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기꾼들-11] 대통령 조카 행세, 국내외 VIP 농락한 황당 사기극


 

2003년 6월 26일 저녁,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내에 있는 홈즈빌딩 박카스룸에선 한인이민1백주년기념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한미문화예술교류재단의 행사준비위원장이자 대통령의 친조카라고 소개되는 노희정씨(39·가명)는 초청된 국회의원, 백악관 관계자, 가수, 성악가등 양 국가의 정, 재, 문화계 인사들과 악수하고 사진 찍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짙은 화장, 올림머리에 우스꽝스런 왕관, 격에 맞지 않은 붉은색 슬립 드레스를 입고, 한껏 입을 벌리고 웃으며 교양 없이 활보하고 다니는 노씨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화려하게 행사를 치렀다고 재단 이사장 서오갑(가명)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 후, 서오갑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행사 때 초청한 오케스트라, 가수, 성악가의 공연비용과 식대, 대관료 기타 등등의 대금 독촉이 심한데, 돈을 쥐고 있는 대통령의 친조카 노희정과는 도통 연락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사재를 털어 급한 것은 우선 처리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진정을 하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청와대로부터 회신이 왔다. 대통령 조카 중 노희정이라는 인물은 없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망연자실한 서오갑은 다리가 풀리는 걸 느꼈다.

그 해 봄, 굳이 따지자면 대통령의 19촌 할머니뻘쯤 되는 노희정은 임금을 배출했다고 떠들썩한 노씨 종친회에 참석하였다. 공금횡령과 사기전과가 있는 노희정으로서는 대통령 집안 사람(?)이라는 건수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종친회와 총회에 참석하여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연예기획사 대표 K를 통해 한미문화예술교류재단 이사이면서 한인이민1백주년기념행사 음악총감독을 맡고 있는 작곡가 겸 지휘자 블로르 박씨를 만났다.

노희정은 자신을 대통령의 친조카라고 소개하면서, "평소 문화예술쪽에 관심이 많다. 이 뜻 깊은 문화행사를 돕고 싶다. 나를 행사준비위원장에 앉히면, 청와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대기업으로부터 효과적인 후원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블로르를 속였다. 블로르를 통해 노희정을 소개받은 재단 이사장 서오갑은 '대통령의 조카가 나서주면 여러모로 득 될 게 많다'고 판단, 선뜻 행사준비위원장 자리를 내 줬다.

이름 있는 재단의 한미이민1백주년기념행사 준비위원장이란 간판을 걸고 난 뒤부터 노희정의 횡보는 거침이 없었다. 가짜 재단통장을 만든 후, 후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전경련을 비롯한 대기업의 홍보실은 다 다녔다.

대통령의 조카라는 직함이 잘 안 통하는 데도 있었지만, 행사와 관련 있는 몇몇 업체로부터는 제법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 행사에 초청할 연예인과 문화계, 정계 인사과도 접촉하였다. 행사 사전답사를 핑계로 친구들을 데리고 환대를 받으며 미국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행사일이 다 되어 가도록 후원금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해 초조했던 서오갑은 노희정을 불러 상황을 물었다. 노희정은 "요즘 기업들이 동족의식이 희박해 이 행사에 도통 관심이 없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자기도 너무 답답하여 청와대에 이야기 했더니, 이런 행사를 개인 재단에서 소화하기는 힘들 거라면서 물 밑에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조금 늦게 알긴 했지만 행사비는 반드시 마련해 주겠다고 했다."면서, 자기가 행사진행비 2억원을 지급하겠다는 지불각서를 써 주었다.

대통령 조카의 지불각서까지 받아 논 서오갑은 안심하고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한 일은 별로 없지만 대통령 조카 예우 차원에서 행사의 한국측 대표로 소개하며 연설시간도 마련해 주었다.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VIP들의 박수를 받으며 뻔뻔스럽게 연설하던 노희정. 생각만 해도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행사진행비를 받을 일은 소원해 보였다. 자기가 갚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벤처캐피탈을 경영하는 M&A 부띠끄 은동호(45·가명)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채팅으로 알게 되어, 재미삼아 몇 번 만났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이 여인이 대통령의 조카라니! 문화사업을 한다는 이 여인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현직 국회의원, 미국 하원의원을 비롯한 정, 재, 문화계 인물들과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에게 굴러 온 이 호박넝쿨이. 그동안 열심히 해, 돈은 많이 벌었지만, 빽 없고 가방 끈이 짧아 은근히 기죽어 살아왔는데......,

그녀가 이번에 기획하는 오페라에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계 거물급 인사 몇몇이 후원을 하는데, 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투자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그녀의 제안. 천군만마를 얻은 것 처럼 든든하였다. '그래! 돈 만 있으면 뭐 하나? 인제 나도 어깨에 힘 좀 주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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