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은 다방 아가씨들한테까지도 퍼져 있었다. 사무실로 차 배달을 자주 온 미스 김이 물어왔다.
"사무실 정말 문 닫을 거예요?"
"청소하는 분이 막 욕을 하더라구요. 월급 떼먹고 문 잠가 버렸다구요."
"소식 빠르군. 미스 김."
"그럼 아저씨들은 어찌되는 거예요?"
"싸우겠어."
미스 김의 악의 없는 물음에 철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스 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스 김이 자리를 떠나자 그때서야 철민은 씁쓸한 웃음을 띠었다.
"사장 집 전화번호가 바뀌었더군. 한바탕 해주려고 했는데."
"김형, 정말 그 자들과 싸울 작정이요? 여차하면."
"너무 억울하잖소?"
철민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다시 박 주간한테 전화나 해봅시다."
동호는 전화박스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바로 박 주간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박주간의 말투는 어제 아침보다 더 기어드는 목소리로 약간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장 기자."
"미안하긴요. 어디 주간님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이야……."
"네?"
"그 부사장이라는 작자가 끝까지 사람 웃기네. 글쎄."
동호는 송수화기를 귀에 더 바짝 붙였다.
"어제 사장을 만났는데 말이지. 사장과 말대가리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야. 뭐, 의견 충돌이라기보다는 말대가리가 고집을 피우는 거지. 모든 직원들을 자기 손으로 새로 뽑겠다는 거야."
"그, 그래서요."
"사장도 뭐, 당한 거지. 말대가리한테."
동호는 송수화기를 놓고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간밤 꿈자리에서 맛보았던 절망감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목구멍이 컥컥 막혀 왔다.
철민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얘깁니까?"
"김형 말이 맞아요. 함정에 걸려든 거요."
철민은 더 묻지를 못했다.
부사장은 용의주도하게 사장으로부터 동호와 철민의 사직서를 인계받아 이제 수리하려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결국 사장도 이용당한 셈이었다.
동호는 문득 그 미친 사람이 생각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 건물 옥상에 자주 나타나던 청년이었다. 그 날도 그 청년은 수위의 제지를 뿌리치며 결사적으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청년의 요구는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옥상에서 하루 종일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낄낄대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 지상의 고해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는지도 몰랐다.
"이 놈을 좀 붙잡아 줘요!"
"난 올라가고야 말겠소!"
수위가 그 청년을 이해할 리 없었다.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고서 그를 끌어내리곤 했던 것이다.
동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느닷없는 동작에 철민이 놀랐다. 동호는 눈을 번뜩거리고 있었다. 철민은 그러한 번뜩거림 속에서 살의(殺意) 같은 것을 느꼈다.
동호는 다방을 나와 잠시 망설였다. 어디선가 싸늘한 바람이 휘익,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멎자 동호는 천천히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는 이 도회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K공원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순간 동호는 옥상에 자주 나타나 소동을 부렸던 그 청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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