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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⑥


독재자의 그림자와 오랜 역사가 교차하는 도시, 고리(Gori)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⑤ 편에서 이어집니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작은 생가와 장갑 열차, 독재자의 아이러니

조지아의 중심부, 시다 카르틀리 평원에 자리한 고리에 들어서 스탈린이 태어난 생가로 향한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스탈린 석상 [사진=박성기 작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어딘가 빛이 바랜 듯한 인상을 준다. 건물들은 큼직하지만 비슷해 보이고, 거리에서도 큰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무뚝뚝해 보인다. 도시가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품고 들어온 내 마음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고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세기 세계사를 뒤흔든 스탈린(Joseph Stalin)이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안에 있는 스탈린 생가. 바깥을 보호건물로 둘러쌓았다. [사진=박성기 작가]

시내 중심의 스탈린 대로를 따라가면 넓은 광장 한가운데 한창 보수 중인 목조주택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스탈린 박물관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작고 왜소하다. 스탈린이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다.

생가 옆에는 육중한 녹색 열차 한 량이 철로 위에 놓여 있다. 스탈린이 이용했던 전용 장갑 열차다. 무게만 83톤에 이르는 이 열차를 타고, 그는 2차 세계대전의 향방과 전후 질서를 논의했던 테헤란과 얄타, 포츠담 회담을 오갔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스탈린이 타던 장갑열차 [사진=박성기 작가]

작은 생가와 육중한 녹색 열차.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흔적과 절대 권력의 흔적이 한 공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왼팔이 불편했던 가난한 소년은 훗날 이 열차를 타고 세계를 오가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박물관 주변 기념품 가게에는 지금도 스탈린의 얼굴이 쉽게 눈에 띈다. 원수 정복을 입고 근엄하게 서 있는 초상화 옆에, 손바닥만 한 펜던트 속 스탈린이 웃고 있다.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긴 독재자와,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과 더불어 소련을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지도자. 스탈린의 이 두 얼굴이 같은 진열대에서 나란히 팔리고 있다. 그 극과 극의 역사가 그의 고향에서는 그저 흔한 관광 상품이 되어 있다.

낙서 속 분노, 롬차부키 청동상의 자존심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고리 요새(Gori Fortress) 전경 [사진=박성기 작가]

스탈린 생가를 나와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고리 요새(Gori Fortress)로 자리를 옮긴다. 고리의 시가지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거리를 따라 선 건물들은 크고 우람하지만 낡았다. 오래된 도시가 지나온 세월이 건물의 벽과 창문마다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요새 앞 낙서. [사진=박성기 작가]

고리 요새를 설명한 안내판에는 누군가 붉은 페인트로 ‘Fuck Russia’라고 적어 놓았다. 스탈린은 조지아가 낳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조지아를 소련의 일부로 묶어둔 권력의 얼굴이기도 했다. 기념품 가게 진열대 위의 웃는 얼굴과 성벽에 적힌 붉은 글씨, 이 두 장면 사이에서 스탈린은 여전히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사자청년 롬차부키(Lomchabuki) [사진=박성기 작가]

요새로 오르기 전 공원에서 거대한 청동상 하나와 마주한다. 사자 등에 올라탄 젊은이가 한 손에는 긴 검을 들고, 다른 팔은 힘차게 앞으로 뻗고 있다. 사자 청년 롬차부키(Lomchabuki), 공식 명칭은 ‘승리(Victory)’다. 높이 솟은 기단 위에서 그 형상은 거침없는 힘을 뿜어낸다. 트빌리시에서 만났던 ‘조지아의 어머니상’과 ‘바흐탕 고르가살리 기마상’, 그 두 작품을 만든 조각가 엘구자 아마슈켈리(Elguja Amashukeli)의 손끝에서 나온 또 하나의 얼굴이다.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견뎌온 조지아의 역사를 알고 바라봐서일까. 내 눈에는 오랜 세월 나라를 지키려 했던 조지아인의 모습처럼 다가온다.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고리 요새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고리의 거리와 건물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

롬차부키를 지나 요새로 오른다.

고리 한가운데 솟은 언덕을 성벽이 감싸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이곳에 왜 요새가 들어섰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고, 동서로 이어지는 길과 강을 한눈에 장악할 수 있는 자리다.

고리 요새가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지만, 이 언덕에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기원전 1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주와 방어의 흔적이 확인된다. 몽골에서 러시아까지, 이 땅을 지나간 세력의 이름만큼이나 요새도 셀 수 없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지금 남은 성벽은 18세기 에레클레 2세 때의 모습이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고리요새(Gori Fortress). [사진=박성기 작가]

도로에서 요새를 왼쪽에 두고 마을 골목으로 들어선다.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언덕을 오른다. 돌 하나하나에 그 무너짐과 다시 세움의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다. 성을 차지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이 돌 위에서 맞섰을 것이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고리요새 문을 지키는 개. [사진=박성기 작가]

요새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 성문을 통과한다. 예전에는 병사들이 문을 막고 지켰을 자리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는 개 한 마리가 엎드려 여행자의 발걸음을 세운다. 옆으로 조심스럽게 지나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킨다.

정상에 올라서니 시야가 한꺼번에 열린다.

고리 시가지가 펼쳐지고, 멀리 평야 사이를 흐르던 두 강이 만나 하나의 물길을 이룬다. 그토록 많은 군대가 차지하려 했던 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지금의 풍경은 평화롭다.

요새와 교회, 그 사이를 흐르는 강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고리주바리의 성 조지 교회(Gorijvari St. George's Church [사진=박성기 작가]

강 너머 남쪽 언덕으로 시선을 돌린다.

산등성 위 고리주바리의 성 조지 교회(Gorijvari St. George's Church)가 작게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전부터 성 조지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이어온 자리다. 한쪽 언덕에는 전쟁과 권력의 역사를 품은 요새가 있고, 맞은편 언덕에는 그 오랜 믿음을 품은 교회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강물이 흐른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요새에서 바라본 고리모습. [사진=박성기 작가]

스탈린이라는 한 인간이 남긴 거대한 권력의 그림자를 보고, 이제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 땅을 지키고 견뎌온 성벽 위에 서 있다.

무심하게 흐르는 므트크바리강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므트크 바리강과 산꼭데기 작게 보이는 성 조지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요새를 내려와 므트크바리강을 따라 걷는다. 강은 넓게 고리를 품으며 유유히 흐른다. 강바닥에는 오랜 세월 물에 씻기고 굴러 둥글고 기묘한 모양이 된 돌들이 지천이다. 우리나라라면 귀한 대접을 받았을 돌들이다.

강 건너로 철길이 이어지고, 기차 한 대가 긴 기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한때는 군대가 이 길을 지났고, 또 한때는 스탈린의 장갑 열차가 이 위를 오갔을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강물 위에 저녁 빛이 내려앉는다. 므트크바리강은 그 모든 것들을 지나 보내고도, 여전히 고리를 돌아 흐른다.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⑦ 편으로 이어집니다

요새 위에서 바라본 므트크바리강과 고리시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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