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옥은 컴컴한 아랫목을 쳐다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최 노인의 머리맡에는 봉옥이 소포로 부쳐준 약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때까지도 최 노인은 봉옥을 알아보지 못한 채 멍하니 누워 있었다. 정신이 잠깐씩 들락거리는 모양이었다. 봉옥은 앉은 자세로 다가가 아버지의 핏기 없는 누런 손을 잡아끌었다.
"아부지."
"아부지. 봉옥이 왔그만이라우."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힘겹게 눈꺼풀을 움직이며 최 노인이 입을 벌렸다.
"너 왔구나……."
"네."
그러나 최 노인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봉옥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는 힘을 더 끌어 모아야 했다. 말을 더듬거릴 수 있을 만큼 기력이 모아지면 스스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최 노인이 더듬거렸다.
"날 현소 애비 옆……에다, 묻어주라."
"봉옥아…… 넌, 헐 수 있어……"
"그, 그 자리가 좋은 터다. 북으로 흐르는 강도 보이고……."
더 말을 하려던 최 노인은 또 기력이 빠져버린 듯 입술만 달싹였다. 입술이 말을 만들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시늉만 했다.
물이 고이듯 힘이 모아지고 난 뒤에야 몇 마디를 더 뱉어냈다.
"거, 거기에 날…… 묻기 전에는…… 울지 말그라."
"네, 아부지. 걱정 마시요."
최 노인의 말은 유언이나 다름없었다. 말을 겨우 마치더니 간헐적으로 깊은 숨을 내쉬며 눈꺼풀을 스르르 내렸다. 봉옥은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을 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견딜 수 없어서였다. 봉옥은 이를 꼭 물었다. 아버지의 당부대로 울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우선 장지부터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봉옥은 뒤따라 나온 봉래에게 장지를 물었다.
"아부지 집은 어디가 좋겠소?"
"어제도 오늘 너한테 한 말하고 똑같이 나한테 당부하시드라만 원, 현소 집이서 받아 줘야제. 현소 집은 지금 난리가 나부렀다. 괜히 어제 가서 상의를 헌 것 같다."
"그럼 오빠 생각은 어쩌요?"
봉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니까 어제는 마지못해서 현소에게 협조를 구하는 시늉을 한 것이지 봉래의 본심은 아버지의 생각과 다른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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