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614ec8d340559d.jpg)
구룡사 입구에 들어섰다.
치악산의 아침은 바람이 먼저다. 가슴 시린 차가운 공기가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 한다. 전날 내린 눈으로 길은 부드럽지만, 눈 밑으로 숨겨진 얼음 탓에 걸음걸이 또한 사뭇 긴장한다.
길 입구에 서 있는 '황장금표(黃腸禁標)' 표지석을 만났다. 속이 누런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하고, 금표(禁標)는 벌목을 금하는 경계선을 돌에 새겨 둔 표지석이다. 나무 한 그루가 제 목숨을 다 쓰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금표는 산의 시간을 대신 기록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조선 궁궐의 대들보가 될 소나무를 지키려 했던 까닭이 이해된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78fb292e247111.jpg)
거북바위를 지나 구룡사에 도착했다. 구룡사 자리 큰 연못[沼]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을 쫓아내고 구룡사(九龍寺)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에 거북바위의 풍수 설화가 더해져 지금의 구룡사(龜龍寺)로 불리기 시작했다.
구룡사를 둘러보고 구름다리를 건너 비로봉으로 향했다. 다리 아래 구룡소는 꽁꽁 얼었고, 얼음 위에 하얗게 눈 쌓인 연못은 깊이를 감추고 있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365c5d83f04e00.jpg)
계곡은 바위 사이를 비집고 흐르던 물이 그대로 얼어 있었다, 바위틈 사이 얼음은 투명한 피부로 떠낸 듯 멀리서도 반짝거린다. 계곡을 가득 메운 거대한 얼음은 물이 어떻게 흘러왔고, 어떻게 굽이쳤는지 물의 흐름대로 결을 바위 위로 드러냈다.
계곡을 따라 걷는다. 길이 잘 나 있어 걸음을 옮기지만, 표면이 얼어 있어 걸음은 매 순간 조심스럽다. 바위에 붙어 꽁꽁 얼어붙은 물, 그리고 얼음 틈새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흐름. 물소리는 퍼진다기보다 미끄러진다. 소리는 공간을 채우기보다, 얼음의 표면을 타고 낮게 흘러간다. 세렴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고도를 급격히 높여 갔다. 눈이 내려앉은 바위 턱과 미끄러운 계단을 밟고 오르고 또 오른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97370d0f83d64d.jpg)
사다리병창길로 접어들며 길은 표정을 바꿨다. 발밑은 눈으로 얇게 덮였고, 바위 위로 난 길은 밤새 얼어 유리처럼 미끄러웠다. 발에 힘을 싣고 걸음을 뗄 때마다 긴장과 가쁜 숨이 뒤를 따른다. 병창은 절벽을 뜻하는 강원도 영서지방 방언이다. 능선을 따라 바위가 놓인 모양이 사다리처럼 겹겹이 이어져 사다리병창이라 한다. 경사는 곧고 사정없다. 눈을 아래로 두면 보기에도 아찔하다. 비로봉 오르는 길 중 가장 힘든 길이다.
아찔한 구간은 발뿐 아니라 마음마저 긴장케 했다. 장갑을 꼈으나 난간과 밧줄을 붙잡을 때마다 차가움이 길게 올라온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계단은 더 급하다.
잠시 쉼터에서 먼 산을 바라본다. 산은 달리기라도 하듯 연달아 이어지고 첩첩이 겹쳐있다. ‘아!’하며 지금까지의 힘듦을 다 잊고 감탄사를 토해냈다. 두보가 태산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은 모습을 보리라’ 외친 것도 이 기분이리라.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절벽 아래에서 상승기류를 타듯 새 한 마리가 올라와, 바람에 유영하듯 한참을 내 눈앞에 떠 있다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c28905f07afc7c.jpg)
비로봉 정상에 닿았다. 이 산의 '비로'는 여느 산에서 흔히 만나는 불가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비로(毘盧)와는 달리, 치악산에서는 비로봉을 대개 '飛蘆峰(비로봉)'으로 적는다. 한자가 다르다. 이름 하나가 산의 성정을 먼저 드러낸 듯하다. 실제로 이곳까지의 길은 곧고 급했으며, 몸은 자꾸 땅에 붙잡히는데, 마음은 자꾸 위로 끌려 올라가려 했다.
'비(飛)'자가 붙은 까닭을 나는, 산세가 치고 솟아 날아오르는 듯한 기세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다만 '비로봉'이라는 이름 자체가 여러 산의 비로(毘盧)와 연결되어 불리기도 하니, 치악산의 표기와 의미가 어디까지 맞닿아 있는지는 단정하지 않고 겹쳐 읽어 두고 싶다.
정상석 앞에 서자 바람이 방향을 잃는다. 사방에서 한꺼번에 밀려와 몸의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장갑 속 손끝은 점점 뻣뻣해지고 감각이 멀어져간다. 겨울의 바람은 온도를 빼앗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여유까지도 훑어간다.
아래 절벽 쪽에서 오르다 봤던 새가 다시 나타났다. 거센 바람에 한 번, 두 번 몸이 흔들리더니 이내 하늘로 높이 오른다. 새는 바람에 맞서지 않았다. 바람의 결을 읽고, 그 결 위에 몸을 얹어 미끄러지듯 떠오른 것이다. 잠시 제자리에 머무는 듯 보였으나, 이내 저 멀리 사라졌다.
오래 머물러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싶지만, 오늘의 정상은 주변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몸까지 얼려버리는 치악산의 추위는 정상에서 오래 머물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상석과 돌탑에 기원을 얹고는 하산을 시작한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507b82e0f7b22f.jpg)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368ca68d60b183.jpg)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것보다는 덜 험해 한결 수월하다. 그러나, 오를 때는 힘으로 버틸 수 있지만, 내려갈 때는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넘어지니 보폭을 더 줄인다. 인생 또한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조심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다. 뒤돌아보니 비로봉의 모습이 마치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비로봉을 시루봉이라고도 부른다. 오를 땐 경사가 급해 날아오르는 모양을 떠올렸는데, 내려오며 보니 둥근 그릇이 먼저 보인다. 산은 한 가지 얼굴만 가진 게 아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와 바라보는 눈의 방향에 따라 달라질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쥐너미재를 지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순하고 아름답다. 구룡사로 오를 때 먼발치로 보이던 비로봉 상고대는, 정상에 가까이 다가섰을 땐 미미한 햇볕에도 흔적이 사라져 갔지만 능선 주변에는 여전히 남아 걷는 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길 따라 이어진 나뭇가지 터널에 핀 설화는 한나절 피었다가 사라지는데 내 앞에서 마지막을 장식한다. 만개한 설화도 아름답지만, 한나절 만에 증발하듯 끝을 보이는 상고대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c3d0a8e11fef79.jpg)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747f96fe2a903b.jpg)
황골 삼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길이 다시 가파르다. 눈 아래 숨은 돌들이 발목을 미끄럽게 하고, 찬 바람은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며 몸을 사정없이 밀어댄다. 장갑 속 손끝은 시려서 손을 비비며 조심스레 고도를 낮춘다.
입석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지 않은 절이지만 계곡의 길목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의연하다. 입석사 오른쪽 위로 입석대와 마애불이 있다. 입석사 뒤로 철계단을 밟고 입석대에 올랐다. 태곳적부터 그 자리에 서서 눈과 바람과 비를 맞아 온 듯, 황골을 내려다보며 우람하게 버티는 모습에 압도되어 한참을 바라본다.
입석대와 마주하고 서 있는 마애불 앞에 섰다. 절벽 암석에 조각되어 내 몸보다 작은 부처님 모습은 천년 세월의 더께에 마모되어 흐릿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선명해진다. 수많은 기도와 바람, 시선이 쌓여 저런 표정이 되었을까.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를 띤 마애불 앞에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았다. 마애불 앞에 놓인 둥글게 닳아 반질반질한 돌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았으리라. 돌 위에 손을 대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마음은 오히려 따뜻해진다. 염화시중의 미소를 봐서 그런가.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83379daaeeba05.jpg)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498fabe747e29c.jpg)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8a6449b9217e39.jpg)
황골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아침의 구룡사에서 오를 땐 '버티면 된다' 하고 오만했으나, 내려올 땐 겸손이 몸을 살린다는 것을 배웠다. 시루처럼 둥근 봉우리와 날아오르는 듯한 능선 사이에서 치악산은 오름과 머무름을 함께 말해준다. 정상석 곁 돌무더기에 얹은 작은 돌 하나는 대단한 소원이 아니라, 무사히 돌아가 다시 걷게 해 달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입석대와 마애불 앞에 서서 손을 모으며 느꼈다. 기원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에 닳아버린 돌처럼 반복된 간절한 마음이라는 것을. 얼음 틈새로 미끄러지는 물소리처럼 오늘의 걸음은 소란스레 퍼지지 않고 내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가지끝에 남아있는 설화(상고대) [사진=박성기 ]](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