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패션잉글리쉬] K팝 데몬 몬스터, 무대 위 전통 판타지

넷플릭스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공동 제작한 뮤지컬 판타지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은은하게 녹여낸 시각적 스토리텔링으로 한국적 정서를 세련되게 구현해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꾸준한 화제성과 글로벌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계 감독 메기 강(Maggie Kang)은 자신이 어린 시절 경험하고 기억해온 한국의 정서를 작품 전반에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이로써 영화는 한국 팬은 물론, 전 세계 K‑팝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200 차트 3위에 올랐고, 특히 Saja Boys의 'Your Idol'은 미국 스포티파이 K‑팝 역사상 최고 순위(2위)를 기록하며 가상의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음악 시장을 뒤흔들었다. '가자(gaja)'와 한국어 대사, 팝 차트를 달리고 있는 사운드 트랙 역시 많은 한국어가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K‑팝 스타일의 패션을 전투복처럼 풀어낸 설정이다. 반짝이는 재킷에 암가드(arm guard), 투명 PVC 소재 등은 이들이 단지 아이돌이 아니라 예술가이자 전사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다. 각 캐릭터의 성격과 역할은 색채로도 정교하게 표현되었는데, 루미는 핑크와 블랙 투톤, 조이는 쿨톤 블루, 리더 미라는 블랙과 골드의 조합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스트리트 웨어(street wear), 걸그룹 무대 의상, 그리고 리본과 한복의 전통 문양이 조화를 이루며, 'K‑팝×한국 전통' 전투복이라는 독보적인 비주얼이 완성되었다. 스트리트 웨어는 거리에서 시작된 개성과 자유의 옷으로 누구도 규칙을 정하지 않는 자기표현의 패션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특히 저승사자 이미지의 한복과 검은 갓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검은 갓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암시하며 어둠과 냉철함의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 후반에는 내면의 변화를 드러내는 상징물로 갓을 벗는 장면이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참고로 이 전통 갓(Gat)은 패션계에서도 주목받는 소재다. 2020년 런던 컬렉션에서는 디자이너 에드워드 크러치리(Edward Crutchley)가 말총 갓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모든 모델에게 투명 갓을 씌우고 런웨이를 장악해 화제를 모은 봐 있다.

헤어 스타일에 있어서는 루미의 긴 댕기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한국 전통 여아의 순수함을 상징하며, 가족의 품과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정서적 장치로 기능한다.

초반부에 세 명이 입은 바시티 재킷(레터맨 재킷)은 1860년대 미국 대학 문화에서 시작된 상징물로, K‑팝 아이돌의 글로벌성과 미국 학원물 감성을 적절히 결합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한국식 대중목욕탕 등장은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이곳은 가면 없이 모두 같은 인간이 되는 공간, 즉 진실과 해탈의 장소로 묘사되었으며 루미가 전투 중 탕 속에서 몬스터와 마주치는 장면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맨몸의 나와 내면의 적을 마주하는 상징적 대결로 그려졌다.

동물 중 수호신처럼 늘 함께하는 호랑이 영물과, 음식은 김치찌개·떡볶이·호떡 같은 한국 음식까지, 'K‑Pop Demon Hunters'는 K‑팝을 중심축으로 하면서도 한국인의 삶과 기억, 전통을 정교하게 콜라주한 작품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이라는 글로벌 문화 속에 한국의 전통과 정체성을 재미와 함께 담아내어, 문화적 뿌리를 잊지 않는 것이 진정한 힘임을 보여주는 메시지를 전한다. 케이팝 데몬 몬스터 세계를 향해 Gaja!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