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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하는 배우, 무대에서 삶을 묻다” … 배우 임형택이 지켜온 연극


극단 작은신화 40주년 기념작 연극《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

[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배우 임형택은 좋은 연기를 “관객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물을 선악으로 단정 짓기보다, 그 인물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어 관객이 그 삶을 납득하도록 무대에 올리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임형택은 “사람의 희로애락은 시대와 지위, 성별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인물이 대사를 하기까지 거쳐온 과정과 행동의 근거를 먼저 살펴본다”고 말했다. 살인자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도 나름의 논리와 사정이 있다고 본다. 그 이유를 찾지 않으면 작품이 단순한 선악 대결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배우가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관객의 해석을 이끄는 일도 경계한다. 그는 “나의 해석이나 과잉은 관객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며 “인물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에는 화술과 발성, 움직임을 익히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힘을 빼고 ‘연기하지 않으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관객을 울리거나 웃기는 것 자체보다 인물의 삶과 고민을 전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배우 임형택 [사진=임형택]

외로웠던 소년, 연극을 만나다.

무주에서 전주로 이사 온 뒤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임형택은 학창 시절을 외롭고 고독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영어 수업에서 대학생들이 공연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본 후 연극에 매료되었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극단의 공연을 보고 처음으로 연극인의 꿈을 품었으며, 학교가 끝나면 전주시립극단을 찾아가 견습생처럼 연극을 배웠다.

서른 무렵, 직업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연극만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쉽지 않았다. 작품이 없을 때는 막노동과 물류 현장 일을 했고, 결혼 후에는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시간이 길었다. 연극을 그만둘까 고민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무대를 계속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내의 지지가 컸다.

연극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 연습장면 [사진=임형택]

임형택은 “내가 연극을 그만두면 아내가 꿈꿔온 삶까지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았다”며 “무대에 계속 서는 일이 아내의 소망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시간은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일이 잘 풀려 바빴다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금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는 아이들과 놀고 여행하며 쌓은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최근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새롭게 생각하고 있다. 형이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를 ‘엄마’라는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연극을 이유로 가족에게 해야 할 몫을 미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임형택은 이런 변화가 자신을 조금씩 철들게 하는 것 같다며, 철이 든 뒤의 연기는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무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공연을 보러 오라고 먼저 권하는 일도 익숙하지 않다. 다만,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아도 다시 만나면 어제 본 친구처럼 반가운 전주의 친구들이 있고, 곁을 지켜준 가족과 동료들이 있다. 임형택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사람 농사를 잘 지은 것 같다”고 말한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 온 무대

임형택의 대표작 중 하나인 1인극 《염쟁이 유씨》는 그의 연기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선배 배우들이 만들어온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한 달 가까이 밤을 새워 연습했다. 초반에는 자신만의 염쟁이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도 컸지만, 공연을 거듭하며 관객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간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연극 《염쟁이 유씨》공연 장면 [사진=임형택]

한때는 한 작품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자신의 연기 경력을 한 역할에 가두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공연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은 날에도 관객과의 약속 때문에 공연을 이어간 경험은 무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바깥에서 비극이 벌어지는 동안 무대 위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이후 선배의 조언을 듣고 작품을 계속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보았다. 지금은 시간이 흐른 만큼 예전과는 다른 《염쟁이 유씨》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임형택은 극단 작은신화에서 약 30년 동안 활동해왔다. 그는 창작극을 꾸준히 올리고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한편, 단원들이 각자의 형식으로 작업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온 점이 극단에 남아 있는 이유다. 극단은 창작극과 고전 재해석 작업 외에도 단원들이 자유롭게 시도하는 무대와 신입 단원들의 워크숍 공연을 지속해왔다. 운영이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공동체를 이어가는 데 자긍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40주년 기념작에서 귀복 역을 맡음

극단 작은신화 40주년 기념 창작 신작 시리즈 세 번째 작품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에서 임형택은 귀복 역을 맡았다. 윤지영 작가의 작품이며, 최용훈 연출이다. 이 작품은 88세 노인이 꿈속에서 12살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순사건을 겪은 한 사람의 삶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를 그린다.

연극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포스터 [사진=임형택]

귀복은 노인이면서 동시에 12살의 기억을 간직한 인물이다. 임형택은 노인이나 아이를 단순히 흉내 내는 방식으로는 이를 표현할 수 없다고 본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시간대를 관객이 믿도록 만드는 것이 배우로서의 과제다. 그는 걸음걸이와 말의 속도, 감정의 밀도, 그리고 몸의 사용을 세심하게 살피며 연습하고 있다. 감정에 충분히 다가가더라도 무대에서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설명에 한정하지 않으려는 점도 그의 해석이다. 귀복은 형을 잃고 친구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그 땅을 밟지 못한 채 살아왔다. 죽음을 앞둔 꿈속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그리움과 후회를 마주한다. 임형택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사람도 결국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고, 하지 못한 말을 품은 평범한 사람”이라며 “관객이 ‘저 인물이라면,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형택은 이번 공연을 “연극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관객에게 슬픔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귀복의 삶과 감정을 따라가며 각자의 후회와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극《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연습 장면 [사진=임형택]

그는 연극을 “인간의 본성과 삶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배우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공유하고,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함께하는 현장성이 인간다움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후배 배우들에게는 연극을 무거운 사명으로만 여기지 말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온전히 몰입하여 자신만의 표현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임형택은 아직 연극을 그만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그 질문을 품고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공연 안내

극단 작은신화 40주년 기념 창작 신작 시리즈 3

《그라고 다 가불고 낭게》

작가 윤지영 · 연출 최용훈 · 출연 임형택, 서광일 외

2026년 10월 23일 ~ 11월 1일, 공간아울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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