서울교방 대표가 전통춤을 추고 있다. [사진=조기숙 교수]

◆ "'스우파' 창의성 대단…저돌적 에너지 대충 취향 저격"

-춤은 몸과 떼어 놓을 수 없는데 춤추는 몸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몸에 대해서 다른 경험을 했어요. 발레는 몸이라는 물성에 대해서 분석하고 세세하게 인지하려 하지만 한국 춤을 출 때는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죠. 우주선을 탔을 때 지구의 중력장 안에서 가능했던 모든 활동이 정지되는 것과 같아요. 즉 지각활동을 언어화한 의미체계가 멈추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말로 할 수 없죠.

한국 춤은 자취가 없는 것, 허공성이고 자아가 몰아가 되어 황홀경에 들어가 엑스타시가 되는 것이에요. 말이 끊어지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라 사실 자유조차도 아니죠. 자유는 속박에서 해지가 됐을 때 느끼는 것인데 속박과 자유가 동시에 작용할 때 감각이 없어지게 되죠. 작두 탈 때도 감각이 없게 돼요.

몸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선물인데 우리는 이것을 한 방향으로만 쓰고 있어요. 숨이 더 이상 쉬어지지 않고 피가 더 이상 공급이 안 되어 순환이 멈추는 시점이 있는데 이는 자연이 연결되어 들어가는 것을 의식의 범주에 가두는 것이에요. 춤은 의식의 범주에 가두는 것을 멈췄을 때 제대로 되는 것이고 그래서 무당은 내림굿을 받는 것이에요."

-너무 본질적인 질문 같지만 춤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춤은 무한재생이 멈췄을 때 나올 수 있고 호흡, 감정, 기량, 형태, 태도 등이 다 들어있는 움직임이죠. 전통춤은 이중에서 핵심을 갖고 전승을 하는 것이고 결코 간단하지 않죠. 권번 춤을 추신 분들은 태도에서 희로애락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함을 볼 수 있어요."

-요즘 히트친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나 아이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학 진학과 결부되어 있는 무용전공자와 달리 춤에 대한 순수한 욕구가 분출되는 아마추어리즘의 창의성이 대단하죠. 또한 억눌렸던 젠더적 길들여짐을 거부하는 저항의 에너지는 지지하는 대중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한 듯해요. 아이돌의 경우는 회사에서 찍어내는 상업적 결과물이라 로망이 안 생기는 반면 '스우파'는 아직은 상업화 전이라 그런지 참신하고 자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생명을 갖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위대해요. 인간에게는 모두 재원, 능력과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몰라서 꼬이죠. 자아가 생기면서 비교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왜곡하고 열등감을 가지며 못마땅해 하죠. 평등지를 알아야 돼요. 이 것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때 늙음, 젊음, 기쁨, 슬픔 등 양쪽이 다 그려져야 아름답게 된다는 것이에요. 쏠리지 않고 이 양쪽을 하나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여러분의 위대함을 알고 삶에 몸을 던지기 바라요."

조기숙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사진=본인 제공 ]

◇조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는 이대 무용과 발레 전공과 영국 써리대학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30편 이상의 발레작품을 창작공연하면서 K발레의 미학적 토대를 구축한 안무자이다. 대표작으로는 '그녀가 온다: 여신 서왕모', '그녀가 논다: 여신 항아' 등이 있으며, 무용연구자로서 35편 이상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그는 춤추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메시지를 던져왔다.

/조기숙 교수 kscho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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