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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의 패션잉글리쉬] 젠슨 황의 가죽 재킷이 말하는 것


[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지난 5일 저녁, 서울 홍대입구의 삼겹살집 '형님, 저요' 앞은 인산인해였다. BTS 콘서트가 아니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이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쏘(삼겹살+소주) 회동'을 가진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깐부치킨 회동'에 이은 두 번째 K-회식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한국 재계 총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채색의 편안한 차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젠슨 황은 역시 검은색 가죽 재킷(leather jacket) 차림이었다. 이 남자는 왜 한여름에도, 삼겹살집에서도, 기조연설 무대에서도 가죽 재킷을 벗지 않는 걸까?

leather(가죽)는 고대 영어 lether에서 온 말로, 게르만어 뿌리를 가진 아주 오래된 단어다. 인류가 옷보다 먼저 입은 것이 가죽이니, 어쩌면 패션의 시조새 같은 단어인 셈이다. jacket(재킷)의 어원은 프랑스어 jaquette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중세 프랑스 농민들이 입던 짧은 겉옷 jaque의 애칭이다. 그리고 jaque는 당시 농부들에게 흔하디흔한 이름인 '자크(Jacques)'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재킷은 원래 '철수네 작업복'쯤 되는, 지극히 서민적인 옷이었다. 귀족의 옷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옷. 젠슨 황이 "나는 매일 일하는 엔지니어"라는 메시지를 입고 다니는 셈이니, 어원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가죽 재킷에도 족보가 있다. 우선 Bomber Jacket(보머 재킷)은 bomber(폭격기)에서 온 말로, 1차 세계대전 당시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항공기 조종석에서 조종사들이 혹한을 견디기 위해 입던 비행 재킷(flight jacket)에서 유래했다. 말하자면 하늘 위 생존의 옷이었다.

가죽 재킷을 대표하는 Biker Jacket(바이커 재킷)은 1928년 미국 쇼트(Schott) 형제가 만든 '퍼펙토(Perfecto)'가 그 원조다. 오토바이 라이더를 위한 옷이었지만, 1953년 영화 '위험한 질주(The Wild One)'에서 말론 브란도가 입은 뒤 반항(rebellion)의 상징이 되었고, 한때 미국 학교들이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젠슨 황의 재킷은 이 두 DNA를 모두 담고 있다. 전쟁터 같은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생존, 그리고 CPU 중심의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 참고로 그가 즐겨 입는 톰 포드(Tom Ford) 가죽 재킷은 송아지 가죽에 도마뱀 무늬를 엠보싱한 제품으로, 가격이 약 1,200만 원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에 위치한 네이버 1784 사옥에 방문해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삼겹살 회동 때 한국 총수들의 패션은 모두 무채색(achromatic colors)의 수수한 차림이었다. 로고도, 화려한 색도 없었다. 이것이 요즘 글로벌 부유층의 코드인 quiet luxury(조용한 럭셔리), 혹은 stealth wealth(스텔스 웰스, 은밀한 부)다. stealth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의 그 스텔스다. "진짜 부자는 부를 광고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옷차림에 담긴 셈이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는 사실 옷이 아니라 행동에 있었다. 막내 구광모 회장은 천장에 매달린 휴지를 뽑아 테이블을 세팅했고, 맏형 최태원 회장은 맥주를 따랐으며, 이해진 의장은 젠슨 황에게 쌈 싸는 법을 알려준 뒤 계산까지 했다.

그날 가장 강력한 드레스 코드는 가죽 재킷이 아니라 편안함이었다. 진짜 권력자들은 과시하지 않는다. 그냥 휴지를 뽑고, 맥주를 따르고, 쌈을 싸며, 자연스럽게 판을 만든다.

홍대 삼겹살집에 나타난 2,400조 원의 사나이. 그의 패션은 때로 말보다 정확했다. 젠슨 황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AI 시대의 권력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한국식 회식 테이블 위에 조용히 걸쳐 놓고 간 것 같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엔비디아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조수진영어연구소' 조수진 소장 [사진=조수진영어연구소]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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