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유지혜 기자] 독립운동사를 성역으로 다루던 시선에 균열을 내는 책이 출간됐다. 진명행 작가의 신간 '맨얼굴의 독립운동사'(양문)는 영웅 서사를 넘어 사실 위에 선 역사를 강조하며, 독립운동사의 낯선 이면을 파헤친다. 저자는 “역사는 감동의 드라마가 아니라 사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진다.
이 책의 출발점은 2000년대 초 학생운동권과의 논쟁에서 비롯됐다. 당시 일부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친일 세력이 세운 나라’로, 북한을 ‘항일 빨치산 전통의 정통 국가’로 인식했다. 진 작가는 이런 인식과 마주하며 “역사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꼈고, 이후 수년간 자료를 모으며 독립운동사의 서사를 다시 짚어왔다. 2021년 펴낸 '조선 레지스탕스의 두 얼굴'이 그 첫 성과였다면, 이번 책은 문제의식을 더욱 확장한 후속 작업이다.
책은 3·1운동을 시작으로 통념을 흔드는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는 3·1운동을 단일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보지 않고,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이 응축된 복합적 사건으로 읽는다.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집회에는 세금과 토지 문제, 생활의 불만, 외교적 유언비어가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도 기존의 ‘옥중 순국’ 서술을 재검토하며, 신화적 인물 만들기 과정에서 사실이 왜곡된 측면을 지적한다. 이는 개인을 폄훼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영웅화하는 과정에서 배제된 사실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외국인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낯설다. 헐버트와 베델은 한국에서 애국자로 기려졌지만, 저자는 그들의 활동이 제국주의 질서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분명 헌신은 있었지만, 곧장 ‘애국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순화된 평가라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의 그림자를 비춘다. 고종의 비자금 출금 과정과 어새 위조 의혹, 무장 독립군 내부의 갈등, 범죄 행각,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낱낱이 드러난다.
특히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공산주의 활동과 무장 독립운동 약화의 책임을 지적하며, 단순히 영웅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온전한 역사 이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진명행 작가는 “도덕적 흠결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할지 묻고 싶었다”고 밝힌다. 독립운동사는 숭고한 기억으로 자리 잡아 있어 다른 목소리를 내면 곧장 비판이 따르지만, 저자는 연구자의 책무는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독자에게 쉽지 않은 책일 수 있다. 그러나 영웅 만들기에 가려진 진실을 일깨우며, 역사 교육과 사회적 기억 방식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영웅 신화의 감동 너머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결국 사실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늘의 역사 논쟁 속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수원=유지혜 기자(yoojihy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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