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아침소설] 고해 <11> - 정찬주


조이뉴스24는 지난해 9월 23일 정찬주 작가의 단편소설 '그림자와 칼'로 인터넷 신문 최초의 소설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조이뉴스24는 애독자들께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동안 정찬주 작가의 작품들은 애독자들의 고급스런 취향에 걸맞은 '아침소설'로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믿습니다. 정 작가는 맑고 선명한 언어로 우리에게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한편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정찬주 작가는 '고해'를 마지막으로 애독자들께 작별을 고합니다. 장기간 연재를 허락해준 정찬주 작가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아내가 대문의 빗장을 풀었다. 아내는 영문을 모른 채 졸린 목소리로 습관적인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는 그런 중얼거림이었다.

동호의 옷을 받아들고서야 조금 크게 눈을 떴다.

"밖에 비 와요?"

"안개가 자욱해."

"옷이 축축해요. 젖은 것 같애요."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혼잣말로 안개, 안개라고 중얼거리면서 잠자리로 돌아가더니 금방 잠이 들려 하고 있었다. 모로 누운 채 벽을 바라보고 있는 자세였다.

동호는 넥타이를 아내의 머리맡에 풀어헤치다 말고 잠시 망설였 다. 그때 아내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녀의 순결을 빼앗았을 때 그녀가 동호에게 들킨 눈물이었다. 그때도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동호는 섬뜩한 생각에 몸을 떨었다.

아내의 고른 숨결을 확인한 다음, 동호는 거꾸로 누워버렸다. 아내의 하얀 발가락이 삐죽이 드러난 곳에다 자신의 머리를 둔 것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좀 편해지고 있었다. 꿈을 꾸지 않고서도 편히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동호는 곧 악몽을 꾸고 말았다.

사방의 벽들이 별안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벽들이 슬금슬금 동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동호를 압사시키겠다는 벽들의 음모였다. 동호는 숨이 막혀왔다.

"문, 문이 어딨어!"

동호는 벌떡 일어나 벽을 더듬으면서 문을 찾았다.

"문, 문……."

"물이라고요?"

아내는 잠결에 '문'이란 말을 '물'로 잘못 듣고 있었다. 주전자를 동호의 발밑에 놓으면서 동호의 이마를 짚어보고 있었다.

"어디 아파요? 당신."

동호는 주전자 채로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성냥을 긋자, 사방의 벽들은 좀 더 또렷한 모습으로 드러났다가 이내 어둠 뒤로 숨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문과 함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호는 담배를 빨아 마실 때마다 담배 불빛으로 벽의 모습을 몇 번이나 더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스멀스멀 스며드는 새벽빛으로 벽들은 더 이상 어둠 뒤에 숨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동호는 쏟아지는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늘어지게 잘 수는 없었다. 어느새 아침인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동호는 천막교회의 찬송가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아내가 짜놓은 일과표대로 아침을 빈둥거리다가 출근을 했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무실 철문에는 여전히 '사무실을 3일간 폐쇄함. 동참할 분들은 추후 전화연락 하겠음. 종교생활사 부사장 백 X월X일'이라고 쓰인 종이쪽이 붙어 있었고, 자물쇠는 굳게 버티고 있었다. 또한 거리에는 안개가 옅게 끼어 있었고 건너편 예식장 강당에선 아침체조가 진행 중이었다. 변한 게 있다면 청소부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뿐이었다.

"커피나 합시다."

철민의 얼굴엔 상처가 나 있었다. 아마도 어제 과음한 탓일 것이었다. 다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철민이 다시 말했다.

"사표가 약점이 될 것 같아요."

"사장의 술수란 말이죠."

"그거야. 뭐, 사장이든 부사장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사표를 낸 그 자쳅니다."

"함정 같다는 거죠."

철민 역시 어제 일어났던 일들을 그의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철민은 언제나처럼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었다.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아침소설] 고해 <11> - 정찬주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