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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4> 발끝으로 읽는 서울⋯해방촌을 걷다(상)


고단한 세월이 쌓여 동네가 된 삶의 현장

남산 자락의 비탈에 기대어 선 해방촌은 서울 안에서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동네다. 좁은 골목에 오래된 집들과 새로 들어선 감각적인 공간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해방 이후의 삶과 전쟁의 상처, 그리고 최근의 신선한 숨결까지 겹겹이 스며 있다. 해방촌을 걷는 일은 결국 한 동네를 둘러보는 일이 아니라, 산비탈에 새겨진 시간을 발끝으로 읽는 일이다.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완만한 비탈의 골목길을 따라가면, 무심한 듯 이어지는 좁은 계단과 벽 사이에 비집고 들어선 통로가 걷는 이의 보폭을 천천히 늦춘다. 서울은 현대식 고층 건물로 쉼 없이 제 얼굴을 바꾸어 왔지만, 이곳 해방촌은 시간을 한꺼번에 밀어내지 않고 조금씩 나누어 가지며 변해왔다.

반세기를 넘는 세월을 견딘 집들과 그 시간을 같이한 골목길, 그리고 최근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 나란히 기대어 선 풍경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젊은 감각이 스며들고 옛 건물들이 새 숨을 얻으면서도, 이 동네는 끝내 제 속의 오래된 결을 놓지 않는다. 해방촌은 오래된 시간 위에 새로운 감각을 덧입으며 천천히 또 다른 얼굴이 되어 간다.

해방이 남긴 이름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신흥시장옆 거리풍경. [사진=박성기]

용산2가동과 후암동 일대인 해방촌은 행정구역상의 이름은 아니지만, 해방 이후의 삶이 켜켜이 내려앉으며 자연스레 얻은 이름이다. 해방 직후 외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남산 비탈에 붙들고 삶의 터를 일구면서 마을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의 골목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몸을 기댄 자리이자, 고단한 세월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동네가 된 삶의 현장이다. 골목길은 말이 없지만, 그 길에 발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사연은 골목 굽이마다 면면히 스며 있다. 해방촌이라는 이름에는 시대의 상처와 고난의 시간을 버티고 살아온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이 함께 배어 있다.

골목에서 만나는 오래된 흔적

남영동 숙대입구에서 삼광초등학교를 지나 후암동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담장에 그려진 낯익은 얼굴 하나가 발길을 붙든다. 노홍철이다. 이곳이 홍철책빵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의 기질과 취향이 공간 안에 서려 있다. 잠시 둘러보고 다시 골목으로 나선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걷다 보면, 후암동이 일제강점기에 삼판통이라 불리며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고, 지금도 곳곳에 문화주택의 흔적이 현재의 풍경 위에 겹친다. 낡았으나 사연이 깊어 보이는 동자아파트를 지나며 생각한다. 이 동네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홍철책빵 [사진=박성기]

용산고등학교 방향으로 골목을 걷다 보면 범상치 않은 집 하나와 마주한다. 지월장이다. 일제강점기 근대식 고급주택으로,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이었다. 지금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다. 이런 집을 만나는 일은 길 위에서 오래된 책장을 한 장 조용히 넘기는 일과 닮아있다.

용산고등학교를 지나 108하늘계단 앞에 선다. 108개 돌계단은 일제강점기 경성호국신사로 오르던 길이었다. 돌계단 사이에 두고 경사형 승강기가 천천히 오르내린다. 지금은 주민과 방문객의 수고를 덜어주는 생활의 길이 되었지만, 식민지 시절의 그늘이 아직도 스며 있는 듯하다.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108계단 승강기. [사진=박성기]

108하늘계단을 지나 신흥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면 숭실학교 자리가 나온다. 평양에서 시작된 숭실학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스스로 문을 닫았던 학교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가 경성호국신사 터에 다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이 동네가 품은 역사의 아이러니와 상처를 드러낸다.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숭실학교가 있던 곳. 지금은 해방타워다. [사진=박성기]

신흥시장,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

신흥시장으로 들어선다. 1953년에 생겨나 70년 넘는 세월을 품은 시장이다. 해방촌시장으로 불리던 처음에는 편물공장과 이북식 먹거리, 생필품 파는 곳으로 활기를 얻었다고 한다. 지금의 신흥시장은 옛 건물을 쇠기둥으로 단단히 받치고, 오래된 가게들 사이로 젊은 감각의 카페와 점방들이 들어서 있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같이 품으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해방촌이란 결국 이런 곳이다. 오래된 삶의 터전 위에 새로운 감각이 내려앉고, 지난 시간 위로 현재의 시간이 한자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곳. 그래서 이곳을 걷는 것은 단지 동네를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일이다.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신흥시장. 지금은 리모델링하여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사진=박성기]

신흥시장을 나서면 해방촌 오거리에 이른다. 오거리에서 신흥시장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은 해방교회다. 좁은 골목으로 차가 오가고 사람도 많아 발걸음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진다. 해방교회를 지나면 해방촌성당이 있고, 가까운 곳에는 서울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가 남아 있다. 군인아파트와 옛 해병대사령부 터, 용산기지 담장이 한곳에 맞닿아 있는 풍경 또한 해방촌의 독특한 역사와 분위기를 이루는 한 요소다.

해방촌 108계단의 벽화. [사진=박성기]
해방촌 해방교회. [사진=박성기]

<4> 발끝으로 읽는 서울⋯해방촌을 걷다(하)로 이어집니다.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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