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해 본 적이 있는가? 첫사랑의 기억까지 더듬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 연인이 되기 위해 고백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애는 넘쳐나는데 고백은 점점 힘들다. 언제부턴가 ‘쿨~ 하게’가 유행이지만 사랑 고백은 결코 '쿨'하지 않다. 가파르게 심장이 뛰고 죽고 싶게 자신이 오그라들고 그때라도 뒤돌아 뛰어가고 싶을 만큼 두려운 것이다. 누군가에게 뜨거운 고백을 앞두고 있다면 여기 고백에 대한 지침서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때론 과감하게, 때론 지능적으로, 때론 낭만적인 고백들과 시행착오가 발렌타인 데이 워밍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mule@naver.com
로마의 클라디우스 2세는 병사의 결혼을 금지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연인들을 지켜보던 발렌타인 수사는 왕명을 어기고 몰래 젊은이들을 결혼시켰고 결국 이 일이 발각돼 그는 처형되었다. 발렌타인 수사가 처형된 날이 바로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다. 거리에 정체모를 거대한 초콜릿 바구니들이 부유하는 괴상한 날이 되었지만, 원래는 목숨을 걸고 사랑을 지킨 발렌타인 성자를 기억하며 용기를 내 고백하는 날이다.
자칭 연애박사라는 친구 녀석은 늘 이렇게 충고한다. "먼저 고백하지 말지어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 견딜수록 사랑의 열매는 달콤하다고 했다. 흠, 진짜 그럴까.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식이에게도 녀석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절대 내숭의 손예진이 ‘게장만도 못한 년’이 될지언정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고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면 그 말은 맞는 것도 같다. 여자에겐 ‘절대내숭’의 공력이, 남자에겐 애끓는 속내를 감춘 무심의 ‘경지’가 상대에게 카운터펀치가 된다는 정석. 어쩌면 고백은 너무 느려도 안 되고 무조건 급해도 안 되는 풀무질 같은 것인지 모른다.
# “오줌 마려울 때마다 니 생각했다. 2시간에 한번 씩” 광식이 동생 광태

노출계로 좋아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광식은 햄릿형 인간이다. 생각이 많아도 지나치게 많다. 대학시절부터 7년 간 좋아한 후배에게 밥을 같이 먹자는 말도 영화를 보자는 말도, 사진을 가르쳐주겠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키스 노출계 수치가 99.9%를 가리키고 '안 하면 바보'라는 글자가 점멸할 지경인데도 그는 눈 감은 여자 얼굴 가까이에 다가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주절거린다.
광식이의 고백은 통틀어 고작 "오줌 마려울 때마다 니 생각했다"가 다다. 설마 이런 남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광식이는 고백의 중요성을 명백하게 알려주는 캐릭터다. "여자는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이요원의 말은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진리를 담고 있다.
마음에도 없는 사진관 보조가 선방을 날렸을 때 이요원이 받아들였던 이유는 그가 분명한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광식이 간과했던 또 한 가지. 이미 상대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줌 눌 때마다 생각했다는 변태로 남기보단 정면 돌파가 백번 낫지 않은가.
# "어쩌지 내일 게장이 온대서"작업의 정석

고수 손예진과 송일국이 말하는 작업의 정석은 밀고 당기기다. 이들의 상황은 아이러니의 연속이어서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 그들은 상대에게 비참할 정도로 끌려 다닌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자 상대에게 먼저 고백을 이끌어내는 고수들의 방법론이다. 일반인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연애비기인지라 이들의 첫 데이트는 무림 고수의 무공대결로 패러디되었다.
레스토랑 신과 물 위를 나는 무협 신이 교차 편집된 시퀀스다. 이후 등장하는 모든 신은 이 장면의 상징처럼 진검대련을 연상시킨다. 여자의 내숭에 제주도로 따라가기로 약속한 남자는 갑자기 집에 게장이 도착한다며 못가겠다고 한다. 졸지에 "게장만도 못한 년"이 된 손예진은 자존심에 금이 간 상태에서 제주도까지 급히 가게 되고 이번엔 남자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책장 가득 꽂힌 양장본 책들은 껍데기 뿐이고 안에는 만화 '홍차왕자'가 들어 있는 현실. 누가 더 안 들키고 상대를 애 닳게 만드느냐 이게 관건이다.
# "네가 좋아... 봄날의 곰만큼" 봄날의 곰을 좋아 하세요?

'봄날의 곰'만큼 좋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화집에 씌어 있는 이런 고백은 난해하게 이를 데 없지만 동시에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음 고백을 듣기 위해선 다음 화집을 찾아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설레게 만드는 기대 요법은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형성한다.
자기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누가 현채를 좋아하는가?’'는 이 영화를 시작부터 끌고 가는 질문이지만 나중에는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 이런 고백 방법은 엉뚱하지만 따뜻한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가 있다. 그러니 직접 대면해 고백할 용기를 도저히 낼 수 없다면 이런 방법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고백의 연결. 확실히 이런 방법은 여자들의 로망을 자극한다. 호기심과 낭만에 무너지는 게 어디 여자뿐일까. 남자들도 무너지게 돼 있다. 단지 공공도서에 낙서를 하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포스트잇이나 쪽지 정도를 넣어 두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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