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몸은 힘들지 몰라도 마음만은 행복하고 즐겁다. "보고 싶은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재미있는 촬영을 하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연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희준은 거듭 "감사하고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표정에서도, 또 연기에서도 편안함, 여유가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일 테다. 자신이 업으로 삼은 일에서 행복을 찾는다니, 이보다 부러울 수 있을까 싶다. 이런 이희준이라 앞으로 더 많이 그의 연기를 보고 싶다.
지난달 공개된 '살인자ㅇ난감'(감독 이창희)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최우식 분)과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 난감(손석구 분)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죄와 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파격적인 스토리텔링과 스타일리시한 연출, 캐릭터를 몰입감 있게 풀어낸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의 열연에 호평이 쏟아졌다.
![배우 이희준이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https://image.inews24.com/v1/60eb6e53ad01f2.jpg)
이희준은 형사였지만 하루 아침에 살인을 저지른 뒤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살인을 이어간 송촌을 연기했다. 그는 송촌의 무자비한 면모와 히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특수 분장까지 감행하며 비주얼, 목소리 모두 바꾸는 파격 변신을 감행해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이에 앞서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빌런 양기수 역을 맡아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현재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촬영까지 하고 있어 새로운 '넷플릭스 아들' 타이틀을 거머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얻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도 많다. 디즈니+ '지배종', 영화 '핸섬 가이즈', '보고타'가 공개를 앞두고 있으며, 3월 15일 개막되는 연극 '그때도 오늘' 무대에 오른다. 3월 말에는 단편 영화 연출자로도 나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음은 이희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우식 배우는 후반부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눈썹 염색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더라. 혹시 송촌 캐릭터에 본인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것이 있나?
"헤어는 제 아이디어다. 원래 흉터도 있었다. 테스트를 해봤는데 너무 세더라. 특수분장팀이 '오징어 게임'의 영희를 다 만든 팀인데, 함께 만들어갔다. 얼굴도 근육을 다 따로 붙였다. 섬세하게 만든 분장이다. 붙이는데 2시간, 떼는 데 1시간이 걸렸다. '최강야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 연기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힘든 지점이 있지는 않았나?
"거짓말인 것 같지만 힘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부당거래' 때만 해도 필름으로 찍었다. NG를 내면 숨고 싶고 혼날까 봐 긴장되고 부담도 됐다. 아직도 대사가 생각나는데, 그때 NG를 9번 냈다. 너무 힘들었고 잠도 못 잤다. 어릴 땐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잘하고 싶은 욕심보다는, 그 역할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편하게, 사랑하면서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배우 이희준이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https://image.inews24.com/v1/bcb3f6f7927192.jpg)
- 힘 좋은 노인 연기를 하기 위해 체력적으로 노력한 부분도 있나?
"약수터에 보면 몸 좋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것 같은 이미지의 어르신을 생각했다. 운동은 '남산의 부장들' 하면서 버릇이 됐다. 원래는 웨이트를 안 좋아했다. 이제는 안 하면 허전하고 근질근질해 운동 중독이 됐다. 딱 봐도 위압감을 줄 만한 체격을 위해 근육량을 키우려 했다."
- 아직도 108배를 하고 있나?
"그렇다. 8년 정도 했다. 캐릭터에 물드는 편이라 명상이나 여러 가지 자가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심리적인 안정과 위로, 명상 치료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송촌이라면 어떨까. 살인을 저지르면 어떨까'를 계속 상상한다. 연기라 가짜 같지만, 배우는 진짜로 경험하는 거다. 그 스트레스와 쇼크가 다 온다. 그럴 때일수록 명상, 자가치유로 '고생했다', '애썼다', '그건 허구고 너는 이해하려고 진심을 다하려 애썼다'라고 위안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108배도 그렇고, 저는 정신과 상담을 배우들에게 권하고 싶다."
- 이번 작품의 데미지도 컸을 것 같다.
"데미지로 보면 드라마 '마우스'가 컸고 너무 힘들었다. 사실 출연을 4번 거절했다. 이 역할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 아니까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승기가 '희준 형 안 하면 나도 안 하겠다'라고 해서 무너질 판이 됐다. 그걸 '보고타' 찍을 때 보고타에서 6~7개월 후에 들었다. '이승기도 안 한다고 해서 무산이 될 것 같다.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하게 됐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럴 때 명상하고 등산하면서 정신 건강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거다. 이번에도 아들이 놀다가 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는데 내 눈이 이상하더라. 아기 아빠의 눈이 아니라 송촌의 눈이더라. 영향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 108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연기를 그만둘까 할 때 법륜스님에게 질문하고 다시 용기를 내게 됐다. 그 감사함에 정토회라는 모임을 하고, 노희경 작가님과 길벗에서 봉사활동, 해외 난민 돕기도 한다. 종교가 아니라 수행, 스스로 치유하고 명상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108배를 할 때 저를 108번 위로한다. '애썼다', '그걸 이해하기 어려운데 힘들었지?'라고. 그걸 하고 나면 기분이 좋다. 친구나 누군가에게 듣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듣는 위로다. 수행은 떠벌리면서 하는 것이 아닌데(웃음) 꼭 필요하다."
-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는 무언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때였다. 무명이었다가 인기를 얻다 보니 제안이 많이 왔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했는데, 다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했다. '넝쿨당', '감기'와 연극까지 네 개를 같이 했다. 안 되는 건 거절해야 했는데 바보 같았다. 드라마 촬영이 늦어져서 공연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다. 급하게 갔다 보니 과호흡이 와서 대사를 못 했다. 제가 완벽주의 성격이라, 그 당시 자취하던 반지하 집에서 스스로를 엄청 혼냈다. '왜 그런 거냐', '다시 이러면 어쩔거냐', '방법을 찾아보자'라며 한숨도 안 자고 저를 괴롭혔다. 그러면서 증세가 시작됐다. 그땐 공황장애인지 몰랐는데, 심해져서 4년 동안 그랬다. 어디다 얘기하기도 힘들고 외로웠다. 그래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방송연예 관계자들만 모아서 대담한다는 광고를 보고 여의도에 갔다. 아는 사람도 많았는데 스님께 '배역에 공감은커녕 당황하는 신에서 더듬을까봐 겁이 나는 배우다. 내가 되고 싶은 배우와 갭이 커서 배우를 못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만두려고 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연기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 정신과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먹으라는 말과 함께 '당황해서 더듬으면 그냥 더듬으면 안 되는 거냐'라고 하셨다. 그 말에 '맞아요, 스님'이라며 눈물이 났다. 집에 왔는데 투명한 감옥에 갇혀 있던 마음이 해방되더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 것 같아서 간직하기 위해 새벽 내내 이야기로 썼다. 7장을 썼고, 영화로 찍어야겠다 싶었다. 한예종 다니는 카메라 감독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재미있다고 해더라. 그래서 '10만 원 줄테니 찍자'고 하니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찍었다. 그게 '병훈의 하루'라는 단편 영화고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
![배우 이희준이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https://image.inews24.com/v1/bae8054b305d14.jpg)
- 지금은 자신에게 관대함이 생겼나?
"공황장애는 한 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는다. 더 심하게 오기도 한다. 지금은 가끔 오지만, 이젠 스태프들에게 '죄송하다'라고 하고 '넘어져도 돼, 괜찮아' 하면서 나를 달랜다. 조금 더 심해지면 약을 먹는다. 어떨 때는 10초 만에 갈 때도 있고, 오래 머물 때도 있다. 반가운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친구가 됐다."
- 나영석 PD의 '와글와글'을 보는데 아내(이혜정) 분이 음식부터 버너까지 다 챙겨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잘 챙겨주는 편인가?
"아내가 모두의 끼니를 다 챙겨준다. 출연했던 작품의 모든 감독, 배우들을 집에 초대해서 요리해준다. 그리고 아내가 술을 잘 마셔서 마지막엔 다 기절하고 간다. 영화 얘기를 하다가 대작하고 뻗는 것이 마지막 루틴이다.(웃음) 아내가 정말 든든하게 응원을 해준다. 제가 '악연'이라는 작품을 찍고 있는데 서치 때문에 밤 12시에 미아를 가야 할 것 같더라. 동네 날라리 같은 캐릭터인데, 이 시간에 먹자골목에 있을 것 같다는 직업에 가야겠다고 하면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더라. 그런 후 제가 육아를 한다. '살인자ㅇ난감' 나온 후 지인들이 아내에게 전화를 많이 하니까 '집안일 하지 말고 이런 거 해'라고 하더라. 이게 길게 가면 좋은데, 일주일 간다.(웃음)"
- 연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병훈의 하루'처럼 보고 싶은 것이 떠올라서 3월 말부터 촬영을 할 생각이다. 진선규, 오의식 배우도 나오고, 허명행 감독님도 우정 출연을 해준다고 하셨다. 극에 덩치 큰 사람이 있어서 '황야' 홍보하다가 해달라고 제안했더니 당연히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 3월부터 연극 '그때도 오늘' 공연도 시작이 되고, 시리즈 촬영과 연출까지 굉장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힘들거나 하지는 않나?
"번아웃이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이 적을 때 온다고 하던데 맞는 것 같다. 연기는 재미있는 일이라서 몸은 피곤해도 힘들지 않다. 보고 싶은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재미있는 촬영을 하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간다에서 공연 연습을 할 때는 연기 지적을 디테일하게 한다. '가짜 같다', '머리 쓰는 것이 보인다'라고 한다. 그것도 재미있다. 이 나이대엔 연기 얘기를 잘 안 하니까 조심스러운데, 우리끼리는 다 한다. 선규 형과는 칭찬도 하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피곤해도 재미있고 신난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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