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농구(NBA) 최고의 득점 기계 앨런 아이버슨(31)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덴버 너기츠로 둥지를 옮겼다.
공식발표가 난 것은 아니지만 미국 언론들은 20일(현지시간) 일제히 아이버슨이 덴버로 트레이드됐다고 보도했다. 덴버는 아이버슨을 받는 조건으로 안드레 밀러(30), 조 스미스(31), 두 장의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함께 내줬다고 덧붙였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영원히 한 유니폼만 입을 것 같았던 버니니아주 태생 아이버슨의 필라델피아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 언론들은 아이버슨과 관련된 기사를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필라델피아 시절 아이버슨의 행적을 정리해놓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기사가 눈길을 끈다.
SI는 지난 1996년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덴버로 옮길 때까지 10년간 다사다난했던 아이버슨 관련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1996년 6월: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위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됐다.
▲1997년 5월: 경기당 평균 23.5득점을 기록하며 'NBA 올해의 루키'로 선정됐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에서는 50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1997년 8월: 버지니아주에서 과속으로 잡혔다 차안에서 마약과 총기가 발견돼 체포됐다. 가석방됐지만 100시간의 사회봉사를 언도받았다.
▲1998년 7월: 버지니아주에서 아이버슨의 차(벤츠)를 빌려 몰던 친구 두 명이 붙잡혔다. 차 안에서 마약이 발견돼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99년 1월: 필라델피아와 6년간 7천만 달러에 연장계약을 맺었다.
▲1999년 5월 자신의 첫 번째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경기당 평균 26.8득점을 기록했다.
▲2000년 10월: NBA 데이비드 스턴 커미셔너로부터 비난과 질책을 들었다. 이유는 여자들과 게이들 앞에서 질 떨어지는 내용의 가사가 포함된 랩을 불렀기 때문이다.
▲2001년 4월거의 트레이드될 뻔 했지만 경기당 평균 31.1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두 번째 득점왕 타이틀을 따냈다. 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또 필라델피아를 NBA 챔피언 결정전까지 견인했다. 그러나 LA레이커스에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2001년 11월: 10년간 5천만 달러 계약을 맺었던 리복과 평생 계약으로 연장했다.
▲2002년 4월: 경기당 평균 31.4득점으로 통산 세 번째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2년 5월: 보스턴 셀틱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패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습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에 직면한다. 아이버슨은 "나는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고 싶다"며 "경기가 아니라 연습경기에 대해 계속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2002년 7월: 아내 타와나가 부부싸움 도중 집을 나갔다. 그날밤 자신의 사촌 아파트에 아내가 있다는 걸 알고 찾아갔지만 사촌과 룸메이트는 아이버슨을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아이버슨은 사촌과 룸메이트에게 반자동총을 난사, 14개 죄목으로 체포됐지만 별 문제없이 풀려났다.
▲2002년 10월: 2001년 8월 자신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절친한 친구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아이버슨은 검은 암밴드를 착용했고 자유투 때마다 암밴드를 한 번씩 두드렸다.
▲2003년 5월: 아이버슨과 수시로 충돌했던 래리 브라운 필라델피아 감독이 사임, 디트로이트로 옮겼다.
▲2003년 9월: 필라델피아와 2009년까지 7천600만 달러에 연장계약했다. 그는 "항상 식서스 선수가 되길 원했다"며 "필라델피아에서 경력을 끝내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4년 3월: 무릎 부상에서 회복됐지만 경기에 나서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2004년 4월: 1997-1998시즌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브라운 감독 이후 세 번째 감독으로 짐 오브라이언이 선정됐다.
▲2004년 12월: 아이버슨은 밀워키와 유타전에서 각각 54득점과 51득점을 기록, 두 경기 연속 50득점을 기록했다.
▲2005년 2월: 112-99로 승리한 올랜도 매직전에서 60득점을 기록, 자신의 한경기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오브라이언 감독은 "지금까지 이런 경기는 처음 본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또 자신이 트레이드를 원하고 있다는 루머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나는 바로 여기 있길 원한다"며 "사람들이 내가 여기 있길 원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5년 4월: 경기당 평균 30.7득점, 7.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통산 4번째 득점왕에 오른다. 그런데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팬감사경기'에 크리스 웨버와 나란히 지각했다. 나중에 부상 때문이라고 사과했지만 논란이 됐다.
▲2005년 5월: 3년 계약을 맺었던 오브라이언 감독이 1년만에 해고됐고 전 포틀랜드 감독이었던 모리스 칙스와 교체됐다. 아이버슨은 "나는 모리스 칙스가 감독이 되길 원했다"며 "마침내 그렇게 됐다"고 기뻐했다.
▲2006년 7월: 트레이드 루머가 나돌았지만 아이버슨은 남고 싶다고 말했다.
▲2006년 10월: 전 시즌 38승44패를 기록한 것에 대해 자신과 다른 선수들은 칙스 감독의 태평한 성격 때문이라고 불평을 털어놨다.
▲2006년 11월 29일: 시즌 티켓을 가진 팬 및 VIP들과 볼링을 쳤다가 팀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후에 두 개의 상한 이를 뽑기 위해 약을 먹어서 참석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2006년 12월 6일: 94-121로 패한 시카고전에서 4쿼터 도중 라커룸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유는 허리경련이라 밝혔다.
▲2006년 12월 8일: 워싱턴전 뒤 팀에 합류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 이어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변화가 최선이다"고 말해 팀을 떠날 각오를 내비쳤다. 에드 스나이더 구단주는 그를 트레이드시킬 것이라 말했다.
▲2006년 12월 11일: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의 라커룸을 깨끗이 비우고 이름까지 떼내 결별을 공식화했다.
▲2006년 12월 14일: 올스타 투표에서 59만5천200표를 받아 동부 컨퍼런스 가드부문 선두를 질주했다.
▲2006년 12월 17일: 필라델피아 빌리 킹 사장은 아이버슨의 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지만 팀의 장기적인 면에 관점을 두고 이쓴 만큼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2006년 12월 19일: 아이버슨이 덴버로 옮겼다.
조이뉴스24 /강필주기자 letmeout@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