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별의별 대회 다 있습니다."
이 멘트와 함께 24일 저녁 8시55분 방송된 SBS '유재석의 진실게임'.
이 프로그램에는 '할머니 휴대폰 문자 빨리보내기 대회', '가수 이정현 따라하기 대회', '독신자 여장대회', '청주나이트 댄스대회', '아동복 끼어입기 대회', '안산 어린이 댄스 대회' 등 과연 존재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이색대회 1등 출연자들이 등장했다.

6명의 출연자들은 저마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우승 당시 모습을 재연했다. 또한 제각기 화려한 개인기들을 선보였다. 그들의 몸짓은 판정단 뿐 아니라 시청자들로부터 '나는 진짜라고 믿어달라'는 인정투쟁이었다.
특히, 6명중 숨어 있는 가짜 1명은 철저하게 자신이 진짜임을 믿게 만들어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다. '진실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의 속성은 감쪽같이 숨어 있는 가짜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 성공한다. 이 점에서 가짜의 연기는 진실게임의 '흥행'을 좌우하는 키를 쥐고 있었다.
이날 송은이 홍경민 임예진 김한석 김종석 이병진 김재우 등 연예인 판정단은 출연자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짜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판정단이 가짜라고 판단한 5명이 차례로 하나씩 심판을 하는 '진실의 종' 아래 섰다. 하지만 모두 진짜로 판명됐다. 판정단은 결국 진실을 가려내는데 철저하게 실패하고 만 것. '가짜'의 완벽한 승리였다. '판정단 상대 사기극'의 성공이었다. 달리 말하면, '진실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날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은 셈이다.

◆ 방송보다 더 재미있는 연습장 풍경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방송 2주 전인 지난 11일 오전 7시, SBS 등촌동 공개홀 4층 '웃찾사 연습실'.


"아뇨 아뇨, 다시 해보세요."
5명의 작가들은 한 명씩 일 대 일로 맞붙어 각 출연자들의 대본을 꼼꼼히 체크한다. 단순히 줄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몸소 연예인 판정단이 돼 돌발질문에 대한 대비도 함께 한다.
게다가 그에 맞는 춤이나 동작, 표정 하나까지 동시에 연습한다. 이 때 손수 시범을 보이는 5명의 작가들까지 포함하면 연습실은 누가 출연자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떠들썩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사촌언니와 함께 왔다는 '할머니 문자빨리보내기 대회 1등' 최보배 씨(69)는 고령임에도 빠른 속도로 대본을 암기하는 센스를 발휘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 씨는 최연장자임에도 소녀처럼 귀여운 웃음과 애교로 연습실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었다. 녹화 도중 재치만점의 애드리브로 판정단을 깜짝깜짝 놀라게도 했다.

'가수 이정현 따라하기 대회 1등' 이하나 씨(21)는 다양한 율동을 실전처럼 보여줬다.

'안산 어린이 댄스 대회 1등' 권민지(11) 양은 어머니를 관객삼아 밸리댄스 연습에 여념이 없다.

'청주나이트 댄스대회 1등' 허민 씨(22)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두 명의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묵묵히 대본만 외우고 있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을 부르고 있는 '독신자 여장대회 1등' 이현민 씨(36)는 여전히 쑥스러운 표정이다.

가짜로서 진짜 연기를 한 이날의 주인공 '아동복 끼어입기 대회 1등' 한상국 씨(20)는 1시간도 되지 않아 대본을 외웠지만 작가들은 오히려 애드리브를 강조한다. 한 씨의 능숙한 말솜씨 때문이다. 특히 연기경력을 지닌 한 씨는 다양한 상황설정에 따른 애드리브로 작가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실제로 녹화장은 한 씨의 소위 '말빨'에 웃음바다가 됐다. 그러나 그 부분은 편집과정에서 빠져 방송을 타지는 못했다.


오전 9시30분. 어느 정도 대본을 암기한 출연자들이지만 방송에 걸맞는 분장과 의상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대본을 손에 놓는 법은 없다.
2명의 작가들이 합세하며 10시를 넘어서자 출연자들은 스스로 신청을 원한 만큼 "이런 것도 있는데" 혹은 "이건 비호감이죠?"라면서 시도때도 없이 생각난 자신의 개인기를 보여주려고 애쓴다. 또 "이런 표정은 어때요?"라며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작가들은 너무 많으면 편집될 수도 있다면서도 하나씩 꼼꼼하게 체크한 후 "이건 꼭 하세요" 혹은 "이건 빼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며 철저히 '방송용 그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11시가 넘어서자 준비한 CD까지 틀어놓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 명씩 출연자들이 준비한 춤 동작들을 찬찬히 살피는 미니 리허설인 셈이다. 점심으로 김밥과 음료수가 등장했지만 출연자들은 여전히 대본을 외우느라 먹는 데 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12시가 넘어서면서 명찰과 소도구가 준비되자 그동안 약간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다.
◆ 사연도 가지가지
대학생인 이하나 씨는 부산에서 혼자 올라왔다. 외모만 봐서는 그저 깜찍하게 생긴 여대생이지만 뮤지컬이 전공인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함이 없다. 작가들도 전공을 듣더니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넘치는 개인기로 보는 이의 소름을 돋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현민 씨는 이날 녹화 때문에 회사를 하루 빼먹었다. 사장님께 사정은 말했지만 추석이 끝난 직후라 한창 바쁠 때란 점이 마음 한 구석에 걸린다. 한 때 가수, 탤런트를 꿈꾸던 그였기에 한 번 나오고 싶었다. 결혼 생각은 전혀 없는 진짜 독신남이다.
재수생 한 씨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중학교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다. 고교축제 때 사회까지 봤을 정도. 입시에 낙방한 후 연기자의 꿈을 접은 상태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진취적인 생각은 여전하다. 얼마 전 진실게임의 '여장남자' 코너에 신청했지만 이제서야 방송국의 부름을 받았다.
청주에서 제법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허 씨는 친언니와 함께 닮지 않은 자매에 신청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 참한 외모와는 달리 3년간 닦은 중국 무예 '우슈'를 춤에 응용, 각종 댄스 대회를 석권할 정도로 재능을 지녔다.
최 할머니는 집근처 문화센터에서 인도네시아 악기를 연주하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가끔 인터뷰를 통해 TV에 출연한 경험이 있고 문자 빨리 보내기대회 관련 기사를 본 진실게임 측이 전화로 섭외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권 양은 스스로 "탤런트가 되고 싶다"고 밝힐 정도로 방송 출연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국적인 외모와 현란한 댄스 실력을 갖췄지만 하루 종일 연습 강행군을 하느라 기력을 소진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정작 녹화장에서는 자신의 끼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 시종 웃음 넘치는 녹화장
리허설을 끝낸 오후 1시. 출연자들은 2층 녹화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때 대기실에 먼저 와 앉아 있던 임예진은 "처음에는 답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였을 정도"였다며 "그러나 답을 모르는 상태로 만나는 것이 우리나 출연자, 시청자들 모두에게 다 좋은 것 같다. 화요일은 여느 녹화장 가는 것과 다른 기분"이라고 즐거워 했다.

1시30분. 방청객까지 들어와 앉았지만 판정단으로 출연할 가수 홍경민이 다소 늦는 바람에 예정보다 녹화가 지체됐다. 출연자들에게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이 틈을 이용해 작가들과 다소 긴장한 듯 보이는 출연자들은 다시 한 번 대본 점검에 나섰다.


유재석은 녹화가 중단된 사이 방청석에서 "유재석 오빠 멋져요!"라는 말이 나오자 "작게 말씀하지 마시고 다른 분들 들으시게 쭉쭉 질러주세요"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옆에 있던 송은이는 이에 "다쳐요"라고 맞받았다가 곧 "농담인 거 아시죠? 갑자기 저 분 표정이 어두워지셔서"라고 방청객을 달래기도 했다.
편집은 됐지만 한 씨가 '임예진 누나'를 향해 연신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리고 유재석이 아동복을 입지 못하겠다며 이런 저런 핑계로 버티는 장면은 녹화장이 쓰러질 정도로 웃음을 자아냈다. '길용이' 김재우는 "웃찾사에 필요한 인물이 나왔다"며 연신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4시15분. 2시간의 녹화가 끝나자 출연자들은 후련한 모습으로 유재석을 비롯한 판정단과 인사를 나눴고 분장실로 자리를 옮겨 기념촬영에 나섰다.

다시 4층 연습실로 돌아온 출연자들은 서로 수고했다고 노고를 치하했고 작가들로부터 소정의 출연료를 받았다.
다소 '깨는' 이미지로 인기를 모은 이하나 씨는 "처음엔 떨렸지만 나중에는 애드리브도 친 것 같다"며 "만족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반전댄스'를 보여준 허 씨는 "비호감였죠?"라며 걱정을 하면서도 "막상 녹화에 들어가니 떨림이 덜했다"고 말해 타고난 '끼'를 과시했다.
안철호 PD는 "3시간 가까이 녹화해서 1시간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편집하려니 아까운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라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거기에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 '선플(좋은리플) 1위' 등 각종 호감도 관련 조사에서 선두에 오른 유재석의 정겹고 재치있는 입담이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실게임의 미덕은 더 있다. 우선,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매력이 돋보인다. 그들은 '나 방송 탔어' 수준의 엑스트라급 출연이 아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각기 히어로와 히로인이 돼서 자신의 솜씨와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기회를 잡는다. '나 방송 출연했어' 수준인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매력과 '깜짝 개인기'는 역시 아마추어다. 그러나 그들의 개인기는 '끼'의 프로페셔널인 연예인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내공'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실게임' 출연을 계기로 연예인이 된 행운은 잡은 사람들도 있다. SBS 개그맨으로 '웃찾사'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규선은 '여자선발대회 수상자'로 진실게임에 출연한 바 있다. 젊은 나이에 연매출 4억원에 달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해 '4억소녀'라는 닉네임으로 출연한 김예진 양은 진실게임 출연을 계기로 모바일 화보집까지 냈다.
그들에게 잠재된 '끼'를 '방송용 그림'이 될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바로 출연자와 제작진이 아침부터 7시간 동안 치르는 스파르타식 강훈련이다. 그 7시간 동안 이들은 출연자의 숨은 '끼'를 드러내면서, 한편으론 국민을 속이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매주 한번 씩.
조이뉴스24 /강필주기자 letmeout@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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