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기꾼들-2] 남편, 시어머니에게 80억 사기 친 간 큰 며느리


 

"난 결혼하자마자 남편과 시댁에 80억 사기 쳤죠."

자기를 특징할만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소개나 하자던 이 모임의 사회자 고단수의 말에 홍아리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담담히 말한다. 쳐진 얼굴에 눈빛이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육십을 바라보는 여자치고는 예쁜 얼굴이다.

"좀 센데요" 누군가가 추임새를 넣었다. 홍아리는 자기 전성기를 회상하면서 자못 감회가 크다는 듯, 먼 곳을 응시하며 이야기를 해 나갔다.

"내가 서른다섯이었으니 한 2003년도쯤인가? 그 당시 나는 서울에서 강남을 비롯한 요지 6곳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사업이 잘 될 때는 돈을 갈쿠리로 끌어들인 적도 있지만, 조금 매상이 떨어지자 휘청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땡전 한 푼 없이 빚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이자를 갚을 수가 없었죠. 해결책을 찾던 끝에 하이클래스들만 엄선해서 멤버십으로 운영하고 있는 청담동의 Z와인바 회원으로 가입했어요."

"참 특이한 해결책이네요?" 모임 멤버 중 가장 덜떨어져 보이는 강목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벅이며 묻는다.

"개념 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재벌2세를 노리기 위해서였죠. 재벌가 사생활은 잡지언론의 표적이어서 세안을 좀 무서워하거든요. 나중에 사기가 발각돼도 집안위신 생각해서 저를 떠들썩하게 대하진 않겠다 싶어 그랬죠. 근데, 세상 일이라는 게 참 뜻대로 안되는 거더군요. 재벌2세가 아니라 의사를 만난거예요. 처음에는 내 관심 밖이었죠. 재벌하고는 거리가 멀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그냥 의사가 아니었어요. 꽤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더라구요. 본격적으로 작업을 걸었죠. 재벌2세는 내가 되기로 했어요. 당시 유명한 유통업체 Y그룹의 2세라고 나를 소개했죠."

"나는 외제차에다가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었고, 품위있는 외모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속아 넘어 갔어요. 게다가, 재벌2세 사위라는 프리미엄이 눈에 콩깍지를 씌었겠죠. 시어머니도 계급상승의 기회라 생각되었는지 결혼을 서두르자고 하더군요. 좀 허영기가 있는 편이었죠. 생각보다 결혼식 날짜를 빨리 잡게 되었어요. 결혼식을 앞두고 악질 사채업자들은 정리해야 되겠다 싶었죠. 결혼식을 망쳐 놓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남편에게 5억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프랜차이즈를 확장할 절호의 땅을 사서 지금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5억 정도가 모자라다면서, 지분을 줄 터이니 투자하라고 했어요. 남편은 지분이든 뭐든 결혼하면 한 몸인데 그 정도 못해주겠냐며 자기 재산이랑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5억을 만들어 줬어요."

"결혼하고 나서는 주로 시어머니께 돈을 뜯어냈죠. 시어머니는 제법 돈 되는 땅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시댁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땅이라 친척들 눈이 무서워 처분하지 못하고 월세나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었죠. 땅을 담보로 내 사업에 투자하라고 했어요. 기껏 월세나 받으면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내 회사를 상장하기 전에 지분을 사두면 최소 몇십배의 이익을 남길 거라고 했어요. 그 당시 커피체인점으로 상당한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S그룹의 '스타벅스'에 버금가는 Y그룹의 외식사업인데 뭘 의심하느냐면서 부추켰어요."

"시어머니는 재벌 반열에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하며 부동산을 담보로 수차례에 걸쳐 50억 정도를 마련해 주었어요."

"알아보면 금방 탄로날텐데, 어떻게 계속 속일 수 있었죠?" 멀찌감치 앉아 이야기를 음미하고 있던, 멤버중엔 가장 지적으로 보이는 노박사가 물었다.

"뒷조사를 시도 하다가 내게 덜미를 잡혔죠. 그 때 다시는 의심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 놨어요. 들킬까봐 너무 불안해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끄나풀을 하나씩 붙여 놨거든요. 여하튼 1년 정도 우려먹으니 안 통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이자나 투자이익을 잘 챙겨 드렸는데, 나중에는 카드돌려막기까지 하게 되었어요. 이자나 이익을 챙겨줄 수 없게 되자 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시어머니에게 '거래소에서 상장심사중인데 탈세가 문제되어 상장이 어렵게 되었다'며 뇌물로 쓸 돈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상장이 안 되면 시어머니의 지분도 의미 없어진다며, 다 된 밥인데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어요. 시어머니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부은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나를 살려야겠다 싶어 할 수 없이 또 10억쯤 빌려 주었죠. 그 외 소소하게 교통사고 합의금으로 필요하다며 1억정도, 남편과 시어머니의 사생활을 빌미삼아 10억쯤 더 가져다 썼어요."

"그 돈으로 다 뭘 했어요?" 80억이라는 돈이 쉽게 상상이 안되는 강목근이 궁금해하였다.

"좋은 질문이예요. 정말 그 돈의 반이라도 써 봤다면 내가 억울하지도 않겠어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할 때 빌린 돈의 이자에 이자를 갚느라고 반 이상을 썼어요. 순악질들에게 빌린 돈은 눈물을 머금고 원금도 갚았죠. 원금을 갚는게 왜 그리 아까운지......, 참...나... 그리고, 재벌2세 시늉이라도 할라치면 돈이 좀 많이 들어가나요? 시어머니나 남편도 억울하겠지만 나도 못지않게 억울하답니다. 진짜 나쁜 놈들은 나한테 이자 받아 쳐 먹은 것들이에요. 제가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런 짓까지 했을까요?"

"근데, 너무 웃긴 건 그러고도 내가 이자를 못 갚자 그 놈들이 나를 신고해 들통났다는 거예요. 우리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 때까지도 몰랐어요. 쥑일 놈들! 단물 쓴물 다 빨아 먹힌 피해자인 나를 신고해?"

지금 생각해도 분하다는 듯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래서, 큰집에서 얼마나 살았어요?"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사실 사기친 액수에 비하면 얼마 안 살았죠. 한 3년 살았나? 결혼하고 나서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친 사기는 친족상도례인가 뭔가 해서 처벌 안한대요. 결혼하기 전에 친 사기금액 5억땜에 살았어요. 그런 법이 있는 줄 알았으면 결혼하기 전에는 아무리 급해도 사기 안 치는 건데......"

결혼하기 전에는 사기를 안 쳤어야 했다고 재차 되뇌이며 홍아리는 자기 소개를 마쳤다. 참으로 법원앞 똥강아지도 혀를 찰 이야기지만 듣는 이중에는 아무도 홍아리를 한심해 하는 이는 없었다. 짧은 침묵 뒤, 사회자 고단수는 더 할 말이 없으면 다음 차례로 넘어간다며 강목근을 손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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