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패션잉글리쉬] 머리가 아닌 자신감을 끌어 올린 슬릭백!

신조어는 젊은 세대의 직관적인 감각과 말투가 반영되어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표현보다 짧고 임팩트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욕구가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 젊은이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Slay!"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는 우리말의 '씹어 먹었어, 쩔어, 찢어 놨네'처럼 멋있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다소 강도 높은 감탄사다.

이처럼 언어가 시대의 감각을 반영하듯, 헤어 스타일을 표현하는 단어 역시 단순한 외모 묘사를 넘어 문화와 트렌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영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식 영어이거나, 영어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표현들이 생겨나 혼란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올빽(all back)은 사실 일본어 표현 '오루백쿠(オールバック)'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어권에서 정식으로 통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헤어 스타일의 명칭은 때로 그 스타일을 처음 유행시킨 인물의 이름에서 따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이유 단발'이 있듯이, 1920년대 미국에서는 댄서인 '캐슬 밥(Castle Bob)'이 유행시킨 단발머리를 지금도 'Bob'이라는 부른다. 중단발 스타일은 Long + Bob의 합성어로 'Lob(로브)'라고 한다. 이는 1989년 MBC 드라마 '행복한 여자'에서 배우 문용민이 연기한 '호섭이'의 바가지 머리가 깊은 인상을 남겨 아직도 호섭이 머리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고가의 가방으로 유명한 버킨백(Birkin Bag)은 가수이자 배우였던 제인 버킨(Jane Birkin)에서 따온 것이다. 그녀의 내추럴한 앞머리 스타일 역시 인기를 끌며, '버킨뱅(Birkin Bang)'이라는 앞머리 스타일 명칭으로 이어지며 그녀의 이름은 가방과 헤어스타일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니와 이효리가 보여준 슬릭백(Slicked-back) 스타일이 화제다. 이 표현은 정식 영어단어이며, 머리를 매끈하게(slick) 뒤로(back) 넘긴다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를 업두(Updo) 또는 번(Bun)이라고 불리지만, '슬릭백'처럼 보다 직관적이고 신선한 명칭에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는 스타일에 이름뿐 아니라 감각까지 담아내려는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인 듯 하다.

슬릭백 머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포마드(Pomade)'다. 이 단어는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 'pomum(사과)'에서 유래되었으며 프랑스어인 'pomade'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예전에는 사과를 으깬 오일을 연고로 사용한 데서 시작됐으며, 이후 기름 성분의 헤어 제품 전반을 일컫는 일반 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올린 슬릭백은 단순히 머리를 넘긴 게 아니라, 자신감을 끌어올려 그 당당함이 slay한 스타일을 완성한다.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