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한국 여자 계주는 오랫동안 세계 최강으로 불렸다가, 예상치 못한 실격, 코너 충돌, 세대교체와 같은 원인이 한동안 금메달의 발목을 잡아 왔었다. 하지만 이번 2026년 밀라노 동계 올림픽 여자 5,000m 계주의 금메달은 선수들의 그림 같은 팀워크가 역전의 드라마를 펼치며 2018년 평창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왕좌 탈환(comeback victory)’을 일궈냈다. 김길리, 김민정, 심석희를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의 환상적인 호흡과, 특히 김길리 선수의 역전 장면은 이번 대회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된다. 완벽한 릴레이 푸시(relay push)의 팀원 밀어주기, 얼음 위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엣지 컨트롤(edge control)등 그 짧은 순간의 추월은 기술을 넘은 예술과 같은 명장면이었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김길리가 19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여자 계주 3000m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역전우승을 만들어낸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ace6208bf62ce3.jpg)
계주는 개인의 속도가 아니라 신뢰의 스포츠다. 손끝에서 전달되는 힘, 호흡이 맞는 타이밍, 그리고 서로를 믿고 맡기는 순간들이 모여 금메달이 탄생되었다. 라틴어인 unus(하나)와 forma(형태)에서 시작된 유니폼(uniform)은 ‘같은 모습’을 뜻하며 개인의 개성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팀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복장이다.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의 유니폼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우선 기능적인 면을 살펴보자. 스킨슈트(skin suit)라고 불리며 말 그대로 두 번째 피부(second skin)처럼 몸에 밀착되는 패브릭으로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한다. 특히 코너에서는 몸을 깊게 기울일 때 발생하는 마찰을 줄이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허벅지와 팔에 들어간 압박 패널(compression panels)은 근육의 흔들림을 줄여 순간적인 추진력을 유지하게 돕는다. 계주에서 이어지는 밀어주기 장면은 단순한 터치가 아니라 속도를 잃지 않는 과학적인 전달이며 그 장면이 더욱 완벽하게 보였던 이유 역시 유니폼의 설계 덕분이다.
디자인을 살펴보자면, 용맹함과 기백을 상징하는 호랑이 문양의 헬멧은 빙판 위에서 상대를 압도하겠다는 선수들의 투지를 보여 주는 듯 했다. 유니폼 전체에 화이트, 블랙, 레드, 네이비의 태극기 색상을 사용하여 하얀 빙판 위에서의 우리 선수들의 가시성을 높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역동적인 사선과 비대칭(asymmetry)는 날렵하고 방향성이 뚜렷해 보여 속도감 있는 이미지를 연출한다.
기능적인 면을 다시 보자면, 거싯(gusset)이라는 용어는 유니폼의 활동성을 높이거나 찢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겨드랑이나 바지 가랑이(Crotch) 부분에 덧대는 다이아몬드형 여분 천을 말한다. 스쿼트 자세처럼 푹 주저앉아야 하는 쇼트트랙 바지 패턴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입체로 된 재단 부분이다. 디자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이다. 이를 패션용어로 실루엣(silhouette)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18세기 프랑스의 재무장관인 에티엔 드 실루엣(Étienne de Silhouette)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검은 그림자 초상화에서 사람의 윤곽만 남긴 그림이 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옷을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의미하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쇼트트랙에서 가장 대표적인 실루엣은 포워드 리닝 실루엣(forward-leaning silhouette)이다. 선수들이 코너에서 몸을 과감하게 앞으로(forward) 기울이는(leaning) 자세를 말한다. 이는 단순한 자세가 아니라 무게 중심을 낮추고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마지막 추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낮게 기울어진 몸, 얼음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스케이트, 그리고 태극 문양이 흐르듯 이어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개개인의 빛나는 실루엣을 잠시 지우고 '팀'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선수들이 하얀 빙판 위에 그어 내린, 세상에서 가장 짙고 뜨거운 하나의 '실루엣(Silhouette)'이었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의 김길리가 19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여자 계주 3000m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역전우승을 만들어낸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1d33d3860ea3e4.jpg)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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