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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같은 지난 사랑의 추억…'빨간구두'


 

비가 내린다. 사거리 한 가운데 교통사고가 났다. 떨어지는 빗방울 아래 소녀가 널부러져 있다. 급히 실려 간 병원. 응급실의 의사 중 한 명이 소스라친다. 실려 온 소녀가 동료의 외동딸이었던 것.

딸의 사고를 전해들은 띠모테오(세르지오 카스텔리토 분)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차마 딸의 수술을 보지 못하는 띠모테오. 그는 수술실 밖에서 초조함과 온갖 걱정을 억누른 채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긴장을 달래려 내다본 창밖. 한 여인이 비를 맞으며 빨간구두를 신고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띠모데오는 눈동자가 커지고 황급히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붙잡고 울먹거린다.

띠모데오는 능력 있는 외과의사. 아름다운 아내와 십대 초반의 외동딸을 가진 화목한 가정의 가장. 그러나 그는 외톨이로 자란 불우한 과거가 있다. 아내는 현명하고 정숙하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전부 상쇄시켜주지 못한다. 그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던 것이다.

우연히 시골길을 가다 만나게 된 이딸리아(페넬로페 크루즈 분)는 아내와 정 반대의 여자. 교양보단 야성을, 부드러움보다 격렬함을 지닌 여자였다. 술김이었을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끌림이었을까? 태양이 작열하는 한 낮. 이딸리아의 집에 간 띠모테오는 남자의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만다.

이탈리아 영화 '빨간구두'는 뻔한 내용의 영화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가진 능력 있는 유부남이 외도를 한다는 극히 통속적인 줄거리다. 그러나 이런 뻔한 줄거리의 영화가 2004년 이탈리아에서 흥행 1위로 장기 상영 중이던 '러브 액추얼리'를 끌어내리고 자국 박스 오피스 정상에 선 것은 그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랑브루', '스타메이커', '알게 될거야' 등의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세르지오 카스텔리토는 이 작품에서 주연과 감독 및 각본을 겸하며 통속적인 내용을 두 시간 가까이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딸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현재와 이딸리아에 대한 띠모데오의 과거 회상과 교차되며 전개되는 영상은 영화 전체에 긴장감을 안겨주었던 것.

띠모데오의 과거와 현재가 차곡차곡 맞물리면서 한 남자의 외도를 비루하고 비겁했지만 영혼을 뒤흔들었던 사랑으로 변모시키는 감독의 능력은 본인의 연기 못지않게 영화의 몰입을 가중시켰다. 페넬로페 크루즈 또한 사랑의 이름으로 한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가련하나 강인한 여자 이딸리아를 통해 화면을 장악한다.

'빨간구두'는 띠모데오가 이딸리아에게 주었던 선물. 이딸리아는 자신에게 폭력으로 다가왔던 띠모데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결국 띠모데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딸리아의 사랑을 간직하려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은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만다.

2004년 칸느영화제 주목할 시선 초청작이었던 영화 '빨간구두'는 가을의 추적거리는 빗줄기마냥 지난 사랑의 회환을 자극한다. 그것이 아픔이고 불륜이었던 간에 절실했던 주인공들의 만남은 서로의 삶에 커다란 화상을 남긴다. 그때의 불길이 서로의 지루한 일상을 사랑으로 승화시켰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를지라도. 18세 관람가. 14일 개봉 예정이다.

조이뉴스24 /김용운 기자 woo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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