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오래된 성곽 위로 빛이 흐르고, 무너진 궁궐터에는 천 년 전 역사가 다시 살아나는 경험. 최근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가 전국 각지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학문과 현장을 연결하며 국가유산을 오늘의 감각으로 해석해 온 문화기획자, 권재현 안양대학교 교수가 있다.

과거를 넘어선 현재의 유산
권재현 교수를 이야기할 때 흔히 '축제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의 활동은 단순히 축제를 넘어선다. 그는 문화학 박사로서 국가유산과 지역문화, 축제 콘텐츠를 연구하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실에서 얻은 질문을 현장에서 직접 구현하는 실천가이다. 경기도 관광축제 자문위원과 지역문화사업 평가위원 등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론과 실무를 꾸준히 연결해 왔다.
그의 작업에는 "전통은 오늘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공통된 질문이 흐른다. 권 교수는 국가유산을 박제된 과거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래된 건축물과 유적, 역사적 기록은 보존의 대상인 동시에 현대인이 새롭게 경험해야 할 문화자산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연출은 단순히 화려한 영상과 조명을 입히는 데 머물지 않고, 역사적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집중한다.
권 교수는 국가유산을 이야기할 때 '보존'보다 먼저 '이해'를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산이라도 사람들에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결국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유산은 과거의 이야기를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오늘의 사람들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라고 역설한다. 세계유산축전 수원화성 총감독과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진주성 총감독을 맡아 역사적 공간을 새로운 문화 경험으로 재탄생시켰으며, 최근에는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강화 고려궁지' 총감독으로 위촉되며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기술은 수단일 뿐, 이야기가 핵심
최근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권 교수는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미디어파사드와 증강현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어디까지나 역사와 사람을 연결하는 도구일 뿐이며, 기술이 유산보다 앞서는 순간 문화는 깊이를 잃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빛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빛은 역사를 비추는 조명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강화 고려궁지'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진다. 고려궁지는 13세기 몽골의 침략 속에서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며 왕궁을 세웠던 역사적 공간이다. 권 교수는 이곳에서 단순한 야간경관이나 미디어쇼가 아닌, 몽골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천도했던 고려의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 그리고 공간이 간직한 기억을 오늘의 관람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는 "강화 고려궁지는 단순히 오래된 유적지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희망을 품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저는 관람객들이 그 역사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라고 구상을 밝혔다.

AI 시대, 문화예술의 본질은 '사람'
최근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창작과 기획, 연출의 영역까지 AI가 빠르게 확장되는 현실에 대해 권 교수는 기술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예술의 본질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는 AI가 창작을 보조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인간의 기억과 감정, 역사에 대한 성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본다.
권 교수는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겠지만 문화는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사람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공감이 빠진 콘텐츠는 아무리 화려해도 오래 남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한다. 미디어아트 역시 화려한 시각효과를 보여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문화유산이 지닌 역사성과 인간의 이야기를 더욱 깊이 전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미래를 향한 다짐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묻자 권 교수는 "제가 만드는 축제를 통해 사람들이 국가유산을 새롭게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행사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2021년 세계유산축전 수원화성을 준비하며 밝혔던 다짐과도 맞닿아 있다. 수원화성에서 시작된 그의 철학은 진주성을 거쳐 이제 강화 고려궁지로 이어지고 있다.
권재현 교수는 연구자로서 질문을 던지고, 연출가로서 그 질문에 답하며, 교육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그 가치를 전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갈 강화 고려궁지의 밤은 단지 빛으로 물든 풍경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품은 공간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서로 마주하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우리에게 국가유산이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유물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계속 살아 움직이는 문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줄 것이다.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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