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3>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⑬ 편에서 이어집니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c2d2b7b2810466.jpg)
좁은 길, 흔들리는 차
어제는 우쉬굴리를 다녀오고 쉬카라 빙하까지 걸었다. 꽃과 스반 타워, 만년설이 덮인 조지아 최고봉인 쉬카라(Shikhara,5,193m) 산을 맘껏 품은 날이다. 오늘은 하늘과 우쉬바(Ushba,) 산을 품은 코룰디 호수(Koruldi Lakes)로 간다.
숙소에서 호수까지 걸으면 하루가 통째로 간다. 하루 종일 걷는 대신 사륜구동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고, 나머지는 걷기로 한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7f3eb553ba2b2b.jpg)
낡은 사륜구동이 거친 엔진음을 내며 출발한다. 메스티아(Mestia) 공항을 벗어나자 급경사의 비포장길이다. 가파른 산허리에 간신히 걸친 폭이 3m도 안되는 가파른 S자 흙길을 운전자는 한 손으로 핸들을 돌려 오른다. 다른 팔은 창에 걸친 채다. 나는 손잡이를 생명줄처럼 꽉 쥔다. 위아래로 요동치는 차창 밖으로 메스티아 마을의 건물들이 잘 만든 미니어처처럼 작아진다. 이따금 마주 오는 차를 여유 있게 비켜 가는 솜씨에 감탄이 나온다.
자작나무와 침엽수가 뒤로 물러난다. 거칠던 길이 순해지는 자리에 십자가 언덕이 있다.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의 고산초원이 펼쳐진다.
십자가 언덕에서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1705eb0f2c3004.jpg)
초원에 내리니 4000m가 넘는 봉우리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서남쪽의 라일라(Laila, 4,008m) 산, 북쪽의 우쉬바(Ushba) 산의 남봉(4,710m)과 북봉(4,690m), 차틴(Chatyn, 4,368m) 산, 그리고 동쪽의 테트눌디(Tetnuldi, 4,858m) 산까지.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설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138eceec6b6d33.jpg)
파노라마 렌즈로도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한 스케일 앞에서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방으로 펼쳐진 웅장한 코카서스산맥의 봉우리 모습에 한동안 빠져 들었다
찬찬히 둘러보다 시선이 멈추는 곳은 코룰디 호수 방향에 있는 우쉬바 산이다
정상은 구름에 묻혔다. 구름 아래로 드러난 어깨만으로도 산의 성질을 알 수 있다. 우쉬바산은 하늘을 예리하게 찢고 솟은 두 개의 암석 봉우리인 쌍봉(남봉과 북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에 오르는 동안 봉우리를 가린 구름이 열리기를 바란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3f14d745d6c126.jpg)
우쉬바 산은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장 오르기 어려운 산이다. 산악인들에게는 유럽 알프스의 `마터호른`에 비유되고 있고, 또한 순식간에 변하는 악천후와 험준한 지형으로 `마녀의 산`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100% 공감이 된다.
여기서부터 길은 초원이다. 풀과 꽃 사이로 길이 이어지고, 그 너머 눈 덮인 산들이 멀리서 걷는 사람을 맞는다. 앞서 가는 이들이 작아 보인다. 사람이 작아질수록 길은 더 멀게 느껴진다. 이따금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호수 쪽으로 달려 올라간다. 나는 2km쯤 더 가서 카페 코룰디(Cafe Koruldi)에서 내린다.
야생화의 길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9e4f119de3214c.jpg)
코룰디 호수까지 가는 길은 둘이다. 차가 다니는 임도와 사람이 오르는 길은 나란히 가다가 갈라지고,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다. 길은 풀 비탈 위로 길게 이어진다. 그늘 한 점 허락하지 않는 초원이지만, 폭신한 흙의 촉감이 발끝을 다정하게 위로한다.
길가에 노란 꽃 무리와 보랏빛 종 모양 꽃이 섞여 카펫처럼 깔려 있다. 두 달 남짓의 짧은 여름에 피고 지는 꽃들은 바닥에 엎드린 것처럼 키가 낮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풀과 꽃이 한쪽으로 눕는다. 꽃들이 초록빛 능선 위로 파도처럼 일렁인다.
한 걸음마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오른다. 뒤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자리가 벌써 풍경이 된다.
그새 북쪽에서 구름이 내려와 해를 가린다. 햇빛이 닿으면 여름이고, 구름이 가리면 이른 봄이다. 몇 분 사이 구름의 걸음에 따라 계절이 바뀐다. 그림자가 산비탈을 빠르게 건너간다. 지나간 자리는 황금빛으로 밝아졌다가 다시 깊은 초록으로 가라앉는다. 그 경계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본다.
언덕에서 잠시 쉰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메스티아 너머 주룰디(Zuruldi, 2,340m) 산 능선에서 새 한 마리가 떠오른다. 하츠발리(Hatsvali) 케이블카가 닿는 그 산정이다. 점은 바람을 타고 높아진다. 패러글라이더다. 하늘을 가르고 날아와 어느새 내 머리 위를 지난다. 이내 날개를 우쉬바 산 쪽으로 틀더니 능선 뒤로 사라진다.
보였다 사라지는 우쉬바 산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d96d1f7d624026.jpg)
구름은 걷힐 줄 모른다. 저기 있는 게 분명한데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르막 중턱, 도무지 곁을 내어주지 않던 우쉬바 산이 밀당을 하듯 구름 사이로 정상을 살짝 내비친다. 이제 보이나 싶으면 다시 닫힌다. 산이 사람을 애태우며 붙잡는 방식인 모양이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b88dff318b7a74.jpg)
우쉬바 산을 두고 눈을 돌려도 좌우가 온통 설산이고, 봉우리 틈으로 구름이 지나간다.
길 왼쪽으로 꽃이 가득하고, 그 너머는 깎아지른 비탈이다. 평화와 아찔함이 한 발 사이에 놓인, 극단적이고도 관능적인 풍경이다.
호수 하나를 만나러 가는 길인 줄 알았다. 아니다. 나는 지금 산의 심장부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는 중이다.
호수 위에 뜬 쌍봉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2fc6bb2da2df1e.jpg)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산이 커진다. 마침내 마지막 둔덕을 넘어서자, 잿빛 바위들 사이로 비현실적인 물빛이 반짝인다. 해발 2,740m에 숨겨진 코룰디 호수다. 규모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하지만 그 앞에 서는 순간 크기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구름이 물러난다. 수면 속으로 코카서스의 하늘과 우쉬바 산의 만년설이 통째로 빨려 들어와 있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b76c7bc6b4da8d.jpg)
바람이 숨을 죽이자, 호수는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낸다. 위로 솟구친 우쉬바 산과 물 밑으로 가라앉은 우쉬바 산. 하늘의 구름과 물속의 구름.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환영인지 경계가 무너지는 아득한 현기증이 인다. 바람이 불면 산은 수만 개의 조각으로 바스러졌다가, 멎으면 다시 하나의 세계로 결합한다. 압도적인 대자연의 스펙터클 앞에서 나의 언어는 힘을 잃고 그저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f732e4893d1a69.jpg)
호숫가에 앉는다. 한여름의 태양 아래서도 설산에서 내려온 바람에 결국 겉옷을 꺼내 걸친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물빛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달라진다. 가까이서는 바닥의 돌이 보이고, 물러서면 하늘색이 짙어진다. 나는 몇 번 자리를 옮긴다. 그때마다 다른 호수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20d30921ee26e7.jpg)
다시 메스티아 마을로 돌아가는 길. 걸음을 뗄 때마다 뒤를 돌아보지만, 설산의 위용은 결코 작아지는 법이 없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길다. 차를 세워둔 자리를 지나 십자가 언덕까지 걷는다. 마지막으로 메스티아를 내려다본다. 계곡 속 스반 타워들이 작은 점으로 흩어져 있다. 그 뒤로 산줄기가 겹겹이 물러난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ac7cb7d5d07502.jpg)
차에 오르기 전 북쪽을 한 번 더 본다. 우쉬바 산의 쌍봉은 내가 머물렀던 시간이 그저 찰나의 스침이었다는 듯, 여전히 그 자리에서 오만하고 묵묵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다.
<15>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⑮ 편으로 이어집니다
![코룰디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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