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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0년 외길, 대한민국 어린이박물관의 산증인! 김진희 국립어린이박물관협회 회장


‘놀이와 학습’ 그 경계에 관한 철학을 말하다.

[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박물관은 정답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아동 개인에게 호기심을 주고 스스로 탐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어린이박물관’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3년, 삼성어린이박물관 개관 멤버로 시작해 경기도어린이박물관과 세종 국립어린이박물관을 거쳐 제3대 한국어린이박물관협회장으로 선출되기까지, 김진희 협회장의 30년은 곧 한국 어린이박물관의 역사다. 저출산 시대에 역설적으로 어린이박물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하는 그녀를 만나,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철학을 들어보았다.

김진희 국립어린이박물관협회장 [사진=국립어린이박물관협회]

Q. 1993년부터 현재까지 오직 ‘어린이박물관’이라는 한 분야에만 매진해 오셨습니다.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제가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미술교육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진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어린이박물관’이라는 단어를 보게 됐죠. 당시 우리나라에는 학교, 유치원, 집, 그리고 야외 놀이터가 전부였어요. 정제된 학교 교육과 집 사이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완충 지대가 없었거든요. 마침 삼성문화재단에서 국내 최초로 어린이박물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습니다. 면접관도 저도 어린이박물관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솔직하게 대답했던 것이 합격의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제 인생의 고생문이자 가장 행복한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Q. 민간(삼성)에서 시작해 공립(경기)을 거쳐 국립(세종)까지, 설립 주체가 다른 세 곳을 모두 경험하셨는데요. 운영 철학에 변화가 있었나요?

환경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습니다. 삼성에서는 1,200평 규모로 시작해 연간 35만 명이 방문하면서 국내 최초로 ‘인원 제한’ 운영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습니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3,200평 규모의 독립 건물로 연간 65만 명이 찾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세종 국립어린이박물관은 개관식에 대통령을 모시고 개관할 정도로 국가적 상징성이 매우 컸습니다.

민간 박물관에서는 '새로움과 혁신'을, 공립 박물관에서는 '지역사회의 연결'을, 국립 박물관에서는 '국가적 표준과 공공성'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설립 주체가 다르더라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저에게 박물관은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독립된 주체'임을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이런 사고들은 제가 유아교육뿐 아니라 미술교육을 전공해서 좀 더 창의적인 어린이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서 <어린이 박물관 A to Z > [사진=국립어린이박물관협회]

Q. 협회장님께서는 '놀이'를 교육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많은 부모님이 놀러 가서 무엇을 배워왔니?라고 묻지만, 저는 아이들이 박물관에서 '잘 놀았다'는 충만함을 느끼길 바랍니다. 놀이는 아이들이 세상을 탐색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방식입니다. 스스로 만지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박물관이 제공해야 할 '비형식 학습(Informal Learning)'의 핵심입니다. 지식을 주입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을 만드는 환경'이 훨씬 중요하죠.

어린이박물관은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발달 단계와 흥미에 따라 자유롭게 찾아가서 노는 곳입니다. 바로 그 '자기주도성'이야말로 어린이박물관이 줄 수 있는 가장 고유한 가치입니다.

Q. 최근 미디어 아트나 VR/AR 전시가 유행하는데, 오히려 '아날로그적 실물 체험'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동두천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에 있을 때 시행착오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를 주제로 한 미디어 인터랙티브 전시를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아세요? 화면을 터치하는 대신, 주변에 있던 헝겊 물고기 장난감을 가져와 미디어 바다 위에 올려놓고 놀더라고요. 대형 공룡 미디어를 띄워놔도 아이들은 낮은 테이블 위에 놓인 공룡 모형을 더 좋아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일수록, 손으로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아날로그적 실물 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술이 멋져 보여 무작정 도입하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입니다. 본질은 언제나 아이들의 '발달에 맞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어린이박물관협회 회원들과 함께 [사진=한국어린이박물관협회]

Q. 실제 현장에서 아이들을 관찰하며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무엇입니까?

어른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매번 깨닫습니다. 기획자가 의도한 동선이나 사용법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법을 창조해내곤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능한 존재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공부이자 기쁨입니다. 제가 30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도, 현장에서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부가적인 기쁨 덕분이었습니다.

Q. 박물관이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이들이 다시 방문하려면 부모님이 피곤하지 않아야 합니다. (웃음) 그래서 전시실 주변에 부모님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박물관이 부모가 아이를 '관찰'하는 장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의 잠재력이나 몰입하는 모습을 박물관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부모 또한 아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과거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서 '조부모'를 주제로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전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결국 박물관은 온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입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어린이박물관 핸즈온 회장 간담회 [사진=한국어린이박물관협회]

Q. 제3대 한국어린이박물관협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어린이박물관 학예사들의 역량 강화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박물관은 일반 박물관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동 발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현재 현장에는 어린이 전공자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학예사들이 아동 발달에 대한 지식 없이 전시를 기획하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협회 차원에서 종사자 역량 교육을 국립어린이박물관과 함께 시작했으며, 앞으로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Q.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와 글로벌 교류에 대한 비전도 궁금합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공공기관은 그 격차를 줄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협회 차원에서는 수도권 중심의 모임을 벗어나 동두천, 전곡, 광주 등 지역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며 발로 뛰고 있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느껴야 제대로 된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의 어린이박물관 콘텐츠는 이제 세계적인 수준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유럽 어린이박물관협회(Hands On! Europe)와 교류를 시작했으며, 장기적으로는 중단된 '아시아 어린이박물관 컨퍼런스'를 부활시켜 K-어린이박물관의 위상을 높이고자 합니다.

Q. 저출산 시대에 어린이 문화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아이 한 명이 귀해진 만큼, 그 아이가 누리는 문화적 권리는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신체 놀이’입니다. 미세먼지 걱정 없이 안전한 실내에서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 미래를 살아갈 창의력,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이 자라납니다. 정부는 어린이박물관을 단순히 ‘보육의 연장선’ 또는 역사박물관의 한 코너로 보지 말고, 미래 인재를 키우는 ‘문화인프라’로 인식하여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한국 어린이박물관 학예사 역량 강화 연수 [사진=한국어린이박물관협회]

Q. 마지막으로, 협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어른’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아이들의 호기심을 꺾지 않는 어른입니다. 아이들이 질문할 때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질문하며, 아동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알려주며,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내가 어릴 적 박물관에서 보냈던 시간이 내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과거 제 전시를 보고 자란 아이가 커서 어린이박물관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제 30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꺾지 않고 영감을 주는 박물관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김진희 협회장은 변함없이 ‘아이들’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묵묵히 걸어왔다. 전시와 교육, 현장과 정책을 오가며 쌓아온 그녀의 시간은 단순한 경력의 축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온 과정이자, 한국 어린이박물관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의 경험을 설계해온 그녀의 노력은 이제 개인의 영역을 넘어 한국 어린이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공적 자산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가 꿈꾸는 어린이들의 미래가 하루라도 더 빨리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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