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 팬들이 자주 접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포스팅시스템’이다.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갖추지 못한 프로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 때 경매와 비슷한 절차를 거쳐 협상할 팀을 결정하는 게 메이저리그의 포스팅시스템이다.
그 선수에 대해 관심이 있는 구단은 소속된 구단에게 줄 이적료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제시하고 가장 많은 액수를 써낸 구단이 그 선수에 대한 독점 협상권을 갖게 된다.
이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스즈키 이치로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2001년 포스팅시스템에서 1천310만달러의 이적료로 협상권을 확보한 뒤 계약기간 3년에 총 연봉 1천500만달러로 이치로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치로 이전에 메이저리그 최초로 포스팅시스템이 적용된 선수는 한국 선수였다.
바로 ‘풍운아’ 이상훈이었다.
90년대 중반 국내 프로야고 최정상급 투수로 군림하던 이상훈은 97년 시즌이 끝난 뒤 메이저리그 진출 기회를 잡았다. 97년 12월 보스턴 레드삭스가 2년간 임대료 250만달러에 2년 연봉 220만달러를 주고 이상훈을 빌려 쓰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축구와 달리 임대선수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메이저리그는 이상훈의 낯선 임대계약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98년 1월 메이저리그 산하 법률 소위원회는 LG 트윈스와 보스턴의 임대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상훈의 미국 진출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스팅시스템이라는 낯선 제도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LG와 보스턴의 독점 계약은 다른 구단이 경쟁할 권리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경쟁적인 입찰제도를 거쳐 이상훈이 입단할 팀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당시 그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 하다못해 메이저리그 관계자들도 ‘처음 시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당황해 했다.
그런 미묘한 상황 속에 이상훈은 또 하나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상훈이 98년 2월 중순 LA에서 자신의 훈련 장면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이상훈 측의 의도는 단지 ”내가 왔소” 하는 인사 차원의 훈련 공개였다.
하지만 생소한 포스팅시스템의 실시와 함께 이상훈에 대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관심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다. LA의 한 대학 구장에서 실시된 워크아웃에는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스카우트들이 몰렸다.
이들은 갈기머리의 이상훈이 간단한 몸풀기에 이어 글러브를 끼자 너도나도 스피드건을 꺼내며 본격적인 작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웬걸. 이상훈은 가볍게 캐치볼을 한 뒤 “훈련 끝”을 선언했다. 스프링트레이닝 등 만사 제쳐두고 워크아웃에 왔다가 이상훈의 긴 머리와 캐치볼 하는 것 밖에 보지 못한 구단 관계자들은 발길을 돌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는 팀은 당시 신생팀이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다. 애리조나는 당시 이상훈을 보기 위해 스카우트 고위 관계자와 함께 구단 재정담당 직원이 동행했으며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이상훈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리조나 감독이던 벅 쇼월터는 이전에 LG 초청으로 잠실 야구장을 방문해 트윈스 경기를 지켜본 적이 있었으니 그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LG는 구단 간부 한 명에 당시 정삼흠 투수 코치와 구단 트레이너를 LA로 파견해 훈련을 돕고 다시 워크아웃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미 이상훈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관심은 뚝 떨어진 뒤였다.
결국 3월말 포스팅시스템을 통한 이상훈에 대한 입찰액이 발표됐다. 고작 60만달러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470만달러에 이상훈을 영입하겠다던 보스턴이 그를 영입하는 대가로 60만달러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 60만달러의 정체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내리는 사람도 드물었다. 이상훈의 에이전트를 자처한 사람도 그게 보스턴이 이상훈에게 제시한 연봉인지 LG에 주는 이적료인지 답하지 못했다. 이후 이상훈에 대한 연봉 협상이 따로 시작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부에선 보스턴이 이상훈의 몸값을 후려치기 위해 LG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튼 60만달러라는 액수는 대단히 실망스런 금액. LG가 헐값에 이상훈을 내줄 수 없다고 버틴건 두 번째 문제였고 무엇보다 이상훈 본인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LA의 호텔방에 틀어박혀 기타 연주와 캔맥주로 상심을 달래던 이상훈은 결국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방향을 틀었다.
이상훈은 주니치에서 일본 프로야구 우승의 기쁨을 누린 뒤 자유계약선수의 신분으로 2000년 보스턴에 입단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빛을 보지 못한 이상훈은 마이너리그에 머물다 LG로 복귀했지만 곧 은퇴, 로커로서 새로운 삶은 살아가고 있다.
올해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하고 있어 포스팅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더욱 자주 눈에 띈다.
이상훈이 포스팅시스템에서 좌절을 맛본 지 벌써 9년. ‘포스팅시스템’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갈망하던 이상훈의 강렬한 눈빛이 떠오른다.
조이뉴스24 /알링턴=김홍식 기자 dio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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