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기꾼들-8] '귀하신 몸' 사기의 원조


 

1957년 8월. 경주의 한 다방에 이강석이 나타나 경주경찰서장 A를 호출한다. 이강석.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자유당 정권의 넘버투 이기붕의 장남인 그는 그 해 3월 이승만대통령의 양자가 됨으로써 황태자로 등극한 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진해별장에 왔는데, 아버지가 경주지방 수해상황을 비밀리에 시찰하고 오라고 하여 왔다고 한다.

황태자가 그런 구석탱이 지방에 왕림하셨다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 두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잃을 것이라 생각한 A는 이강석 주위에 호위경관을 배치하고, 찝차를 내 주었으며, 일류여관을 잡아 대청소와 소독까지 시키는 등 침식에도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경주지방의 수해 시찰을 하기 위해 A서장이 내준 찝차와 호위경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이강석은 우선 불국사 구경부터 하고 영천에 들른다. A서장에게서 먼저 연락을 받은 영천경찰서장 B가 영접을 하였고, 수해복구상황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받은 뒤 안동으로 갔다.

수해 피해가 가장 많았던 안동에서는 조흥은행 안동지점장 C까지 불러 '여기까지 왔는데, 수해복구를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면 수재민에게 너무 면목이 없다'며 20만환을 빌려달라고 한다. 황태자가 면목이 없어진다는데 무얼 망설이겠는가? C지점장은 당장 빳빳한 천환짜리 지폐 200장을 마련해 드렸다. 그리고, 따로 여비조로 1만환을 더 주었다.

이강석은 이런 식으로 호화롭고 융숭한 영접을 받으며 경주, 영천, 안동, 봉화, 의성지방을 사흘 동안 돌아다녔다. 가는 곳 마다 경찰서장, 경무계장, 은행지점장, 군수, 군내무과장 등이 나타나 적게는 1만환 많게는 20만환까지 여비에 보태달라고 봉투를 내미는 바람에 돈도 쏠쏠히 챙겼다.

이강석이 경주근처에 나타났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은 경북도지사 이근식은 친히 사람을 보내 관사로 모시게 하였다. 이강석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 급하게 뛰쳐 나온 이지사는 경관을 대동하고 기세등등하게 들어서는 이강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강석을 잘 알고 있었던 이지사의 눈에는 많이 비슷하긴 했지만 진짜 이강석은 아니었던 것이다. 경찰과 관공서의 여러 핫라인을 통해 진짜 이강석은 서울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가짜 이강석을 그 자리에서 체포하였다.

가짜 이강석, 진짜로는 강성욱(가명)의 3일천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대구의 명문 경북고등학교를 나온 수재였던 강성욱은 서울법대에 낙방하여 열등감을 갖고 재수를 하고 있던 그 해 7월, 방학을 맞아 내려온 서울법대 대학생 친구들이 대통령의 양자가 된 이강석이 서울법대에 무시험으로 편입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자기는 죽어라 공부해도 못 들어가는 서울법대를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하여 무시험으로 들어가는 현실에, 권력을 한껏 조롱하고 싶어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검찰조사에서 밝혔다고 한다.

사회에 부조리가 많을수록 범죄자들의 죄의식은 엷고 이들에 대한 세인의 비판도 관대하다. 그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귀하신몸'이란 유행어까지 낳은 이 사건도 사기꾼인 강성욱의 범죄보다는 권력에 약한 공직자들의 아첨세태에 대한 비판이 거세져 관련 공직자들의 문책이 뒤따르는 등 적지 않은 정치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TV나 전화기가 한 동네에 한 집 정도 밖에 없을 정도로 통신과 미디어가 부실했고, 후진국형 독재정치가 횡행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런데, 발달한 미디어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치적 선진화, 민주화, 자유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요즘에도 가끔 청와대 청소부가 인사 청탁을 받았다느니, 대통령의 사촌누이를 사칭하여 사기를 쳤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면 권력사칭형 사기사건은 시대를 막론한 고질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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