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②


트빌리시, 천오백 년의 힙(Hip)한 시간을 걷다 2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① 편에서 이어집니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성녀 니노의 십자가 앞에서

시오니 대성당(Sioni Cathedral)에 들어선다. 성경에 나오는 시온산에서 이름을 따온 성당으로, 이곳에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 바깥의 소란과 달리 성당 안은 고요하고 성스럽다. 수많은 침략과 시련을 견뎌 온 벽화와 성화에는 오랜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시오니 대성당(Sioni Cathedral). 한참 보수중이다. [사진=박성기 작가]

나는 조용히 십자성호를 그었다. 교파는 달라도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사히 이곳까지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시오니 대성당에서 초를 놓는 여인. [사진=박성기 작가]

동화 속 시계탑의 정오

성당을 나와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으로 향한다. 멀리서도 금세 눈에 들어오는 시계탑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탑에 반듯하지 않은 벽돌과 알록달록한 타일, 크고 작은 시계 장식이 어우러져 오래된 장난감처럼 엉뚱하면서도 정겹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정오가 가까워지자 시계탑 앞에는 여행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잡으려 걸음을 재촉하고, 저마다 탑 위를 올려다보며 그 순간을 기다린다.

마침내 정오가 되자 작은 문이 열리고 황금빛 천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사는 망치를 들어 종을 울리고, 맑은 종소리는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과 붉은 지붕 위로 잔잔하게 퍼져 나간다. 짧은 타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지고, 사람들은 방금 찍은 영상을 들여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몇 분 남짓한 짧은 순간이지만, 트빌리시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발길을 멈추게 되는 시간이다.

환호와 기도가 공존하는 골목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안치스하티 성당(Anchiskhati Basilica) [사진=박성기 작가]

시계탑 바로 옆에는 안치스하티 성당(Anchiskhati Basilica)이 자리하고 있다. 6세기에 세워진 트빌리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시계탑 앞의 북적임과 달리 성당은 조용하고 소박하다. 불과 몇 걸음 사이에 여행객들의 환호와 신자들의 기도가 공존한다. 그 모습에서 천오백 년의 역사를 품은 트빌리시의 깊이가 새삼 느껴진다.

오래된 도시와 오늘을 잇는 다리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평화의 다리. [사진=박성기 작가]

골목 끝을 돌아 평화의 다리(Bridge of Peace)에 선다. 길이 약 150미터의 곡선형 보행교는 천오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리케공원을 이어 준다. 유리와 철로 만든 세련된 곡선은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오지만, 오래된 도시의 풍경 속에 의외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다리 위에 서서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쿠라강을 바라본다. 트빌리시의 번영과 쇠퇴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강은 오늘도 도시를 품은 채 힘차게 흘러간다. 천오백 년의 역사와 오늘을 살아가는 조지아 사람들의 삶, 이곳을 스쳐 가는 여행자의 짧은 추억까지 모두 안고 흘러가는 듯하다.

와인 향이 번지는 샤르데니의 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 [사진=박성기 작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노을빛이 구시가지의 붉은 기와지붕과 오래된 목조 발코니를 부드럽게 물들인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메이단 광장과 샤르데니 거리(Shardeni Street)에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낮 동안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골목과 광장으로 모여든다.

좁은 돌길은 여행객과 시민들로 북적이고, 야외 테이블마다 웃음소리와 와인잔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레스토랑과 와인바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안에서 흘러나온 갓 구운 고기 냄새와 향신료 향, 오래 숙성된 와인의 향기가 골목을 채운다. 약 8천 년의 와인 역사를 지닌 나라답게 사람들의 손에는 자연스럽게 와인잔이 들려 있다.

이곳에서 와인은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술이 아니다. 식사와 대화를 이어 주고, 노래와 춤을 불러내는 일상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어릴 때부터 포도밭과 와인 저장고를 가까이하며 자란 사람들에게 와인은 삶의 기억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매개일 것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춤이 된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거리 곳곳에서는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가 이어지고, 조지아 민요와 낯선 코카서스의 선율이 밤공기를 타고 흐른다. 연주가 시작되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춘다. 누군가는 손뼉을 치고, 누군가는 와인잔을 든 채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잠시 뒤에는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정해진 무대도, 사회자도 없다.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장단을 맞추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그 흥에 합류한다.

그 모습에는 조지아 사람들이 지닌 개방적이고 즉흥적인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세 어깨를 걸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웃음과 몸짓으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여행자 역시 그 풍경 속에서는 오래도록 구경꾼으로 남기 어렵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어느새 춤의 원 안으로 이끌리고, 서툰 발걸음으로 박자를 맞추다 보면 함께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낯선 흥겨움이 거리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거리의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

천오백 년의 도시가 살아가는 법

와인과 음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조지아인들의 낙천적인 기질은 트빌리시의 밤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천오백 년의 시간을 품은 오래된 도시는 밤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더 생기를 얻는다.

역사는 박물관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오늘도 광장과 골목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트빌리시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음악과 웃음이 흐르는 밤거리에서 천천히 저물어 갔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거리를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③ 편으로 이어집니다

가브리아제 시계탑(Gabriadze Clock Tower).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②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