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⑦


사람이 깎아낸 거대한 동굴도시, 우플리스치헤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⑥ 편에서 이어집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시간 속으로 들어서는 길

고리를 떠나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낮은 구릉과 들판이 스쳐 지나간다. 우플리스치헤가 가까워질수록 황량한 들판과 낮은 산들이 길을 에워싸기 시작한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우플리스치헤 입구의 매표소 [사진=박성기 작가]

바위를 깎아 도시를 만들고,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삶을 이어가던 곳. 오랜 세월 바람과 비를 견뎌온 그 도시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러다 메마른 바위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평범해 보이던 풍경에 조금씩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섞였다. 마치 현재의 길 끝에서 수천 년 전의 시간 속으로 들어서는 듯하다. 고리를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 마침내 우플리스치헤에 닿는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우플리스치헤의 동굴과 광장. [사진=박성기 작가]

바람과 비, 사람이 빚어낸 사암(砂岩)의 도시

전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은 맑다. 모자와 선글라스, 긴소매로 햇볕을 가린 뒤 바위산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우플리스치헤는 사암(砂岩)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동굴도시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에 깎인 바위에 사람이 계단과 길을 내고, 안쪽을 파내 방과 광장을 만들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코카서스 아가마(Caucasian agama). [사진=박성기 작가]

바위를 밟으며 올라가다가, 도마뱀 한 마리와 마주친다. 이곳에 사는 코카서스 아가마(Caucasian agama)다. 바위 위에 납작 엎드려 햇볕을 쬐고 있다. 회갈색 몸빛이 사암과 닮아 가만히 있으면 바위의 일부처럼 보인다. 인기척을 느끼고는 재빨리 바위틈으로 숨어버린다. 메마른 바위틈에도 생명이 살아간다.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다. 완만한 사암 경사면을 따라 오르자 크고 작은 동굴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부터가 사람의 손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바위에는 계단과 길이 있고, 안쪽에는 방과 좁은 통로가 있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자연의 지형을 따라 공간을 넓혀가며 도시를 이룬 자취다. 바위를 한 번, 또 한 번 쪼아냈을 옛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사람의 손과 시간이 포개져 바위산 하나가 도시가 되었다.

돌바닥에 남은 삶의 기척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동굴 안은 삶의 공간이다. [사진=박성기 작가]

여러 모양의 동굴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천장이 둥글게 남은 곳도 있고 반듯하게 다듬은 방도 있다.

한 동굴 안으로 들어서니 햇빛이 사라지고 공기가 서늘하다. 바닥에는 움푹 파인 홈이 있고 벽에는 선반처럼 다듬은 자리가 남아 있다.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만든 좁은 홈도 보인다.

돌바닥을 오가던 발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항아리를 옮기고 물건을 사고팔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는 빵을 굽고 포도를 밟아 와인을 만들며, 갓 구운 빵 냄새와 발효되는 포도의 시큼한 냄새를 좁은 통로에 흘려보냈다.

므트크바리강을 바라본 수천 년의 시선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작은 동굴들이 잇달아 있고, 동굴들 사이는 연결되어있다 [사진=박성기 작가]

동굴과 동굴 사이를 오르내리다 바위산 높은 곳에 선다. 아래로 므트크바리강(Mtkvari River)이 굽이쳐 흐르고 그 너머로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이곳에 왜 도시가 들어섰는지 알 것도 같다. 강과 들판,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외부의 접근을 살피고 도시를 지키기에도 좋은 자리였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우플리스치헤 앞을 흐르는 강과 벌판. [사진=박성기 작가]

수천 년 전 사람들도 이곳에서 같은 강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이 바위산은 잠시 왔다가 떠나는 곳이 아니라 집이었고, 일터였으며, 이웃과 물건을 사고팔고 신에게 기도하던 삶의 터전이었다.

왕조가 바뀌고, 종교가 달라지고, 전쟁이 지나가도 사람들의 하루는 이어진다. 우플리스치헤를 걷다 보면 역사는 왕과 전쟁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위산에 새겨진 도시의 흥망

우플리스치헤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헬레니즘 시대와 후기 고대에는 정치와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이 바위산 전체가 북적였을 것이다.

4세기 카르틀리(이베리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종교적 위상은 옅어졌지만, 도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9~11세기에는 요새이자 거점으로 다시 번성했고, 바위산 정상에는 9~10세기에 세워진 우플리스출리 교회가 우뚝 서 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우플리스출리 교회(Uplistsulis Eklesia), 9~10세기에 건축된 교회건물. [사진=박성기 작가]

동굴을 파서 만든 고대의 공간들 사이에서 돌과 벽돌로 쌓은 중세 교회의 모습이 유난히 선명하다. 하지만 12세기 트빌리시(Tbilisi)가 다시 왕국의 중심이 되면서, 우플리스치헤는 조금씩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13세기, 몽골의 침입이 결정적인 타격을 남겼다.

이곳의 몰락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도시는 서서히 비워졌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는 시간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구멍뚫린 바위로 바라보는 길, 사람들이 하나 둘 우플리스치헤를 떠났고 도시는 비워졌다 [사진=박성기 작가]

뜨거운 햇볕 아래 우플리스치헤의 사암을 밟으며 내려간다.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그들이 파낸 방과 길, 계단과 물길, 포도즙을 눌러 짜던 돌확의 자국이 남아 있다. 그러나 사람이 떠났다고 이곳의 시간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우플리스치헤를지나 므트크바리강은 유유히 흐른다. [사진=박성기 작가]

비는 사암 틈으로 스며들고, 세월이 바위를 깎는다. 갈라진 틈에는 풀이 돋고, 코카서스 아가마는 다시 따뜻한 바위 위에 몸을 눕힌다.

그리고 지금도 바람은 그 위를 지나고 강물은 아래를 흐른다. 떠나며 돌아본 바위산은 처음 마주했을 때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 동굴도시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⑦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